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서울 마포구에서 맞붙었으며, 둘 다 막말 파문에 휩싸여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또 어려운 가정 형편을 딛고 자수성가 했다는 점에서 선거 때마다 두 사람의 ‘질긴 인연’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CNB=도기천 기자)
총선 때마다 맞대결, 매번 희비쌍곡선
둘 다 힘든 환경 극복한 ‘자수성가형’
일진일퇴 두 인생…누가 끝에 웃을까
두 사람의 ‘악연 사(史)’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당선(정청래) ▲교감 막말파문으로 낙마(정청래)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출당(강용석) ▲무소속 출마(강용석) ▲‘공갈’ 발언으로 당 징계(정청래) ▲불륜 스캔들로 방송 하차(강용석)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러 사건들로 얼룩져 있다.
어느 한쪽이 주저앉으면 반대쪽에서 다시 일을 내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왔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아직도 안개 속이다.
두 사람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조우한다. 당시 정 의원은 열린우리당 후보였고, 강 변호사는 한나라당 후보였다. 이 선거에선 하늘이 정 의원을 도왔다.
당시 야권은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온 열린우리당, 기존의 새천년민주당, 민주노동당 등으로 사분오열된 상태였다. 새천년민주당 유용화. 민주노동당 정경섭 등 쟁쟁한 인물들이 표를 갈랐다.
당연히 여권 단일후보였던 강 변호사에게 유리한 지형이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불면서 판세가 360도 바뀌었다. 정 의원은 이 역풍을 타고 '탄돌이' 그룹(탄핵 정국에서 당선된 386운동권 출신 의원을 빗댄 말)의 일원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강 변호사는 불과 5807표(5.72%) 차이로 낙마했다.
하지만 18대 총선에서는 서로 간 운명이 바뀌었다. 신문법을 대표발의 하는 등 17대 의정활동 내내 보수언론과 전쟁을 치르며 ‘개혁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정 의원은 교감 폭언 파문에 휩싸여 고배를 마시게 된다.
그날은 2008년 4월 2일이었다. 당시 통합민주당 후보였던 정 의원은 지역구의 어느 초등학교 ‘녹색어머니 출범식’ 행사장에 들어가려다 이를 제지하는 교감에게 다소 심한 어조로 항의했다.
문화일보와 조선일보가 이를 과장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논란이 커지자, 당시 손학규 당 대표가 총선을 하루 앞둔 4월 8일 “정청래 후보를 대신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한다”며 기자들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사실상 언론보도를 시인한 셈이 된 것.
이 사건의 가장 큰 수혜자는 강 변호사였다. 선거기간 내내 열세를 면치 못했던 강 변호사는 이 일로 막판 역전하게 된다. 강 변호사는 불과 6397표 차로 정 의원을 누르고 처음으로 뱃지를 달았다. 이 표차는 17대 총선 때 정 의원이 강 변호사를 앞질렀던 표의 수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당시 교감 폭언 사건은 재판 과정에서 조작된 것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정 의원이 ‘교장을 자르겠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는 학부모는 ‘한나라당 구의원’이었으며, 현장에 없었으면서 언론에 허위 제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구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당사자인 교감이 정 의원으로부터 다소 불쾌할 정도의 말을 들은 것은 사실이었다. 이것이 허위 보도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정 의원의 언행이 원인 제공을 한 셈이다.
손학규 당시 대표가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서둘러 대국민 사과를 한 것도 정 의원의 ‘강성 이미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07년 대통령후보 당내 경선 때 정동영 후보 편에 섰던 정 의원은 정 후보의 경쟁자였던 손 대표를 향해 “한나라당에서 온갖 단물을 쏙 빼먹고 따뜻한 아랫목을 찾아 들었다. 아무리 세탁을 해도 그는 한나라당의 땟물을 빼기 어렵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거친 언행들이 쌓여 부메랑이 된 셈이다.
정 의원의 폭언 파문 덕에 국회의원 뱃지를 단 강 변호사의 행보도 순조롭지 못했다.
