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협회 유사언론 발표 법률적 한계
‘과도한 비판’ 종종 ‘광고협찬 요구’로 오해
‘나쁜 기사=나쁜 언론’ 진짜 사이비 못가려
오리온 관계자는 16일 CNB와 통화에서 “S언론사가 담철곤 회장 등 총수일가와 관련된 악의적이고 왜곡된 기사를 수차례 연속으로 내보내 소송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최근 1~2년간 담 회장 등에 대한 공격성 기사를 연달아 게재 했다는 것. CNB 확인 결과 해당 매체는 올해에만 10여 차례에 걸쳐 담철곤 회장과 자녀들에 대한 각종 의혹성 기사를 내보냈다.
오리온 측은 “해당 매체가 오래전부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무차별적으로 보도했지만 일체 대응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돼 소송을 하게 됐다”며 “재판을 앞두고 있는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보도내용을 둘러싼 언론사와 기업 간의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지난 1일 광고주협회에서 발표한 ‘2015 유사언론행위 피해실태 조사결과’를 계기로 그동안 쌓였던 갈등이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협회는 지난 3∼4월 500대 기업의 홍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는데, 그 결과 기업 10곳 중 9곳이 유사언론 행위로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유사언론 행위가 가장 잦은 매체로 메트로를 지목했다. 협회는 메트로 외에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증권가정보지 등을 통해 유사언론 행위가 잦은 20개 언론사의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자 메트로는 “광고주협회가 악의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언론의 고유한 비판기능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며 반발했다. 이후 메트로는 수차례에 걸쳐 광고주협회를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광고주협회는 메트로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검토 중이다.
재계에서는 최근 메트로가 재계 총수들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연속 게재해 미운털이 박힌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세계와 메트로 간 분쟁이다. 지난 4월 8일 메트로는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에 대한 공격성 기사를 내면서 정 부회장의 얼굴사진을 전면에 내걸었다. 이날 아침 출근길 시민들에게 이 신문을 배부하던 메트로 측은 신세계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신문 수십부를 신세계 직원들이 수거해갔다.
메트로는 강탈 행위라며 신세계 직원 2명을 경찰에 고소했고, 이에 맞서 신세계는 해당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를 준비 중이다.
신세계 뿐 아니라 삼성, 현대기아차, KT 등도 메트로 보도내용과 관련해 법적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광고주협회가 (유사언론 대응에 있어) 총대를 메고 있어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오리온과 메트로의 사례는 보도행태에 관한 논란으로 읽힌다. 언론의 비판기능이라는 주장과 고의적인 악성보도라는 주장이 맞서면서 판단은 언론중재위와 법원의 몫이 됐다.
하지만 아예 광고수주 목적으로 기업에 협박을 일삼다 사법처리된 경우도 있다. 앞서 사례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검찰은 지난 4월 ‘악의적 보도’를 무기로 기업들을 협박해 10개 업체로부터 약4천만원 어치의 광고를 수주한 모 인터넷 경제매체 대표 A씨와 광고국장을 공갈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부정적 기사’를 무기로 10개 기업에서 돈을 뜯었다. “광고를 주지 않으면 해당 기업 관련 논란거리를 다시 다루겠다”고 협박하는 식이었다. 이들은 광고가 유치되면 기사를 쓰지 않거나 이미 쓴 기사를 삭제해줬다.
지난 4월 전남 함평경찰서가 입건해 검찰에 송치한 B씨의 사례도 비슷하다. B씨는 사무실도 없이 혼자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최근 2년간 군청·농협 등을 상대로 “광고협찬을 해주지 않으면 비판 기사를 내보내겠다”고 위협해 1300만원을 뜯었다.
자신의 개인 사업을 위해 언론사를 활용하다 실형을 받은 경우도 있다. C씨는 공무원을 협박해 한국 명품김치 산업화 사업단이 추진하는 1000만원 규모의 쇼핑몰 구축 사업권을 따냈다. 법원은 협박 등 혐의로 C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 강동구청에 지역신문을 등록하고, 서울·경기·강원 일대 공장들을 돌며 올해 3월까지 1300여만원을 갈취한 기자들도 최근 구속됐다. 이들은 “폐수 무단 방류 등 환경오염 문제를 고발 하겠다”며 협박해 강릉시에 있는 한 레미콘사업장으로부터 500만원을 뜯어내는 등 언론사 간판 뒤에 숨어 공갈·협박을 일삼았다.
해외에서 발행되는 유사언론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지난 3월 가수 태진아의 억대 원정 도박설을 보도한 재미동포신문 시사저널USA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매체였다. 시사저널USA가 등록된 주소에는 한 건설사가 입주해 있었으며, 어디서 어떻게 이 신문이 발행되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다. 논란이 커지자 이 신문사의 S대표는 스스로 물러났다.
