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군인공제회 국정감사에서 이상돈 이사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군인공제회(이사장 이상돈)가 대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중소기업을 내쫓은 사실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으며 주목 받은 바 있다. 이후 쫓겨난 중소기업이 군인공제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CNB가 소를 제기한 중소기업 케이아이엔엑스(KINX)로부터 소장을 단독 입수, 부동산 및 법조계 관계자 등의 조언을 토대로 사건을 조망했다. (CNB뉴스=이진우 기자)
삼성물산 유치하려 중기 내쫓아
일방적 통보…어떤 보상도 없어
군인공제회 “90일전 통보 적법”
법조계 “권리남용… 효력 없어”
지난 1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32층 건물을 보유한 군인공제회가 삼성물산 패션부문(구 제일모직)을 유치하기 위해, 기존에 입주해 있던 KINX를 입주계약을 새로 한 지 두 달도 안 된 상태에서 일방적 해지 통보를 하고 내쫓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민간기업도 아닌 공익을 추구해야 하는 공공기관이 중소기업을 일방적으로 내쫓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이 도를 넘어섰다는 증거”라면서 “군인공제회는 KINX 측에 사과해야 하고 입은 손실에 대해서도 성실한 보상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군인공제회 측은 이와 관련해 김 의원에게 “계약서상 90일 전에만 통보하면 중도해지가 가능해 적법하다”고 해명했다.
지난 15일 취재진은 김광진 의원실을 찾았다. 그리고 의원실 관계자로부터 보도와 관련한 모든 자료를 넘겨받았다. 아울러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KINX 측이 군인공제회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이달 22일 첫 공판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그 배경과 내용이 매우 궁금했다. 이는 어찌 보면 ‘갑의 횡포’에 맞서는 ‘을의 반격’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KINX 관계자는 지난 19일 CNB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 일방적인 해지 통보를 받고 법적 검토를 한 결과, 나가지 않고 버티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회사의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한 손해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서 “어쩔 수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새로운 둥지를 찾아야 하는 결정을 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KINX는 지난 2012년 4월 1일부터 2014년 3월 31일까지 2년 계약 조건으로 군인공제회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1년간 계약을 연장하고 임대보증금을 증액했으며, 올해 3월 31일에는 2017년 3월말까지 임대차를 2년간 갱신하는 계약을 새롭게 체결했다.
그런데 임대차계약을 갱신한 지 겨우 2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임대차계약을 일방적으로 중도해지 하겠다는 군인공제회 측 공문을 받았다. 이와 관련 소장에 의하면 KINX가 해지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자, 군인공제회 측은 단지 월차임을 내지 않는 KINX와 같은 전세 임차인을 내보내고 월차임을 내는 월세 임차인을 들이겠다는 답변뿐이었다고 한다.
군인공제회가 계약해지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임대계약서 제2조 제3항의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임대인 또는 임차인이 90일 전에 상대방의 귀책사유 없이 해지 통보를 하면 기간 경과 후 본 계약이 해지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계약 내용을 토대로 중도해지 통보가 적법하다고 군인공제회 측은 주장하고 있다.
군인공제회가 새롭게 계약한 지 두 달도 안 돼 중도해지를 한 이유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유치하고자 한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앞서 5~17층에 입주해 있던 IBM이 올해 3월 중순에 군인공제회관에서 퇴거하면서 대규모 공실이 발생했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던 것.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1층과 2층 및 5~19층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KINX 관계자는 “손해배상의 범위로 부동산 중개수수료, 이사비용과 계약 만료까지의 내부시설물 감가상각비 등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군인공제회는 당사에 아무런 사전 협의나 계약 만료기간 전 퇴거에 따른 어떤 보상제의도 하지 않았다. 이는 명백한 갑의 횡포다”라고 말했다.
법조계·부동산, "갑의 횡포" 지적
한편,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이 사건과 관련해 CNB에 “새롭게 계약 갱신을 하고 월세를 받겠다는 이유로 두 달도 안 돼 나가라는 행위, 즉 중도해지는 당연히 권리남용에 해당됨과 아울러 올해 5월 13일 신설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10조 및 10조의 2규정에 위반돼 무효”라며 “임대계약서 제2조 제3항(해지통보)의 규정은 (임대인/건물주, 임차인/세입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규정이 아니라) 임차인에 불리한 부분(즉 임대인이 계약기간 중 귀책사유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부분)이 무효라는 것이며, 임차인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부분은 유효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즉 특별한 귀책사유가 없다면 임차인이 임대인의 일방적인 통보를 수용할 의무가 없으며, 반대로 임차인은 귀책여부에 상관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단 얘기다.
그러면서 “수천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한 상태에서 공서양속에 반하거나 법규를 위반하는 내용의 임대차계약을 임차인들에게 강요하고 계약의 해지권을 남용하는 행위는 군인공제회법의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으며, ‘갑의 횡포’로 비춰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부동산 이호영 대표는 20일 CNB와 만나 “전세 2년 계약에서 두 달 만에 중도해지가 됐을 때 임차인으로서는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부동산 중개수수료, 이사비용, 인테리어 비용에 대해서는 이자 정도가 될 것”이라며 “임대인의 일방적인 중도해지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손해는 보상하는 것이 맞다. 반대로 임차인의 중도해지 시 공실이 계속될 경우에 계약기간 동안 그 임대료에 대한 이자 등을 임대인이 청구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말했다.
군인공제회 측은 지난 1일 국감에서는 계약서 내용대로 했으니 적법하다는 해명을 한 바 있었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21일 CNB와 통화에서 “손해배상의 문제는 지금 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니 향후 재판의 결과에 따라 조치하면 될 것”이라며 “또한 최근 일부 언론에서 나오는 ‘갑질 논란’ 부분은 재판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기관 입장으로는 매우 부담스런 내용이다”고 밝혔다.
(CNB뉴스=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