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0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AI방역상황실에서 열린 AI 방역상황회의에서 최근 전남지역에서 발생한 AI 발생원인 및 전파 경로를 신속히 규명해 추가 확산 방지에 총력을 다해줄 것과, 방역 조치상황 등의 신속한 대국민홍보로 추석을 맞아 국민이 불안해 하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정감사 시즌을 맞아 정부와 공공기관 등이 국감장에 나와 각 상임위 소속 의원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것을 보는 게 요즈음의 일상이다.
각종 비리 의혹과 정책 실패 등과 관련해 수많은 질타를 받고 있지만, 그에 대한 변변한 해명 하나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위기관리에 대한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인상이 짙다.
왜 이들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 답은 공직사회에서는 이미 관행으로 굳어버린 지 오래된 순환보직제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돌고 도는 순환보직… 위기는 ‘남의 일’
순환보직제는 한 곳에 장기간 근무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정부패를 예방하고 창의적인 직무 수행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 제도 하에서도 여전히 부정부패의 연결고리는 끊어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잦은 부서 이동으로 인해 전문성과 책임감이 결여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나 기업에서 조직의 위기관리의 첨병이랄 수 있는 홍보부서는 업무의 특성상 담당자들이 네트워크 구축과 언론과의 관계 형성 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기관 홍보담당자들은 부서에 배치돼 2~3년간 열심히 근무하며 업무에 익숙해질 무렵엔 다른 부서로 전출 가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A공사의 한 홍보담당자는 CNB와 통화에서 “직장 경력이 12년인데 홍보부서에 배치된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아직도 수많은 언론을 상대로 유연하게 홍보 업무를 수행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면서 “시간이 흘러 업무에 익숙해질 즈음엔 아마도 다른 부서로 가게 될 것 같다. 또 홍보 업무를 직접 해보니 전문성은 물론 많은 경험도 필요한 분야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B공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홍보 업무만 10년째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전에 같이 근무했던 선후배들은 이미 다른 부서로 다 가고 나 혼자만 남아 있다”면서 “또 회사에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관련 업무가 내게 몰리는 경향도 있다. 홍보 업무는 특성상 혼자서 관련 업무를 해내기엔 벅찬 분야”라고 지적했다.
기업이나 조직에 위기가 발생하면 원인 규명과 사고 수습, 재발 방지 등과 관련한 다양한 액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주주, 정부, 언론사, 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때 이해관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반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게 되면 오히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난 17일 오전 7시께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의 한 식품제조공장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누구에게나 위기가 닥친다. 이는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생로병사가 아니더라도 갑자기 사고가 나거나 실직을 당하는 등 예기치 않았던 문제로 인해 곤란을 겪을 수 있다.
국가나 기업도 예외는 없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도 9·11테러를 당했고 일본에서는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기업의 위기 사례는 아예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국내만 보더라도 삼성의 서해안 기름유출사고, 동아건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두산의 페놀 방류사건, 삼양식품 공업용 우지사건, 시티은행의 외환 유출사건, 현대캐피탈과 SK커뮤니케이션즈의 개인정보 유출사태 등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표적 사례들이다.
세계경영연구원의 위기관리 전문가인 김자영 교수는 CNB와 인터뷰에서 “위기는 불현 듯 닥치지만 위기를 잘 극복하는 기업을 보면 평상시에 준비가 잘 돼 있다”면서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도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슈를 선별하고 시기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고 처신하느냐’이고 여기에 위기관리의 성패가 달려있다. 또 능숙한 위기관리 전문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홍보부서의 역량 강화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오랜 경험이 축적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언론사 기자 출신들을 스카우트해 홍보라인을 강화하기도 한다.
이는 크건 작건 위기로 인해 회사의 존망이 결정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똑같은 위기를 당했는데 어떤 기업은 망하고 어떤 기업은 오히려 위기를 발판삼아 더욱 성장하는 사례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일 좀 할 만하면 ‘메뚜기’ 신세그런데 공공기관의 홍보부서는 이런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순환보직제라는 미명하에 홍보 업무에 익숙해질 때면 다른 부서로 전출을 보낸다.
취재진이 여러 공공기관의 홍보부서를 취재한 결과, 불과 최근 몇 년 사이에 대부분의 홍보담당자들이 타 부서로 전출을 갔고 새로운 얼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효율적인 위기관리 대응이 나올 리 만무하다. 위기 상황에서는 오랜 기간 다져온 네트워크가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름의 전문성과 일관성도 뒷받침 돼야 한다. 또 유능한 홍보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예산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공공기관의 위기관리 부실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그저 룰에 따라 순환보직제를 고집하는 데서 초래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은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홍보부서를 몇 차례 순환하면서 베테랑으로 평가받고 있는 C공사의 전 홍보실 관계자는 CNB에 “지금도 기자들로부터 하루에 수십 통씩 전화가 오고 있다. 비록 홍보 일선에서 떠나 있지만 회사 업무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일일이 대응해주고 있다”면서 “또한 경험이 일천한 후배들이 홍보부서에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볼 때면 선배로서 멘토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리 공공기관이라 하더라도 특유의 전문성과 경험이 필요한 홍보 업무는 순환보직제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이런 점을 공공기관 경영진들이 인지해서 홍보부서의 역량 강화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CNB뉴스=이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