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양호’ SK ‘무난’ 현대차·LG ‘부진’
중공업·철강·조선·건설, 4분기도 ‘캄캄’
재계, 줄이고 팔고 ‘다이어트’가 살길
4일 현재까지 3분기(7~9월) 실적이 발표된 국내 5대 대기업(시가총액기준)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삼성은 양호, SK는 무난, 현대차와 LG는 부진, 포스코는 낙제점으로 요약된다.
삼성은 11곳의 실적을 내놨는데 이 중 6곳은 시장 기대보다 성적이 좋았고 5곳은 기대치(평균 전망치)를 밑돌았다. 반타작한 셈이다.
영업이익이 시장 기대치보다 10% 이상 높은 이른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곳은 4곳. 삼성전자가 시장 기대치보다 12.45% 많은 3분기 영업이익을 냈으며 삼성중공업(298.29%)과 삼성SDI(160.05%), 삼성정밀화학(54.06%) 등도 ‘깜짝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은 1조5천억원 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해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호텔신라의 영업이익도 시장 기대치보다 86%나 적었고 삼성에스디에스(-24.01%)도 어닝 쇼크(영업이익이 시장 기대치를 10%이상 하회)를 기록했다. 제일기획(-1.68%)과 삼성카드(-0.26%)의 3분기 영업이익도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재계서열 2위 현대자동차그룹은 1분기에 이어 하향곡선이 계속되고 있다.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상장 계열사 8곳 중 현대차(-5.75%)와 현대위아(-3.17%), 현대제철(-8.24%) 등 3곳의 영업이익은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 폴크스바겐 사태와 환율 효과의 덕을 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1조 5039억원에 그쳤다. 이는 지난 2010년 4분기 이후 5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다만 기아차(10.16%)와 현대로템(334.22%)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현대모비스(3.77%)와 현대건설(3.96%), 현대글로비스(4.85%) 등도 시장 기대보다 양호한 성적표를 내놨다.
LG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한 계열사 9곳 중 LG생명과학(177.56%)이 유일하게 시장 기대치를 10% 이상 뛰어넘으며 ‘어닝 서프라이즈’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LG전자의 경우, 시장 기대치는 소폭 웃돌았지만 휴대전화 사업이 6분기 만에 적자를 기록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LG상사(-32.57%)가 어닝 쇼크를 안겼고, LG이노텍(-6.42%), LG디스플레이(-5.51%), LG유플러스(-4.97%)도 부진했다. LG생활건강(9.06%)과 LG화학(7.46%), LG하우시스(5.22%) 등은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영업이익을 내놨다.
철강업계는 ‘기대치’라는 말을 적용하기가 무색할 정도다. 업계 맏형이자 재계서열 5위인 포스코는 사상 첫 연간 적자를 예고한 상태다.
포스코는 3분기에 매출액(연결기준) 13조9960억원, 영업이익 652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14.0%, 25.8% 쪼그라든 수준이다. 글로벌 경기 악화로 수주물량이 대폭 준데다 환손실이 발목을 잡았다. 6580억원의 당기순손실(연결기준)을 기록하면서 3분기 만에 적자전환했다.
국내 5대 재벌 중 현재까지 가장 무난한 성적표를 내놓은 그룹은 SK다. SK는 실적전망 대상 계열사 7곳 중 현재까지 4곳이 시장 기대치를 웃돌았다.
SK이노베이션(124.85%)이 시장 기대치(1619억원)를 훌쩍 뛰어넘은 364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놓은 데 이어 SK하이닉스(1.08%), SK네트웍스(2.93%), SKC(3.27%) 등이 선방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3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줄어든 4조2600억원, 영업이익은 8.6% 감소한 4906억원으로 나타났다. 유안타증권은 SK텔레콤의 목표주가를 30만원으로 내렸다.
이처럼 주요 대기업들이 실적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더 큰 문제는 4분기 전망 또한 밝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3분기 실적이 기대치에 못 미친 기업들의 실적 하향세가 뚜렷해 당분간 시장의 경계감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200 내 기업 중 증권사 3곳 이상이 추정치를 제시한 128개 상장사의 4분기 영업이익 합계는 27조437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9월 전망치(27조7641억원)보다 1.18% 감소한 수치다. 지난 7월 전망(28조5961억원) 보다는 무려 4.05% 하향 조정됐다.
갈수록 시장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을 방증한 것이다. 특히 철강 조선 건설업 등의 업황 부진에 대한 우려가 크다.
1조5217억원 규모의 영업손실로 시장에 충격을 안긴 삼성엔지니어링의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08억2천만원으로 지난 9월 전망치(143억2천만원)보다 24.4% 급감했다.
3분기에 역대 두번째 순손실을 기록한 포스코에 대한 눈높이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포스크의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6519억2천만원으로 9월(7701억3천만원)보다 15.3% 하향 조정됐다.
증권사들은 글로벌 철강 수요의 부진과 원자재(철강) 가격 하락 등으로 포스코의 실적 전망치를 줄줄이 낮추고 있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대우조선해양은 3분기에 영업손실 1조2171억 원, 당기순손실 1조3643억원을 기록하며 2분기(-3조318억원)에 이어 조 단위 적자 행보를 이어갔다. 3분기까지 누적 적자는 무려 4조2922억원에 이른다. 4분기 영업손실 전망치 규모도 최근 한달 새 크게 확대(233억7천만원→592억원)됐다. 같은 기간 한진중공업(-45.3%)과 현대중공업(-37.1%) 등의 영업이익 전망치도 뚝 떨어졌다.
중국 기업의 메모리 시장 진출 등으로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 반도체 업종의 기상도도 밝지 않다.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한달 전보다 3.9% 하향 조정된 1조2571억원이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주요기업들의 실적 하향 조정세가 여전한데다가 4분기 실적 역시 재차 하락세를 나타내며 부담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불황 돌파의 카드로 대규모 투자를 시행하기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주요대기업들의 재무상태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 및 대여금 회수에 나선 상태기 때문이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4회계연도 기준 국내 30대그룹(공기업·금융사 제외)의 1050개 계열사 중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곳은 모두 236개사로 전체의 22.5%를 차지했다.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으로 나눈 값인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라는 것은 기업이 한 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이자 비용보다 적음을 뜻한다. 영업 활동을 통해 버는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다는 얘기다.
특히 동부, 에쓰오일, 미래에셋그룹의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곳은 전체 계열사 중 50%에 달했다. 부영, 현대, 포스코, KCC, 한화그룹도 3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이처럼 대출과 보증으로 연명하는 속칭 ‘좀비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시중은행과 신용카드·캐피털사, 저축은행, 상호금융사에 최대한 엄격한 기준으로 대출 자산 건전성 분류를 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11~12월 중 진행할 대기업 신용위험평가도 엄격하게 추진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올해 안에 부실기업을 색출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의 조치까지 가급적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에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라 결국 긴축과 사업재편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삼성그룹이 화학 부문을 정리한 것처럼 내년에는 그룹별로 인수·합병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대한 몸집을 줄여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여, 한동안 실적 하향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