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실 보도자료 태반이 ‘롯데 죽이기’
정책 실종…선거 앞둔 ‘롯데국감’ 오명
기업들 “오너 망신주기 국감, 이젠 좀”
CNB가 국정감사(10일 개시)를 앞둔 1~9일 국회가 쏟아낸 기업관련 보도자료를 분석한 결과, 롯데가 이름을 올린 경우가 절반을 넘었다. 이중 상당수가 롯데의 갑질 사례 등 경영행태를 비판한 자료였다.
새누리당 이운룡 의원(정무위원회)은 9일 대기업 중 롯데의 국가유공자 의무고용률이 가장 낮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의원이 국가보훈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들여다보면, 롯데그룹의 의무고용률이 27.4%인 반면 지방법원(12.7%), 제주특별자치도(16.7%), 미래창조과학부(16.9%), 서울특별시(20.0%)는 롯데보다 채용 비율이 낮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단 1명도 채용하지 않아 취업률이 0%였다.
올해부터 국가기관의 특별채용비율은 일반직 공무원 정원의 10%에서 15%로 상향 조정돼 5833명이 국가유공자 몫으로 배정됐지만 국가가 실제 채용한 인원은 3409명에 불과했다.
롯데가 재벌 대기업군에선 의무고용률이 낮은 편이었지만, 이보다 못한 정부기관들이 수두룩했다는 점이 ‘롯데 국감’에 묻혀 주목받지 못한 것이다.
롯데 일부 계열사들이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으로 등록됐다는 사실을 문제 삼은 의원도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정무위원회) 의원은 “롯데그룹 계열사 81개 중 외투기업이 28개”라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핵심 계열사 대부분이 외투기업으로 운영되고 있고, 호텔롯데·롯데리아·세븐일레븐·롯데정보통신 등은 모두 특혜로 성장한 외투기업이었다”고 주장했다.
외투기업은 해외투자 유치 활성을 목적으로 1998년 제정된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외국인 투자액이 1억원 이상이고 외국인이 의결 주식 지분 10%이상을 갖고 있는 기업을 이른다. 이들 기업에는 법인세·소득세·재산세 등 각종 조세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현재 국내에는 1만개가 넘는 기업이 외투기업으로 등록돼 있을 만큼 상당히 보편적인 제도다. 과거 정부가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만든 혜택인데, 지금은 ‘롯데 공격용’으로 사용된 셈이다.
심지어 같은 위원회, 같은 당 내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겹치기 자료요구’를 한 사례도 있었다.
정무위 소속 신학용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2005년부터 올해 9월 현재까지 롯데의 불공정행위 적발건수가 총147건으로 대기업중 1위였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며칠 뒤 같은 정무위 소속인 김기준 의원(새정치민주연합)도 비슷한 내용을 언론에 배부했다.
두 의원의 자료를 보니, 롯데가 공정위로부터 제재 받은 147건 중 88건은 가장 가벼운 수준인 ‘경고’였다.
특히 과징금 액수로 따지면 롯데가 679억원으로 주요 기업집단 중 가장 낮았다. 삼성은 롯데보다 무려 10배나 많은 6845억원이었으며, SK(6269억원), 현대차(3279억원), LG(2019억원)가 뒤를 이었다.
롯데가 유통·서비스 주력기업 임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했다는 평을 받을 수도 있었음에도, 제재 건수만을 문제 삼아 롯데를 ‘나쁜 기업’으로 몬 것이다.
이처럼 롯데가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면서 아예 투자를 포기한 롯데 계열사까지 등장했다.
롯데상사는 경기도 안성 지역에 3600㎡ 규모의 도정공장을 지을 계획이었는데 국감에서 문제가 되자 ‘조건부 사업중단’을 선언햇다.
당초 롯데는 대규모 도정 시설을 통해 자체 상표 쌀을 생산, 롯데마트 등 계열사 유통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쌀 가격을 많게는 10% 정도까지 낮출 수 있다는 게 롯데 측의 추산이다.
하지만 기존 도정 사업을 하던 미곡종합처리장(RPC)들이 ‘대기업의 재래상권 침해’라면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농림해양수산위 황주홍(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감에서 이 사안을 철저히 다루겠다며 김영준 롯데상사 대표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러자 롯데 측은 9일 “만약 농민이 반대한다면 추진중인 쌀 도정공장(정미소) 건설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국감 증인채택에 따른 기업의 사업포기 첫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재벌개혁 뒷전, 총수 망신주기 급급
한편에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를 두고 설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일 정무위 전체회의에선 새누리당 소속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과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이 신 회장 증인 채택을 놓고 막말에 몸싸움까지 벌였다.
야권은 “재벌개혁에 예외가 없다”며 신 회장을 비롯,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및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10여명의 재벌총수를 국감장에 세우겠다며 벼르고 있다.
재계에선 ‘롯데 죽이기’ 등 반(反)재벌 정서가 확산되는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발 쇼크 등 글로벌 위기로 투자·신사업이 위축된 상황에서 국정감사라는 악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CNB에 “이미 롯데 총수가 대국민사과와 개혁을 약속했으며, 실제로 그룹 산하에 TF팀을 꾸려 순환출자 해소, 기업공개, 임금피크제 전면실시 등 획기적인 혁신을 해나가고 있는데, 국감에 총수를 불러 망신을 주겠다는 게 올바른 일인지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8일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무분별한 증인 채택과 망신주기, 호통치기식 연출 국회는 국민 눈살만 찌푸리게 한다. 국회가 경제를 살리는 국회가 돼야지, 경제를 죽이는 국회가 돼선 안 된다”며 야당 주장에 일침을 놨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