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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국민연금 늪 빠진 새누리, 연기금 주주권행사 어쩌나

‘머리’보다 ‘입’ 앞서다보니…‘국민연금 동원령’ 무산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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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5.08.13 10:20:32

▲국민연금의 역할론을 강하게 주장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사진)가 며칠 만에 신중론으로 돌아서 논란이 일고 있다. 김 대표가 12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독립을 향한 여성영웅들의 행진 개막행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롯데그룹 형제의 난 등 경제 판도를 흔드는 굵직한 이슈들 앞에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60개 대기업 계열사의 주요주주인 국민연금이 ‘국민주’로서 주주권 행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

이런 가운데 누구보다 강하게 국민연금의 역할론을 주장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불과 며칠 만에 신중 모드로 돌아서 논란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이 태도를 바꾼 배경은 뭘까? (CNB=도기천 기자)
 
새누리, 재벌개혁 큰소리 치다 꼬리 내려
국민연금 “주주권 모호…법·제도 정비부터”
전문가들 “독립적인 조직으로 변화시켜야”

롯데가(家)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61)이 창업주이자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94)을  앞세워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0)의 세력을 해고하면서 시작된 ‘형제의 난’은 상호 비방과 세력 규합 등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치닫고 있다.

이들 3부자(父子) 간의 골육상쟁은 주주도 국민도 안중에 없는 재벌가의 전횡을 여실히 보여준다. 상법에 규정한 이사회나 주주총회 결의 대신 총괄회장의 지시서로 임원 인사를 좌우하려는 전근대적 행태를 비롯, 1% 안되는 지분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오너 일가의 민낯이 드러나자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7일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롯데그룹에 대해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국민연금은 롯데푸드의 최대주주(13.49%)고, 롯데칠성(13.08%) 롯데하이마트(12.46%)의 2대 주주다. 롯데케미칼(7.38%), 롯데쇼핑(4.00%)도 상당지분을 갖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운용자산 497조1000억원 중 96조6000억원이 국내 대기업에 투자돼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SK텔레콤, 현대중공업,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LG화학, LG상사,  CJ제일제당, SKC, LS, LG하우시스, LG이노텍, 현대건설, SK하이닉스 등 지분 5% 이상을 쥐고 있는 대기업이 260개에 달한다.

김 대표는 “롯데그룹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연금에 노후자금을 맡긴 국민들”이라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정책위원회가 지난 10일 국회에서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맞은편 파란 양복)을 불러 연기금 의결권과 관련해 논의하고 있다. 롯데 사태 등을 계기로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의결권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이 정비되지 않아 새누리당과 국민연금 측 사이에 혼선이 일었다. (사진=연합뉴스)

여권 기류 변화 ‘왜?’

하지만 지난 10일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을 만난 뒤 태도가 달라졌다. 

당초 이 자리는 김 대표의 제안으로 새누리당이 국민연금 관계자를 국회로 불러 국민연금의 롯데 지분 현황을 파악하고 실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보고 받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자리가 끝난 뒤 김 대표는 “상당히 예민한 부분이 많아 개선책을 마련키로 했다”며 한발 물러섰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기업 경영에 참여할 경우 운용상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경영권 참여를 목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특례지위를 잃게 된다.

국민연금은 경영참가 또는 지배권 취득의 목적이 없는 기관투자자이기 때문에 ‘5%룰’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5%이상 지분을 보유한 일반주주의 경우, 변화가 생기면 금융감독원에 신고(공시)해야 하지만 국민연금은 예외다. 

국민연금이 경영참여 등에 나서려면 특례지위를 포기해야 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빈번한 공시에 따른 포트폴리오 노출 등의 우려가 있다. 투자전략 노출로 수익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다. 소액주주들이 연기금의 움직임을 보고 추격 매수·매도에 나설 경우 애초 세운 전략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홍 본부장은 이날 자리에서 “(경영참여 등)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는 많은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소극적 주주권’의 범위 내에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고, 김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에 일정부분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금융공기업으로 독립시켜 주주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정부의 의뢰로 연구용역을 진행해 지난달 밑그림을 내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제공)

덩칫값 못하는 ‘재계 대주주’

하지만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는 ‘적극적 주주권’과 ‘소극적 주주권’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주권은 주주가 회사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익권’(自益權; 이익배당청구권, 잔여재산청구권 등)과 자익권의 확보를 위하여 회사의 운용에 참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권’(共益權; 의결권, 각종 소송제기권 등)으로 구분된다.

