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삼성물산을 매입했던 가격보다 상당한 손실을 보고 처분한 것이라 외국계 헤지펀드가 한국 대기업을 쥐고 흔들다 피해를 보고 물러난 최초 사례로 보인다. (CNB=도기천 기자)
출구전략 시동…팔 수 있는 주식 전량 처분
마지막 카드, 지분 4.95% 매수청구권 행사
한국대기업 흔들다 손실 본 최초사례 될 듯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기가 보유한 주식을 정당한 가격으로 매수해 줄 것을 청구하는 권리다.
그동안 삼성과 엘리엇은 피말리는 일전일퇴를 거듭해왔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엘리엇은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삼성물산 주식가치를 훼손했다며 양사의 합병비율을 문제 삼아 법원에 ‘합병주총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삼성물산이 백기사로 나선 KCC에게 주총 의결권을 주기 위해 자사주 지분 5.96%를 매각한 것에 대해서도 법적대응했다.
또 국민연금 등 주요주주들을 상대로 합병 부당성을 주장하며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져줄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합병발표 시점의 주가로 합병비율을 산정하는 현행법을 들어 삼성의 손을 들어줬으며, 주총은 삼성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번 매수청구권 행사는 엘리엇이 향후 삼성과의 싸움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엘리엇 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불공정하고 불법적이라는 기존 입장의 연장선에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이번 청구권 행사에 주주들이 동참해 주길 바랬지만 그마저도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규모의 마지노선을 1조5000억원으로 정했다. 양사를 합쳐 이 금액 이상 청구권이 행사되면 합병은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진다. 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은 삼성물산 5만7234원, 제일모직 15만6493원이다.
삼성 측이 청구권 행사 시한인 6일 자정 주식매수청구권 접수를 마감한 결과, 엘리엇은 총 지분 7.12% 중 4.95%에 해당하는 773만2779주를 매수해 줄 것을 삼성물산에 청구했다. 청구권 행사가격이 1주당 5만7234원이므로 모두 4426억원 가량이다. 일성신약도 총 2.37%(2120억원)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제일모직 주가는 행사 가격보다 휠씬 높은 16만8천원(5일 종가기준)이라 6일 매수청구권을 행사한 주식이 전무했다.
전체 청구권 규모가 약6500억원에 불과해 통합 삼성물산 출범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게 됐다. 최근 삼성물산의 주가하락에도 불가하고 예상외로 청구권 행사가 적었던 것은 ‘뉴 삼성물산’에 대한 주주들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엘리엇으로서는 매수청구권 행사를 통한 합병저지라는 마지막 카드도 무산된 셈이다.
기존 보유주식의 정확한 매수가격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2∼5월 나눠 사들인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시세는 5만5천∼6만3천원선에서 형성됐다.
평균 매입 단가를 6만원이라고 가정하면, 청구권 행사 가격 5만7234원에 지분 4.95%를 처분했으므로 200억원대의 손실을 봤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엘리엇이 이번에 매수청구한 주식은 법테두리 내에서 최대치다. 매수청구권 행사는 합병 발표일인 5월26일 이전에 매입한 주식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즉 처분할 수 있는 지분 전체를 내놓은 것이다. 따라서 남은 주식도 출구전략을 찾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증권가 관계자는 “엘리엇이 남은 물량을 조금씩 장내에서 매도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며 “제일모직과의 합병비율에 따라 엘리엇의 나머지 삼성물산 지분(2.17%)은 통합 삼성물산에서 채 1%도 되지 않게 된다. 이것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엘리엇이 공매도나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주가하락에 따른 손실을 이미 보전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헤지펀드들의 성격상 결코 손해를 보고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물산 관계자도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기일은 오는 9월1일이다. ‘뉴 삼성물산’은 다음달 4일 신규법인 등록을 하고 정식 출범한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