그는 2010년 7월 16일 국회의장배 토론대회에 참석했던 대학생들과의 만찬석상에서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여학생에게 “다 줘야 한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나라당은 그해 9월 의원총회를 열어 강 변호사를 제명 처리했다.
2012년 4월, 강 변호사는 무소속 국회의원 신분으로 정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마포을당협위원장)과 다시 맞붙게 된다.
강 변호사는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박주신 씨의 병역비리 의혹를 끈질기게 제기하는 등 ‘야당 저격수’를 자처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결과는 냉혹했다. 박 시장에 대한 저격 실패, 성희롱 발언 등으로 이미지를 구길 대로 구긴 터라 여권 지지층도 등을 돌렸다.
강 변호사는 “선거공보물에 허위사실을 기재했다”며 정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등 막판까지 반격을 시도했지만 고작 4.3%의 득표에 그쳤다.
반면 정 의원은 강 변호사가 여권표를 갈라놓는 바람에 새누리당 후보를 상당한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결과적으로 강 변호사가 정 의원을 도와준 셈이다.
이후 다시 국회에 들어간 정 의원은 여세를 몰아 당 최고위원 선거에 도전했다. 대의원 투표에서 최하위였던 정 의원은 국민여론조사로 대반전을 이루며 지난 2월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하지만 정 의원은 지난 5월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 친다”고 발언했다가 당 윤리심판원에 제소됐다. 윤리심판원은 당직자격정지 1년을 내렸다가 재심을 통해 6개월을 확정했다. 정 의원은 논란을 일으킨 이후 침묵 모드 속에 간간히 트위터 활동을 하고 있는 상태다.
정 의원의 추락은 강 변호사에게 상당한 호재가 됐다. 강 변호사는 그동안 여러 종편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여왔던 터였다. JTBC ‘썰전’, TV조선 ‘호박씨’, ‘강적들’, tvN ‘수요미식회’, ‘강용석의 고소한19’ 등에서 주연급을 맡으며 몸값이 치솟았다.
반대로 정 의원은 논란에 휩싸였으니, 재기를 노리고 있던 강 변호사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어 보였다. 강 변호사는 평소 지인들에게 “내가 방송에 나가는 이유는 다시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정도로 의원 뱃지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매머드급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지난 18일 연예매체 디스패치가 유부녀인 파워블로거 A씨와 강 변호사가 함께 머문 것으로 의심되는 홍콩 콘래드 호텔에서 강 변호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수영을 즐기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공개했다.
앞서 강 변호사는 지난 1월 A씨의 남편으로부터 불륜 혐의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상태였으며, 양측은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던 터였다.
결국 강 변호사는 20일 “법정에서 모든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출연 중인 방송 전부를 그만둔다고 선언했다. 이대로라면 내년 20대 총선에서 정 의원과 강 변호사가 다시 맞붙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워낙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두 사람이라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당 혁신위원회는 여론조사, 의정활동·공약이행평가, 다면평가, 선거기여도, 지역구 활동 등 평가를 통해 현직 의원의 20%를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막말 파문으로 당직자격이 정지된 정 의원이 공천위를 통과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다. 반대로 법률가인 강 변호사가 법정에서 불륜 의혹을 털어낼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의 운명은 다시 한번 바뀌게 된다.
두 사람은 모두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1965년 충남 금산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정 의원은 몇십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대학 재학 중 학생운동에 발을 들여 전국대학생대표협의회(전대협) 활동을 했고, 1989년 미 대사관을 점거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마포구 성산동에서 작은 보습학원을 운영하며 생계를 잇다 친노 외곽 조직이었던 시민단체 ‘국민의 힘’을 만들어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강 변호사의 인생역정은 더 드라마틱하다. 강 변호사의 아버지는 사기·횡령혐의로 1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강 변호사의 청소년기는 아버지의 옥바라지로 얼룩졌다.
‘가난을 이기는 길은 성공 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입을 앙다물고 학업에 전념한 끝에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이후 하버드대 로스쿨 과정을 밟았다. 아시안인 최초로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학생대표까지 맡을 정도로 리더십이 남달랐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