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미성년자 보유주식가치 3조원 넘어
한미약품가(家) 어린이 7명 주식 5500억원
‘순환출자 해소→지배력 강화’에 증여 필수
공정거래위원회가 국회 정무위원회 신학용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최근 제출한 ‘대기업 집단 중 미성년자(친족) 주식소유 현황’에 따르면 2014 회계연도 기준으로 15개 그룹에서 미성년 친족 39명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진 주식의 가치는 지난 8일 기준으로 총 962억원이다. 한 명당 평균 약 25억 원어치를 보유한 셈이다.
그룹별로 보면 GS 미성년 친족 6명이 710억 원어치를 보유해 액수가 가장 컸다. 이들은 ㈜GS, GS건설, ㈜승산 등 상장·비상장 8개 계열사 주식을 골고루 나눠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의 차남(11세)은 지난 4월말 기준으로 166억원 어치의 주식을 갖고 있다. 허 부사장의 차남은 5살 때인 2009년에 GS 주식(27만3천주)을 증여받았으며, 이후 추가로 장내 매입을 통해 32만여 주를 보유하고 있다.
KCC는 미성년자 친족 1명이 KCC 주식 107억 원어치를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산은 미성년자 3명이 두산건설, 네오홀딩스, ㈜두산의 지분을 총 37억 원어치 보유했다.
이밖에 롯데, LS, 대림, OCI, 효성, 동국제강, 한국타이어, 태광, 세아, 현대산업개발, 대성, 중흥건설 등에서 그룹 총수의 친족 미성년자들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20억 원어치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15개 대기업군에서 범위를 더 넓혀 상장회사까지 확대하면, 재벌가 어린이·청소년 자녀들의 주식가치가 수조원대에 이른다.
재벌닷컴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상장사 주식 1억원 어치 이상을 갖고 있는 만 12세 이하(2002년 4월 30일 이후 출생자) 어린이는 121명(4월말 기준)이었다.
이 통계는 어린이에 국한된 것이라 미성년자 전체로 확대할 경우, 이들이 가진 지분가치가 최소 3조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이 주식 부자’는 2012년 4월 말 102명으로 처음 100명을 넘어선 뒤 2013년 118명에 이어 지난해 126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100억원이 넘는 상장사 주식을 보유한 어린이는 8명이나 된다. 이 중 7명은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손자와 손녀들이다. 이들이 가진 주식 시가총액은 5500억원이 넘는다.
임 회장의 손자 임모(11)군은 800억원대의 주식으로 미성년 주식 부자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위도 한미사이언스 주식 57만여주를 똑같이 보유한 임 회장의 친·외손주 6명이 차지했다. 한미약품가(家) 미성년자 7명의 주식 평가액 총합은 5524억원(지난 15일 종가기준)에 이른다.
또 황우성 서울제약 회장의 동갑내기 두 아들(11세)은 할아버지인 황준수 서울제약 창업자로부터 증여받은 50억원 어치의 주식을 보유 중이다.
최성원 광동제약 회장의 아들(12)은 41억원, 박종호 대봉엘에스 회장의 손녀(12)는 40억원, 이화일 조선내화 회장의 손자(11)는 35억원 등으로 뒤를 이었다. 또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의 조카(12세)가 26억원,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손자(10)가 24억원, 김상헌 동서 고문의 손녀(5)가 23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손자와 손녀 4명도 7억원∼12억원씩 주식을 보유했고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손자와 손녀 2명도 7억원씩을 보유한 주식 부자였다. 두산과 세아, 영풍, LS, LIG 등의 재벌가 3~4세들도 어린이 억대 부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어린이·청소년은 주식을 증여받거나 장내매수 등으로 주식 부자가 된 것으로 알려졋다.
신학용 의원은 이렇게 미성년자 친족에게 주식을 증여하는 이유를 크게 경영권 강화 차원과 절세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분석했다. 친족들이 서로 나눠서 많은 주식을 보유할수록 지배력이 공고해지고, 좀 더 일찍 주식을 증여하는 것이 증여세를 줄일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국내 대표기업 200개의 시가총액을 지수화한 KOSPI200은 2006년 1월 3일 178.81로 출발했으나, 현재 234.26(24일 종가기준)으로 31%이상 뛰었다.
신학용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대부분 상장사들이 큰 이변이 없는 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는 만큼, 기업들은 하루라도 빨리 자식에게 주식을 물려주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인수합병 눈총, 미리미리 대물림 유리
또 최근 대기업들이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도 주식증여 열풍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올 상반기 인수합병(M&A)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SK㈜와 SK C&C 합병 등 대기업들의 구조 재편에 있어 최대 관건은 오너일가의 지배력 강화였다. 그러다보니 합병비율 조정 문제 등에 있어 여론의 눈총이 따가웠다.
이처럼 이미 기업가치가 성장할 대로 성장한 상태에서 인수합병을 진행하는 것보다 미리 자녀에게 증여해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높여 놓는 게 차후의 사업재편에 있어 유리하다는 것이다.
정세현 경영컨설턴트는 “최근 롯데 사태의 예에서 보듯, 순환출자(계열사 간의 상호출자로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방식)를 해소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커지고 있는 만큼, 미리 증여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해 두는 게 추후에 금융당국과 언론의 눈길을 피하기가 용이하다. 이런 흐름이 어린이 주식부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국정감사에서 공정위와 국세청이 해당 미성년자가 보유한 주식을 계열사별로, 또는 매입시기별로 각각 조사한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학용 의원은 탈세와 불법이 있었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건별로 조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신 의원은 “수십억, 수백억원의 자산을 성년이 되기 전부터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으려는 건 아니다”며 “다만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무라는 측면에서 국민 정서를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