▲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이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친 후 차량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유 전 장관은 이제 국회로 돌아가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한다.(사진=연합뉴스)
내년 총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공기업 수장들의 ‘줄사퇴’가 예상되는 가운데, 해당 공공기관들은 기관장 공석에 따른 내년도 경영공백 우려는 물론, 공천에서 탈락한 낙하산 사장들이 또다시 몰려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처럼 공기업 안팎이 어수선한 상태로 흘러가면 정부가 4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강력하게 추진 중인 공공부문 개혁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얼마 안 있어 기관장의 임기가 만료되거나 총선 출마를 위해 이미 사퇴한 경우는 물론, 기관장의 총선 출마가 거론되는 공공기관들이 앞으로 정상화 대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CNB=이진우 기자)
대통령 “진실한 사람만” 줄사퇴 신호탄?
친박계 공공기관장, 줄줄이 총선 앞으로
공기업 ‘정치인 경력쌓기용’ 전락 우려
지난 13일 정치권과 공공기관들에 따르면 올해 연말 내년 총선 출마에 나서려는 기관장들의 잇단 사퇴가 관측되고 있다. 벌써부터 정치권은 물론 관가와 공공기관 안팎에서는 출마가 거론되고 있는 공공기관장들만 10여 명을 넘나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정치권이 민생과 경제를 볼모로 잡고 있다. 국회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을 수 있도록 (국민이) 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해 주요 공직자들과 공공기관장들이 서로 ‘박심’을 외치며 총선 출마를 위한 줄사퇴에 불을 지핀 셈이 됐다.
이에 야당은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자신의 뜻을 잘 받들 수 있는 소위 ‘진박(眞朴)’들만이 진실한 사람이라며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이들을 당선시켜 달라고 지원하는 명백한 선거 개입”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는 야당을 비롯한 여당 내 비박(非朴)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낙선 운동을 한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반발하고 있다.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로 치열한 정쟁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나온 박 대통령의 ‘국민 심판론’ 발언은,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고위공직자들은 물론 은인자중하며 호시탐탐 국회 등원을 노리고 있던 공공기관장들이 저마다 ‘박심’을 등에 업고 줄줄이 총선에 나설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이미 현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임기 2년을 남겨두고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지난 9일 사퇴했다. 이에 앞서 손범규 정부법무공단 이사장도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 7월 중도 퇴임했다.
곽 전 이사장은 내년 총선에서 대구 달성군에 출마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손 전 이사장 역시 고양 덕양구갑에 출마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직에 있는 공공기관장들도 본격적인 총선 출마 러시에 참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유력하게 총선 출마가 거론되는 인사는 박완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김성회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등이다.
한때 총선 출마가 유력한 것으로 여겨졌던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최근 후배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총선 불출마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
박완수 사장은 경남 창원 의창구, 김성회 사장은 경기 화성갑에 각각 출마할 채비를 갖추면서 사퇴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1일 총선 출마를 위해 사임하고 국회로 돌아갔으며, 국토부 산하 기관장인 최연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도 측근 등을 통해 출마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사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공직자는 임명권자의 의사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박 대통령의 권유가 있으면 출마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코레일 안팎에서도 이미 최 사장의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며 곧 사퇴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언이다.
최 사장이 총선에 나설 경우엔 지난 2012년에 낙선했던 대전 서구을이 유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현재 정치권에서는 비례대표로도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경북 경주에 출마할 채비를 마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곽성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은 대구 중남구에서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기관장의 총선 출마가 거론되고 있는 해당 공공기관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 것 외에는 우리도 더 이상 알지 못 한다”면서 “또한 직원들 입장에서 기관장의 총선 출마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업무공백에다 낙하산 되풀이 우려
대체로 총선 출마 나들이에 나서는 이들의 경우 전 국회의원 또는 전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지낸 정치인 출신들이 많다. 따라서 공공기관이 이러한 정치권 인사들의 경력을 쌓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정치인들이 기관장으로 들락거리면서 해당 기관이 아주 만신창이 신세가 될 정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 박완수 사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창원시로 주소를 옮겼다가 구설수에 오르며 문제가 되자 비록 되돌리기는 했지만, 박 사장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공사는 그 직전엔 국토부 차관 출신인 정창수 사장이 낙하산으로 내려갔다가 강원도지사 출마로 9개월 만에 사퇴한 후 약 8개월간 사장 자리가 공석이 되기도 했다.
이후 정 사장은 출마가 무산되고 난 뒤에도 또다시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되는 등 소위 정피아(정치+마피아)가 공공기관장 자리를 독식한다는 비판을 불러오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어느 공공기관의 수장이 총선 출마로 사퇴한다는 소문이 돌면 관련 업계도 뒤숭숭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이후 어떤 낙하산 사장이 내려올까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한다”면서 “공공기관장 자리가 일부 정치인들의 자리 봐주기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CNB=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