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판 문구 선정 까다로워…신인작가 볼멘소리
'사람이 온다는 건…' 역대 최고 글귀 뽑혀
교보發 감성 마케팅… 메마른 일상에 ‘적중’
가을편은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휘파람 부는 사람’에서 가져왔다.
교보생명은 지난 1991년부터 계절마다 글판을 바꿔왔다. 이 일대가 빌딩 숲을 이루고 있어 교보의 ‘광화문 연가’는 메마른 직장인들의 일상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해왔다.
직장인 한승윤(49) 씨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잔잔한 설레임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열여섯 소년으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역대 최고의 글귀는 뭘까?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2011년 여름, 교보빌딩에 걸린 정현종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이다.
이 글귀는 1991년 교보생명이 처음 글판을 내건 이래 건물에 걸린 72편의 글귀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글로 뽑혔다.
이 외에도 고은 시인의 “길이 없으면 / 길을 만들며 간다 /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일본 시인 시바타 도요가 쓴 “있잖아, / 힘들다고 한숨 짓지 마 / 햇살과 바람은 / 한쪽 편만 들지 않아”는 특히나 많은 울림을 준 글귀로 꼽힌다.
앞서 6월~8월까지 내걸린 여름편은 정희성 시인의 시 ‘숲’에서 따온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였다. 넉넉한 숲처럼 서로 배려하고 포용하며 살아가자는 메시지였다.
글판 글귀는 시인, 소설가, 교수, 문학평론가,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문안선정위원회를 통해 선정된다. 위원들은 교보생명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민 공모작과 선정위원의 추천작을 놓고 투표와 토론을 거쳐 최종작을 결정한다.
하지만 일각에는 ‘유명인들의 글만 게재한다’는 볼멘소리도 있다. 신인작가의 글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교보문고는 그동안 광화문글판을 장식한 글귀와, 글귀가 나온 원문 전체를 수록한 책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를 최근 개정 출간했다.
책은 첫 글판부터 연도별로 모은 광화문글판 사진과 글판 디자인·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수상자 인터뷰 등을 소개한다. 광화문글판의 제작 과정도 상세히 설명한다. 시인 문정희를 비롯해 시민들이 직접 광화문글판을 보고 깨달은 가족 간의 사랑과 삶의 희망을 적은 글도 수록됐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