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고리 340개 11월까지 절단
호텔롯데 등 주요계열사 상장 ‘시동’
‘국감 대비한 여론 물타기’ 시선도
지난달 27일 롯데가(家)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61)이 창업주이자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94)을 앞세워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0)의 세력을 해고하면서 시작된 형제의 난은 일단 신 회장의 승리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롯데 사태’는 지난 17일 열린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이 주주들의 지지를 확인하고,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일단 안정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3부자(父子) 간의 골육상쟁은 주주도 국민도 안중에 없는 재벌가의 전횡을 여실히 보여줬다. 상법에 규정한 이사회나 주주총회 결의 대신 총괄회장의 지시서로 임원 인사를 좌우하려는 전근대적 행태를 비롯, 1%도 안되는 지분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오너 일가의 민낯이 드러나자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신 회장은 지난 11일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롯데호텔의 일본계열 회사 지분 비율 축소 ▲순환출자의 80% 이상을 올해 연말까지 해소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팀(TF) 출범 등 3가지를 실천해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롯데는 대대적인 구조개혁에 착수했다. 우선 롯데는 올해 11월말까지 그룹 전체 순환출자 고리 416개 가운데 80%인 340개를 해소할 방침이다. 신동빈 회장이 대국민 사과 때 “순환출자 고리의 80%를 연말까지 정리하겠다”고 밝혔는데 일정이 한 달 정도 앞당겨진 것.
실무는 태스크포스(TF)가 맡는다. 이봉철 롯데정책본부 지원실장(부사장)이 TF팀장을 맡고, 그룹·계열사 재무담당 임원, 법무담당 임원 등 내부 임직원 20여명이 참여한다. 삼일회계법인, 김앤(&)장, 율촌 등 외부 회계·법무법인들도 자문과 감리로 동참한다.
TF의 주요 추진과제는 ▲호텔롯데 기업공개(IPO)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전환 ▲경영투명성 제고 등 네 가지다.
순환출자 해소는 지분매각을 통해 이뤄진다. 다수의 계열사가 나눠 가진 롯데쇼핑과 대홍기획 등의 지분을 장내외에서 매각해 소유 구조를 단순하게 정리하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매각된 계열사 지분들은 상장 등으로 자금 여력이 풍부해진 호텔롯데가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 11월말까지 장내외 매매를 통해 모두 340여개(80%) 순환출자 고리를 없애는 게 목표다.
중장기적으로는 지주회사 전환이 추진된다. 중간금융지주회사 허용 여부 등에 따라 재원이나 시기 등이 유동적이지만 81개 계열사의 순환출자 고리를 완전히 해소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하는데 최대 7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롯데는 추정하고 있다.
주식 매각이 전광석화(電光石火)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기업공개는 다소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CNB에 “기업공개(상장)는 계열사 별로 재무제표, 유동성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되는 문제라 상당 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현재 롯데는 호텔롯데와 롯데정보통신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호텔롯데는 한국롯데의 지주회사격으로 순환출자고리의 꼭지점에 있다. 롯데정보통신과 롯데쇼핑, 롯데물산, 롯데하이마트, 롯데제과, 롯데푸드, 롯데케미칼, 롯데알미늄, 롯데칠성, 롯데손해보험, 롯데건설, 롯데리아, 롯데닷컴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골고루 갖고 있다.
따라서 호텔롯데의 기업공개는 그룹의 투명성과 직결된 문제다. 신 회장이 대국민사과때 호텔롯데 상장을 지배구조 개혁의 핵심으로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롯데 측은 호텔롯데 상장을 위해 지난 19일 증권사들에 제안요청서를 발송했고, 다음 달 주관사를 선정한 뒤 관련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어 정관 개정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롯데정보통신도 상장을 확정한 상태다. 롯데정보통신은 2013년 7월 이후 KDB대우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상장을 추진하고 있으나 실적 부진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이번 호텔롯데 상장과 더불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이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국거래소가 호텔롯데 이외에 다른 계열사의 추가 상장을 독려하고 나선 것.
거래소 측은 롯데그룹 비상장 계열사 가운데 20여개사가 기업공개(IPO) 요건을 충족한다며 계열사별로 검토한 보고서를 롯데 측에 전달했다.
