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청년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청년희망펀드를 조성해 일자리 창출의 종자돈을 마련해 왔지만 수백억원에 불과한데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이 많았다. 청년희망재단이 공식출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크라우드펀딩 기법을 통한 청년벤처 육성 청사진이 눈길을 끈다. 88만원 세대의 숨통이 트일까? (CNB=도기천 기자)
정부가 ‘노사정 대타협’을 계기로 청년일자리 해결을 위한 일명 ‘청년희망펀드’ 조성사업을 시작한지 40여일이 됐다.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일시금으로 2000만원을 기부하면서 시작된 뒤, 유명인들의 후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KB국민, 신한, 우리, 농협은행에 기부금 모집 창구가 개설돼 ‘공익신탁’ 형태의 기부금 모금이 진행 중이다.
황교안 국무총리,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상열 광주상의 회장(호반건설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의 기부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 등 삼성 측이 250억원, 정 회장과 현대차 임원들이 200억원을 냈다. 박 대통령은 매달 월급의 20%를 기부하고 있다.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가하면 이명박 정부 시절의 통일항아리처럼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까지 논란이 이어져 왔다.
새정치연합 추미애 의원은 국정감사 때 “겨우 수십억원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느냐”며 실효성을 따졌다. 대부분 언론들도 ‘취지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지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관제 펀드’ ‘준조세’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난 19일 청년희망펀드로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을 벌일 ‘청년희망재단’이 공식 출범하면서 우려가 기대로 바뀌고 있다.
초대 이사장에 선임된 황철주(56)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는 벤처업계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짧은 직장생활, 청년기업가로의 변신, 성공한 벤처1세대로 알려졌다. 벤처기업협회장을 역임했으며, 사재 20억원을 출연해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박근혜정부 초대 중소기업청장으로 내정된 적도 있다.
아직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나온 건 아니지만, 청년희망재단은 기업들의 고용수요에 적합한 맞춤형 인재 양성을 지원하고 청년층의 취업역량을 강화하는 ‘청년희망아카데미’ 사업과 청년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각종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특히 청년들이 제안하는 사업을 크라우드펀딩 방법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점이 눈길을 끈다.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은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중소 사업자가 다수의 소액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지난 7월 관련 법안(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개정안)이 통과돼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박 대통령은 크라우드펀딩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소·벤처 기업이 은행권 도움 없이 투자자를 상대로 직접 프로젝트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조경제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지난 임시국회 때 청와대 정무수석이 여당 원내지도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법안이니까, 꼭 처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크라우드펀딩은 이미 선진국에서는 활성화된 금융기법이다. 세계금융의 중심인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보편화됐다.
2008년 출범한 대표적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회사인 ‘킥스타터’는 지난해 평범한 한 시민이 고안한 쿨리스트 쿨러(Coolest Cooler)라는 다기능 아이스박스를 내놓고 1330만 달러(한화 약151억원)를 펀딩시켰다. 당초 목표는 5만 달러였다. 이 아이스박스는 대박을 냈다.
국내에서도 제도 도입 이전부터 음으로양으로 중소기업이 소액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윈윈한 사례가 많다.
강원도 태백에서 24가구 규모의 빌라를 짓다 자금난을 겪던 한 건축주는 공사 중단 위기에서 부동산(빌라)을 담보로 크라우드펀딩 업체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펀딩 개시 30분 만에 49명의 투자자들에게 10억원의 자금을 연18%의 이자로 펀딩 받아 빌라를 완공할 수 있었다.
크라우드펀딩은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넘어 직접 중소벤처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는 지분투자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사모펀드(PEF) 설립요건이 완화될 예정이라 플랫폼 회사를 통해 비장상자에 대한 소액 지분투자가 가능해진다. 국회는 관련법을 개정해 플랫폼 회사 설립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꿨으며, 등록 요건도 자기자본 5억원으로 낮췄다.
이렇게 될 경우, 청년희망재단은 유망한 청년기업을 선정한 뒤 소액투자자들로부터 지분 및 제품투자를 유도할 수 있게 된다. 투자자는 해당 청년기업이 이윤을 거두는 만큼의 주가차익과 배당금을 얻을 수 있다.
자금 투자가 아닌 완제품을 구매하는 일종의 공동구매 형태의 크라우드펀딩도 있다.
최근 문을 연 플랫폼사인 펀딩포유는 KBS ‘황금의 펜타곤’에 소개된 김서정(11) 어린이의 발명품 ‘거꾸로 못다는 태극기’를 펀딩 상품으로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태극기는 깃대봉과 태극기에 각각 자석이 달려있다. 자석의 밀어내고 당기는 성질을 이용해 어떤 경우에도 태극기가 거꾸로 장착될 수 없게 만들었다. 1000개 주문을 목표로 주문을 받고 있다. 1000개를 넘으면 제작에 들어가고, 목표량에 미달할 경우 투자금을 전액 돌려준다.
미리 제품을 만들어 둔 뒤 투자받는 형태가 아니라 아이템을 내놓은 사람(발명자)과 투자자 모두 위험부담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소형 손전등만한 크기의 소화기인 ‘내 손 안의 소방대원’도 같은 방식으로 펀딩되는 발명품이다. 가스렌지 등 조리시설 옆에 나눴다가 유사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부 투자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청년희망재단이 추천한 청년기업이 사업에 실패할 경우 투자자들이 입는 손실에 대한 책임, 수익률 배분에 대한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정부 또한 이런 점에서 일반투자자의 경우 1개 기업 당 200만원, 연간 500만원으로 투자한도를 정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 등 소득요건을 구비한 투자자는 1개 기업에 1000만원, 연간 2000만원을 투자할 수 있다. 해당기업은 1년간 7억원까지만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했다.
크라우드펀딩 전문가인 강명재 경영학 박사(씨케이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는 “청년희망펀드를 통해 조성된 몇백억원으로 수백만명의 청년 활동층을 지원한다는 건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은 희망펀드의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획기적인 금융기법”이라며 “대기업 중심의 창조경제 시스템이 청년기업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하향식 시스템이라면, 크라우드펀딩은 청년벤처기업을 시민들이 직접 보고 판단해서 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국민창조경제”라고 강조했다.
대학생창업연합네트워크 김준구 회장(중앙대·26)은 “청년사업가들은 아이템을 내놓고 대중(투자자)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아이디어의 시장성을 검증하고, 이후 검증된 생산품은 청년희망재단이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지원하는 ‘청년-대중-희망재단’의 유기적 결합이 이뤄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청년사업가와 투자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희망펀드가 운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