김 대표가 지적한 롯데의 경우는 공익권 행사의 범주에 들어간다. 최근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 지침을 대폭 강화해 적극적으로 공익권 행사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2월 개정된 지침에 따르면 의결 과정이 기금운용본부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로 이원화 됐다. 기존에 기금운용본부에서 도맡았던 찬성·반대 판단을 경우에 따라 전문위원회로 넘긴다는 게 요지다.

특히 기업의 도덕성이 주주들의 수익률과 직결된다는 점을 명문화했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률 제고를 위해’ 의결권 행사 시 해당 기업의 지배구조, 환경, 사회적 파장 등을 고려해 판단키로 했다.

또 사외이사 선임시 성실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사회 참석률 기준을 현행 60%에서 75% 수준으로 높였으며, 이사회가 당해회사 및 계열회사를 포함해 10년 이상 재직한 사람을 사외이사에 선임하려 할 경우 반대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그동안 강화된 의결권 지침에 따라 비교적 적극적으로 주주권리를 행사해 왔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1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간의 합병 추진에 반대하며 주식매수청구권(합변반대 주주가 합병 당사자에게 보유주식을 일정가격에 매수청구하는 권리)을 행사해 합병을 무산시킬 정도로 강력한 액션을 취했다. 당시 양사의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행사한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계약상 예정된 한도를 초과함에 따라 합병계약이 해제됐다.

올해 3월 정기주총 시즌 때는 현대모비스와 기아차 사외이사 재선임안에 반대표를 행사하며 포문을 열었다. 작년 9월 현대자동차그룹의 한국전력 부지 매입 과정에서 투자여력이나 매입가격, 투자효과에 대한 논의 없이 대표이사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등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방기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신경제연구소가 2014년 12월 결산법인의 정기주주총회를 분석한 결과, 국민연금은 지난 3월26일까지 주주총회가 완료된 기업의 의안(1531건) 중 131건(8.56%)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 이외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반대비율은 평균 2.21%로 국민연금보다 현저히 낮았다.

국민연금은 지난 6월 26일 SK와 SK C&C의 합병여부를 묻는 주총에서도 합병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총을 앞둔 지난달 14일 삼성물산 소액주주연대 구성원들(오른쪽)이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방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반대 성명서를 국민연금 관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뒤 안 가리다 부메랑 맞아

따라서 현행 지침대로라면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롯데에 대해 주주제안, 임시주총소집요구, 주주대표소송 등 다양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적대적 인수합병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영참여’와는 상관없는 권리다.

그럼에도 특례지위를 잃을 수 있다며 ‘소극적 권리’만을 행사하겠다고 한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1일 논평을 통해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이 자기입장을 변명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새누리당 지도부와 국민을 기망하고 농락하면서 사실상 주주권 행사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 측이 소극적 권리, 적극적 권리로 구분해 브리핑하는 바람에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 ‘경영 참여’가 아닌 범주에서는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토록 하겠다는 게 대체적인 당내 기류”라고 전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주주로서의 권리인 의결권은 기금운영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적극적으로 행사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다만 의결권 외의 주주권리 행사가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관계법령에 명확한 지침이 설정돼 있지 않아 내부적으로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뒤 상황을 종합해보면, 국민연금이 의결권 외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성급히 주주권 행사를 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주주권 범위에 대한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금융공기업으로 독립시켜 공적 권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 등은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관련법령과 지침이 먼저 정비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자,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경제개혁연구소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주요 선진국들의 연기금에 비해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인 편인데, 실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재식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는 “현재의 국민연금공단 조직으로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법과 제도를 정비해 독립적인 조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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