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6일 대국민담화에서 노동개혁과 관련 “연내 전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공공기관들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으며 일부 대기업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4개월 만에 한국노총이 복귀해 재개한 노사정위원회는 지난달 말 공공부문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된 원포인트 협의체를 구성키로 합의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 합의를 파기하고 나서면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협상이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 예산안 국회 제출 시한인) 10일까지 노동개혁 타협안이 나오지 않으면 노동개혁 관련 정부 예산은 낮은 수준으로 편성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원인을 제공했다. 실업급여 인상 등에 필요한 예산을 반영하지 않겠다며 노동계를 압박하는 모습이다. 아울러 과연 대타협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원포인트 협의체가 노사정위에 구성되면 집단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어 한창 탄력을 받고 있는 임금피크제 도입이 자칫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기재부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정부가 연내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 실적에 얽매여 힘으로만 밀어 붙이면, 모처럼 잡은 노동개혁의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임금피크제는 사실상 노동계의 반대가 심했던 사안도 아니다. “임금피크제로 절감된 재원을 신규 채용에 합리적으로 사용할 방안을 강구하자”는 것인데, 정부가 나서 합의를 파기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또한 노동개혁은 여러 복잡 미묘한 현안들이 많아 단기간에 타협이 이뤄질 대상이 아니다.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신규 채용을 꺼리는 ‘고용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 임금피크제는 이러한 고용절벽을 완화하는 보완책이지, 노동개혁의 만병통치약은 결코 아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임금피크제에 찬성은 하지만 그것이 바로 고용 확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동개혁의 핵심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부 대표로서 노사와 합의한 내용을 다른 부처가 반대해 어렵게 재개된 노사정위를 혼란으로 몰고 가고 있다. 또한 노사정이 다뤄야할 노동개혁의 현안이 간단치 않은데도, 정부와 여당이 개혁을 연내 마무리하겠다는 목표에만 너무 집착하면 자칫 졸속으로 흐를 수도 있다.
사용자 측인 경제5단체는 기자회견을 통해 일반해고 지침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법률로 정하고, 직무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노총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확산 중단 등을 요구하며 또다시 노사정위 이탈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그야말로 노사정의 치열한 장외 기싸움이 팽팽하다.
우리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노동개혁은 정부가 채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또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를 관철시킨다고 해서 개혁이 마무리 되는 것도 아니다. 장외에서의 기싸움은 그간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는 노사정이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아 노동개혁을 위한 진정한 협상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