태진아 측은 S대표를 공갈 미수 및 허위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 태씨는 “S대표 측이 보도를 빌미로 금품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견제약사가 미국 로스엔젤리스(LA)에서 발행되는 교민소식지에게 협찬 압박을 당한 사례도 있다. 해당제약사는 지난해 교민 타운 중심부에 염색센터를 개소했다가 협찬요구에 시달렸다. 이 소식지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수차례 악의적인 보도를 내보냈다.
신문이라기보다는 소규모 비정규 간행물에 가까운 교민사회 매체들이 이처럼 유사언론 행위를 할 수 있었던 데는, 이들의 성격을 국내에서 쉽게 파악하기 힘든데다 법적소송이 해외에서 이뤄져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광고수주가 목적인 사이비 언론이 사라져야 한다는 데는 기업과 언론사 모두 이견이 없지만, 자칫 이 문제가 언론의 정상적인 비판행위 마저 위축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비판을 어디까지 허용 하느냐와 광고협박 행위는 분명하게 구분돼야 한다는 것.
법원도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보도를 빌미로 광고협찬을 요구하는 행위는 엄격히 제재하고 있지만, 오너에 대한 비판적 기사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항공과 프라임경제 간의 송사다. 대한항공은 지난 2011년 “프라임경제가 약 1년간 자사에 대해 부정적·비판적 또는 명예를 훼손한 내용의 기사 48건을 게재했다”며 3억원의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년간의 송사 끝에 재판부는 이 가운데 3건만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 1100만원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부당한 금품요구·협박’ 등에 대한 부분은 모두 기각된 것이다.
당시 재판을 취재했던 한 언론사 기자는 “기사를 빌미로 한 협박했다는 혐의를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만큼 사실상 프라임경제가 이긴 재판”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판결이 난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의 언론사 상대 소송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 의원은 2012년 4월, 4.11총선 당선자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자신을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참석해 김일성에게 꽃을 건냈고 이로 인해 ‘통일의 꽃’이라는 명칭을 얻었다”는 취지로 보도한 이데일리와 매경닷컴, 제이큐브인터랙티브 등 언론사 3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김일성 전 주석과 자신을 악의적으로 연결지어 이미지에 타격을 주려 한 보수언론의 왜곡보도라는게 임 의원의 주장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달 23일 “‘통일의 꽃’이라 불리게 된 연유가 반드시 김일성에게 꽃다발은 건넸기 때문이 아니라 해도 그 같은 보도가 허위라고 볼 수는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은 “언론보도가 부분적으로 진실과 차이가 있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으로 합치되면 진실성이 인정된다”고 판결이유를 설명했다. 즉 사실과 다소 다르더라도 악의성이 없는 공익적 목적의 보도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처럼 어디까지를 ‘왜곡’,‘협박’으로 보고 처벌할 것인가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과도한 비판기사가 때로는 광고 압박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광고주협회가 아전인수 격으로 유사언론(일명 사이비언론) 행위를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광고주협회는 최근 설문조사 등을 통해 유사언론행위를 ▲기업 경영층 사진의 인신공격성 노출 ▲기업 관련 왜곡된 부정기사(선정적 제목) 반복 게재 ▲사실과 다른 부정이슈와 엮은 기업기사 ▲경영 관련 데이터 왜곡 ▲광고형(특집) 기사 요구 등 5가지 유형으로 판단했다.
대한항공 등의 재판사례에서 보듯, 기업에 대해 광고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비판기사를 내는 경우는 행위가 다소 지나치더라도 ‘언론의 정상적인 비판기능’ 범주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협회 판단이 자의적이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의 홍보담당 임원은 “워낙 많은 매체들이 ‘부정적인 기사를 쓰지 않을테니 광고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순수한 비판 목적에서 걸려오는 전화라도 일단 의심이 가는 게 사실”이라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익적 차원의 비판 기사와 광고협찬을 전제로 부정적 기사를 쓰는 경우를 잘 구분하지 못한 채 (광고주협회) 설문에 응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털어놨다.
또다른 기업의 홍보실 직원도 “홍보담당자 입장에서는 광고협박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 ‘나쁜 기사’가 많이 나간 매체를 ‘나쁜 언론’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즉 현재 광고주협회의 판단만으로는 유사언론과 정상언론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김재식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는 “광고주협회가 사이비언론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기자의 행동이 정말 불법인지,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액션인지 헌법에 보장된 언론자유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기업 총수 일가의 사진을 크게 노출하고 비판적 기사를 연달아 실었다고 해서 무조건 유사언론으로 볼 수는 없지 않는가. 진짜 사이비를 제대로 가려내기 위해서라도 정확히 법률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유사언론으로 지정해야 불필요한 논쟁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