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신용강등 외환위기 이후 사상최대
국가부채는 OECD 평균보다 낮아 ‘우수’
기업·가계부채 통계서 제외…안심 못해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1∼9월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은 45개사(부도 1개사 포함)로 나타났다. 1998년 외환위기(61개사)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엔 33개, 이듬해엔 34개 정도였다.
다른 신용평가사인 나이스 신용평가는 올해 들어 10월까지 51개 기업의 신용등급을 내렸고, 한국기업평가는 1∼9월에 42개(부도 2개사 포함) 기업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 모두 큰 차이가 없었다.
금융위기 때보다 상황이 더 나빠진 걸까? 이는 대기업의 잇따른 ‘실적 쇼크’에다 정부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움직임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는 장기간 업황 부진을 겪어온 조선·해운·건설 업종의 신용등급 하락이 두드러졌지만 올해는 모든 업종에서 전방위적으로 등급 하락이 일어났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에서는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중공업, 삼성정밀화학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두산그룹에선 두산건설,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두산엔진 등이, 포스코그룹에선 포스코플랜텍, 포스코건설, 포스코엔지니어링 등이 강등됐다.
SK에너지, SK인천석유화학, GS칼텍스, GS에너지 등 대기업 계열 석유화학 업체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업체의 등급도 떨어졌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기업들은 고금리의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높은 이자를 주고 은행대출을 받아야 한다. 자금 조달에 드는 비용이 늘어나게 돼, 더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금융당국은 상황이 심상치 않자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시중은행과 신용카드·캐피털사, 저축은행, 상호금융사에 최대한 엄격한 기준으로 대출 자산 건전성 분류를 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특히 11~12월 중 진행할 대기업 신용위험평가도 엄격하게 추진하라는 지침을 전달한 상태라 신용등급 하락은 더 속도를 낼 전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올해 안에 부실기업을 색출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의 조치까지 가급적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기업구조조정은 신용평가에 나쁜 영향을 미쳐 ‘실적악화→구조조정→신용등급하락→조달비용 증가’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최우수 수준이란 결과가 나왔다.
OECD가 지난 6일 발표한 ‘2015 재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회원국 대부분의 재정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 호주,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스위스 등과 함께 추가 재정건전화 조치가 필요 없는 8개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 영국,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국 다수를 포함한 14개국은 추가 재정건전화 필요성이 4.5%를 초과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회원국들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는 2007년 평균 80%에서 2013년에는 118%로 늘어나며 증가세를 이어갔다.
한국 또한 2007년 28.7%에서 지난해 35.9%로 국가채무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다만 회원국 평균보다 낮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받은 것이다.
OECD의 재정건전성 순위는 GDP 대비 국가채무 지표 기준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가계부채, 기업부채는 제외한 통계다. 기업·가계 부채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시중 은행의 대기업 대출은 지난 9월까지 월별로 3개월 연속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월별 증가액은 7월 1천억원, 8월 5천억원, 9월 1조3천억원이다.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으로 나눈 값인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라는 것은 기업이 한 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이자 비용보다 적음을 뜻한다. 영업 활동으로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다는 얘기다.
연체율도 늘고 있다. 국내 은행권의 대출에 대한 대기업의 9월 말 연체율은 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는 0.10%포인트 상승했다.
가계부채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70%를 넘어섰으며, 총 부채규모는 1200조원에 이른다.
한국은행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72.9%로 전년동기(70.2%)에 비해 2.7%포인트나 상승했다.
특히 최근 1년간(2014년 10월∼2015년 9월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월 평균 6조3000억원으로, 이는 예년(2012년1월∼2014년 8월 기준) 평균 증가액인 1조8000억원을 크게 넘고 있다.
대출의 성격도 문제다. 생산·소비 과정에서 대출이 증가한 게 아니라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늘고 있어, 건설·부동산시장에 뇌관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경제학 박사)은 CNB에 “이자보상배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부 기업의 재무상태도 문제지만, 중소자영업자들의 대출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라며 “인구구조와 사회보장성기금(복지비) 지출의 성숙도, 세입을 초과하는 세출(지출), 공기업 부실 문제 등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선진국에 비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