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부국장) 한국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글로벌 경기악화가 계속되면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차 등 대표적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내리막길이다. 조선 ‘빅3’(현대·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날개없는 추락이 계속되고 있고 포스코 현대중공업 동국제강 등 중공업·철강분야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아예 나라가 나서서 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블랙프라이데이로 반짝 살아나는듯했던 내수경기는 다시 얼어붙고 있고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유통기업들은 면세점 등 새먹거리 찾기에 분주하다. 건설업계는 오늘 아니면 아파트를 못팔 것처럼 꺼져가는 부동산 불씨를 살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계부채 1200조는 우리경제의 뇌관이 된지 오래다.
최근 재벌닷컴 집계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5곳 중 1곳이 번 돈으로 은행 이자도 못 내는 ‘좀비기업’ 수준이었다.
경제살리기 국정화보다 급하다
며칠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 연설 처음부터 끝까지 ‘경제’라는 단어를 56번이나 언급했다. 특히 일자리창출을 몇 번이나 말하면서 경제활성화 법안의 국회 처리를 촉구했다.
대통령이 강조한 법안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국제의료지원사업법안이다. 현 정부는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으로 30개를 내놓아 이중 23개가 처리됐다. 남은 7개 중 처리가 시급한 것들이다.
대통령은 “중요한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수년째 처리되지 못해 가슴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라고까지 말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일자리창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민관합동으로 ‘서비스산업선진화 위원회’를 만들어 5년마다 기본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 중점육성 서비스산업을 선정해 규제를 개선해주고 자금, 세제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연도별 종업원 수 변화를 조사한 결과 지난 3년간(2011~2014년) 종업원이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서비스(유통) 분야였다. 신세계 이마트가 1위(1만3446명)였고, 삼성디스플레이(8842명), 현대자동차 (7836명), CJ CGV(6428명), 롯데리아(6022명) 순이었다.
법이 시행되면 파격적인 규제개혁, 유통구조 혁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대통령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처리되면 최대 69만개까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통기업들 또한 관련법이 도입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가 최근 서비스기업 40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84.9%가 조속한 법시행을 바랬다.
관광진흥법과 국제의료지원사업법 또한 내수활성화·일자리와 직결된 법안이다. 한해 중국인 방문객이 600만명을 돌파한 상황에서 숙박시설은 턱없이 부족해, 상당수 외국인들이 홈스테이, 게스트하우스 등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준 높은 의료, 관광, 콘텐츠, 금융, 교육 등의 서비스를 13억 중국인에게 제공하자는 게 이 법안들의 취지다.
수년전 발의된 이 법안들이 지금까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데는 1차적으로 야당의 책임이 크다. 야권은 정부의 규제완화가 재벌특혜와 의료민영화를 염두에 둔 것이라며 발목을 잡아 왔다.
하지만 관광진흥법 특혜 시비에 휘말렸던 대한항공이 최근 호텔을 짓지 않겠다고 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됐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또한 공공의료 부문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여야가 어렵게 가닥을 잡았다.
하필 이런 때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가 터졌다.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고 역사학자들은 교과서 집필을 거부하고 나섰다. 야당은 모든 입법 논의를 중단했다.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이 법안들은 자동폐기 된다.
대통령의 결단이 시급하다. 국정교과서와 경제활성화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면 당연히 ‘경제’를 택하길 바란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역사바로세우기’를 ‘경제살리기’에 양보한 것으로 치고 이 사태를 매듭짓길 간절히 원한다.
지금은 대통령만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게 아니다. 1000만 비정규직, 수백만 청년실업자,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딛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마음이 시커멓게 멍들고 있다. 발목 잡는 야당에 속이 타고, 뜬금없는 ‘국론통합’으로 국정 공백을 초래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속이 탄다.
“대통령님! 속이 타들어 간다던 경제법안들, 국정화 포기로 살릴 용의가 없으십니까.”
(CNB=도기천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