또 거래소는 대형 우량사에 적용하는 패스트트랙(상장심사 간소화 절차)을 통한 지원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는 자기자본 4천억원 이상, 매출액 7천억원 이상(3년 평균 5천억원 이상), 당기순이익 300억원 이상(3년 합계 600억원 이상) 등의 조건을 충족시키면 상장심사 기간을 기존 45영업일에서 20영업일 이내로 줄여주는 제도다.
삼성SDS도 이 제도를 활용해 지난해 8월 25일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한 뒤 3개월만인 11월 14일 상장에 성공했다.
롯데그룹은 총 81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는데, 이중 상장사는 8개에 불과해 재벌그룹들 중 가장 기업공개 비율이 낮다.
롯데그룹의 상장 계열사는 롯데쇼핑과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손해보험, 롯데푸드, 롯데케미칼, 롯데하이마트, 현대정보기술이다. 호텔롯데를 비롯해 롯데상사, 한국후지필름, 롯데정보통신, 롯데물산, 롯데건설 등 주요 계열사는 비상장 상태다.
재벌닷컴이 최근 자산 상위 10대 그룹(공기업 제외)의 기업공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말 기준으로 592개 계열사 중 기업공개를 한 대기업상장사는 95개사로 전체의 16%수준이다.
호텔롯데와 롯데정보통신이 상장되더라도 롯데그룹의 계열사 기업공개 비율은 여전히 10%대 초반에 머물게 돼 다른 기업들에 한참 못미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사실상 롯데를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증권시장에 롯데라는 ‘대어’를 유치하면서 동시에 재벌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는 여론에 답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롯데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호텔롯데와 롯데정보통신 외에는 기업공개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 다만 각 계열사 현황을 파악해 장기적인 과제로 접근 하겠다”고 말했다.
롯데가 야심차게 내세운 임금피크제도 갈 길이 멀다. 롯데는 내년부터 모든 계열사에서 ‘임금피크제’와 ‘60세 정년’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55세, 57세, 58세 등 계열사에 따라 달리 적용되던 정년이 모두 60세로 연장되고, 각 계열사별로 늘어나는 정년 기간에는 임금이 해마다 전년대비 평균 10%씩 줄어든다.
롯데 노사는 2013년 ‘정년 60세 의무화’ 발표 이후 계속 의견을 조율해왔고, 일부 계열사는 최근 노사 간 합의를 마쳤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발이 심해 예정대로 추진되기에는 넘어야할 산이 높다. 한국노총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 27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노사정) 복귀를 선언했지만, 정부의 임금피크제 추진 중단을 옵션으로 내걸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도 임금피크제를 비롯한 정부여당의 노동개혁을 ‘재벌맞춤 노동개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기다 “정부가 내세운 임금피크제의 순기능이 과장됐다”는 한 국책연구기관의 비공개 문건(연구결과)이 공개돼 논란을 더하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일자리를 유지(정년연장)할 수 있는 근로자 수가 정부 주장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절감되는 비용으로 마련할 수 있다는 청년 일자리 수도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여러 상황이 녹록치 않음에도 롯데가 구조개혁을 서둘러 발표한 것을 두고, 내달 예정된 국정감사를 앞둔 ‘여론 희석용’이란 말도 나온다.
여야는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기로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이전투구식 경영권 분쟁을 벌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만큼 두 사람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시켜 따져볼 심산이다.
새누리당의 원유철 원내대표와 조원진 수석 부대표는 최근 롯데사태로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이 일자 “문제가 있는 재벌총수는 국감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 롯데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신 회장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만큼 사실 확인이나 문제 규명보다는 ‘윽박지르기’나 ‘망신 주기’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염려가 크다.
골목상권 침해나 제2롯데월드 건설 문제 등 롯데그룹의 여러 논란거리들이 모두 도마 위에 올라 ‘여론 재판’ 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신 회장이 20년간 한국 생활을 했지만 일본에서 자라 한국어 구사가 어눌하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롯데가 서둘러 대국민사과를 하고, 순환출자 해소, 기업공개, 임금피크제 전면실시 등을 잇따라 발표한 배경에는 국정감사 전에 민심을 다시 롯데 쪽으로 돌리기 위한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CNB에 “아직 국회에서 공식 출석요청이 오지 않은 상황이라 뭐라 입장을 밝히기 그렇다”며 “(신 회장의) 출석이 확정되면 국감장에 나가 성실히 답변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의 혁신이 제대로 이행되는 지는 국감이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