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폭스바겐 그룹의 자동차 배출가스 조작 후폭풍이 거세다. 국내 차주들이 집단소송에 나선 가운데 환경부는 국내에서 판매된 폭스바겐 차량 7종에 대한 ‘배출가스 조작’ 검사에 착수했다. 연말에는 현대·기아차 등 국산차에 대한 검증도 진행된다. 폭스바겐은 리콜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처지다. 폭스바겐의 히든카드는 뭘까? (CNB=도기천 기자)
국내에서 배출가스 조작 프로그램이 달렸다고 의심받고 있는 차량은 폭스바겐 골프와 제타, 비틀 그리고 아우디 A3 등 7종의 디젤 차량이다. 최대 12만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이들 차량의 리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리콜을 해서 조작 장치를 떼어내면 출력과 연비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소프트웨어를 제거하고도 당초 계약서에 적힌 출력·연비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엔진개선 비용이 들게 된다.
그렇다고 리콜을 안 할 수도 없다. 환경부의 정밀검사 결과 국내 시판된 차량에서도 배출가스 조작이 드러날 경우,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이 자명하기 때문. 환경부는 배출가스 조작 검사를 다음 달 중순까지 마칠 계획이다.
폭스바겐 측이 리콜을 해도 소비자들이 이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리콜로 인해 연비와 출력 등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차량 소유주는 리콜에 반드시 응해야 할 법적의무가 없기 때문.
하지만 이 경우는 환경부가 어떤 조치를 내리느냐에 달렸다.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환경기준에 맞게 교정했다는 내용의 ‘리콜 증명서’가 없을 경우, 정기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 자동차전문가는 “신차 구입 후 4년이 지나면 받아야 하는 디젤차 정기 검사는 실주행조건에서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검사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 따라서 리콜 증명서가 있느냐 없느냐가 검사 기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환경부가 이같은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리콜 받지 않으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심리적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한다.
따라서 폭스바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아직까지 명확한 리콜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제까지 확인된 결함은 유로 6 기준에 따른 차종이 배출가스의 양을 조작하는 소프트웨어를 달아 규정상 금지된 ‘임의 설정’(defeat device)을 했다는 것. 해당 차량들은 차의 두뇌 격인 ‘ECU소프트웨어’에 일반도로 모드와 실험실 모드 두 가지가 작동하게끔 프로그래밍 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조작 원리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특정 상황에서 배출가스를 조절하는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방식인 것으로 추정된다. 주행 패턴을 인식해 실제 주행 조건과 검사소의 조건을 구별 해낼 수 있고, 각기 그에 맞는 프로그램이 동작하는 식이다.
이 프로그램은 연비 향상이나 기타 다른 기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까지는 검사소의 측정 패튼을 인식해 이때만 질소화합물이 덜 나온다는 점만 알려졌다. 특정 조건에서만 배출가스를 줄이는 ‘치트키’가 들어있던 셈.
리콜을 통해 이 프로그램을 제거한다면 공인 연비가 하락하고 환경기준을 충족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일반도로 주행모드를 검사실 모드와 같게 바꾼다면 도로 주행에서 출력이 하락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따라서 가장 좋은 리콜 방법은 차량에 선택적촉매장치(SCR)를 추가로 설치해 출력을 떨어뜨리지 않고 배출가스의 질소산화물을 저감하는 것인데, 상당 부분 차량의 설계를 바꿔야 하는 만큼 현실적으로 어렵다.
어느 쪽이든 이 차들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친환경적이라는 점 때문에 차를 구입했는데 실제 차의 연비나 친환경성이 기대에 못미친다고 소송하거나, 혹은 리콜 후 출력이 하락했으니 애초 계약내용과 다르다고 보상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법무법인들은 승소율 100%에 가까운 이 소송전에 주사위를 던진 상태다.
이번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에 따르면, 6일 38명의 차량소유주가 ‘매매계약 취소 및 매매대금 반환청구’ 2차 소송을 제기했다. 바른 측은 지난 9월30일 1차 소송 이후 문의가 1000건, 소송서류 제출에 500여명이 몰렸다고 밝혔다.
바른은 매주 한 차례씩 추가 소송을 낼 계획인데, 법조계에서는 소송인원이 최소 1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사단법인 소비자시민모임 등 시민단체도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국회 환경노동 위원회 소속 이석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자동차 배출가스 인증 위반 과징금을 현행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올리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결국 키는 환경부의 검사결과에 달렸다. 환경부는 지난 1일부터 유로6 기준으로 제작된 차종인 골프와 아우디A3, 제타, 비틀 등 3종의 신차와 1종의 운행차량, 유로5 차종인 골프 신차와 티구안 운행차량 등 총 7종에 대한 정밀검사를 진행 중이다.
폭스바겐 차량이 미국과 유럽에서처럼 질소산화물 저감장치(LNT)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는 꼼수를 부렸는지를 밝히는 게 관건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폭스바겐 디젤차 중 9월 이전에 수입된 유로5 기준 모델은 LNT가 아예 장착돼 있지 않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다른 환경규제 때문이다.
환경부는 LNT는 없지만 배출가스저감장치(EGR)을 통해 다른 꼼수가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EGR은 연소된 배출가스를 엔진 연소실로 재유입해 질소산화물을 발생시키는 산소 농도를 낮추는 장치다.
박심수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유로 5의 경우 EGR에 문제가 있을 개연성이 크다”며 “EGR 밸브를 조작해 시험 결과를 왜곡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EGR 장비는 엔진과 같이 붙어 있기 때문에 제어장치 조작이 유로 6의 LNT(질소산화물 저장·제거장치)나 SCR(선택적 촉매 환원장치)보다 쉽다”고 주장했다.
환경부의 검사결과는 다음달 중으로 나올 예정이다. 수입차의 배출가스 조작 사실이 밝혀질 경우 리콜 여부에 상관없이 천문학적인 피해보상 소송이 따를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폭스바겐으로서는 리콜을 해도 문제고, 안해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 같다”며 “(리콜을 통해) 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고 환경기준을 맞추는 게 최상인데, 이는 고도의 기술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결국 폭스바겐의 운명은 숨겨진 기술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고 내다봤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