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대회 주최 측이 책임 원인을 두고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어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CNB가 14~15일에 걸쳐 현장을 취재했다. (CNB=도기천 기자)
최루액 물대포 맞아 농민 1명 뇌수술 중태
쓰러진 시위대에 수초 간 ‘직격살포’ 논란
경찰 vs 투쟁본부, 대규모 2차 충돌 예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11.14 민중총궐기’ 주최 측은 15일 오전 백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물대포 수압에 의한 코뼈 부러짐, 시신경 손상 뇌진탕으로 인한 두개골 함몰로 뇌출혈 있었으며 현재 뇌압이 상승된 상태로 2~3일 경과를 지켜봐야 상태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백씨는 전날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주관하는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했다. 전국농민대회는 민중총궐기 대회에 앞서 열린 사전집회였다.
민중총궐기 대회는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53개 노동·시민·농민단체가 연대한 집회였으며, 전국에서 상경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13만 여명(경찰추산 6만8천명)이 서울 중심부에 운집하면서 절정을 이뤘다.
백씨의 경우, 전남 보성농민회 소속으로 상경해 이날 오후 1시경 숭례문 앞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오후 4시부터 열리는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경찰이 광화문 광장 일대에 차벽을 설치해 행진을 가로 막자 백씨를 비롯한 농민들 일부가 경찰버스를 밧줄로 묶은 뒤 당겨서 넘어뜨리려 했다. 경찰은 백씨 일행을 향해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발사했으며 백씨 등은 물대포에 직격으로 맞아 쓰러졌다.
당시 목격자 및 촬영된 영상을 보면 경찰은 백씨가 쓰러지고 나서도 수 초 간 백씨를 향해 계속 물대포를 발사했으며, 이 때문에 근처에 있던 다른 시위대가 몸으로 물을 막으며 백씨를 끌어내 구급차에 태웠다.
백씨는 1989~1991년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 8대 회장, 1992년 가톨릭농민회 전국부회장, 우리밀살리기 전국회장, 보성군농민회 감사 등을 맡을 정도로 농민운동에 열심이었고, 이날도 앞장서다 변을 당한 것이다.
14일 집회는 13만 여명에 이르는 집회참가자와 수만 여명의 경찰이 충돌하면서 밤늦게까지 종로, 광화문 일대가 아수라장이 됐다. 이 과정에서 백씨 뿐 아니라 수십 여명의 집회참가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경찰 진압 장비에 부상을 당하거나 경찰버스를 끌어당기던 밧줄이 끊어지면서 뇌진탕, 골절상 등을 입었다. 민주노총 등에 따르면 30여명의 집회참가자들이 머리 출혈, 홍채출혈, 인대손상, 손가락 골절 등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또 고등학생 2명을 포함해 51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의 강경한 대응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는 집회 전날인 13일, 불법 집단행동이나 폭력사태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법이 정한 절차를 어기거나 다른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더라도 신속하고 단호하게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교육·법무·행자·농림·고용부 등 5개 부처는 집회참여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집회 대응을 위해 240여개 부대, 2만2천여명의 경찰력을 배치하고 경찰버스 700여대와 차벽트럭 20대, 살수차 등의 장비를 동원해 광화문 광장 일대를 원천 봉쇄했다.
서울역, 시청, 대학로 등에서 단체별 사전대회를 개최한 참가들이 수천~수만명 단위로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해 오자 경찰은 저지선을 치고 오후 4시경부터 접근하는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이에 일부 시위대는 접이식 사다리, 깃발 등으로 버스 창문을 두드려 깼다. 또 버스에 밧줄을 묶어 수십명이 당기는 방식으로 차벽을 무너뜨리려 했다.
경찰은 이날 밤 11시경까지 장장 6~7시간 동안 최루액(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발포하면서 맞섰다.
이날 경찰의 태도는 과거 집회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번 집회 규모와 비교되는 2008년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때는 서울광장 내 집회가 허가 됐었다. 집회장소인 서울광장을 벗어나면서 충돌이 일었지만, 이번에 경찰은 광화문 광장의 집회 자체를 불허했다.
또 세월호 집회 등 지난 시위 때는 일몰 후에 물대포를 발사했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대낮(오후 4시경)부터 물대포가 분사됐고, 물대포에 섞인 최루액 농도도 과거보다 훨씬 짙었다.
통상 약간의 캡사이신 성분이 물에 함유됐지만 이번에는 경찰이 다량의 최루액을 섞어 쏘면서 시위대들은 수압 뿐 아니라 기침·피부 발작 등 고통을 겪었다. CNB취재진이 느끼기에도 과거 집회 때보다 훨씬 견디기 힘들었다. 차벽 앞은 매캐한 최루가스로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광우병, 세월호 집회 등 대형시위 때마다 참가해왔다는 이모(45)씨 부부는 CNB에 “과거에는 시위대가 해산되기를 기다렸다가 밤 10시가 넘어서 진압이 시작되곤 했다. 이번처럼 무차별적으로 최루액을 발사하는 것은 처음 본다”고 전했다.
특히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곡사가 아니라 직사로 살포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령인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가스차나 살수차 등으로 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우, 15도 이상의 발사각을 유지해야 하고, 물대포를 발사할 때도 사람을 향해 직접 쏘면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경찰은 권총 형태의 캡사이신 살수총 역시 사람을 향해 직접 분사하는 등 위험천만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이 유독 ‘광화문’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곳이 뚫리면 효자동을 통해 청와대로 올라가는 길목이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경찰은 과거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집회 때 광화문 차벽이 무너져 효자동 도로변까지 시위대가 진출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한편으론 경찰 정보력의 부재를 꼬집는 목소리도 있다. 농민 시위는 고령자가 많아 경찰이 다른 집회와 달리 강경진압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쓰러진 고령의 농민 시위자에게 다량의 물대포를 직격으로 살포했다는 점에서 경찰이 집회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전직 경찰 출신인 A씨(57)는 “통상 집회 때는 경찰 정보요원이 시위대 속에 침투해 집회 성격 등을 상부에 보고해 경찰 주력부대가 집회의 성격에 맞게 분리 대응한다. 당연히 고령자들이 많은 농민단체 집회는 방어적으로 대응해 왔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노동개혁, 국정화 교과서 강행 등 박근혜 정부의 연이은 강경드라이브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남윤인순·김광진·전순옥·이학영·정청래·김승남 의원 등이 나서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강신명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수석 대변인은 15일 논평에서 “시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경찰이 물대포를 근거리에서 조준사격하거나 이미 쓰러져 있는 시민에게 물대포를 계속 쏜 것은 시민을 적으로 간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16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2천여 명의 신도들과 대규모 시국기도회를 개최하며,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민중총궐기 집회 과정에서 불법폭력행위를 벌인 주동자와 가담자는 전원 사법처리할 방침이며, 부상을 당해 의식불명에 빠진 백씨에 대해선 사고경위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