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현대차, 포스코 등 주요 수출기업들은 국내외 실적 부진과 엔화 약세 기조 여파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외국인투자자들도 한국증시에서 발을 빼는 형국이다. 한순간 지나갈 폭풍일까, 저성장의 늪에 빠진걸까. 대내외적인 악재 속에 기초체력을 테스트 받고 있는 우리 경제를 CNB가 진단했다. (CNB=도기천 기자)
현대차·포스코 등 수출주 연일 신저가 갱신
그리스 사태·中증시폭락…떠나는 외국인들
30대그룹 “투자 예정대로” 정면돌파 선언
한국 경제의 위기는 글로벌 시장에서부터 비롯됐다. 엔화가치가 일본 당국의 엔저 기조 유지로 1년새 10% 넘게 하락하면서 상대적으로 원화가치는 높아져 수출기업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기아차 등 대표적인 수출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실적이 내리막길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2분기 영업이익은 6조9000억원으로 당초 기대치인 7조원대를 밑돌았다. 세계 시장에서 애플의 경쟁력이 확대되는 반면 삼성은 주력제품인 갤럭시 S6의 판매 부진 등이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달 말 발표예정인 LG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도 작년 동기 대비 절반 수준으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에서 TV와 스마트폰이 모두 중국 제품에 밀려 고전하고 있기 때문.
환율 민감 업종인 자동차도 그림자가 짙다. 현대자동차의 2분기 실적 추정치는 1조6828억원으로 1개월 전 추정치 1조9302억원에 비해 12.8%나 감소했다. 기아차도 6478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 영업이익(7697억원)에 비해 15.8% 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엔화·유로화 약세와 브라질 헤알화 등 신흥국 통화약세에 따른 수출 부진과 메르스 여파로 수출기업들의 침체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은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돼 대표수출주인 SK하이닉스와 현대차, 포스코는 연일 신저가를 갱신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발(發) 위기가 점차 현실화 되고 있다. 중국 증시는 연일 급락 장세를 이어가 한 달 사이 30%가까이 폭락했다. 지난달 12일 5166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1개월도 안돼 3709(9일 종가기준)까지 급락했다.
이번 주에만 600여 종목이 거래정지를 신청하면서 중국 증시에 상장된 2800개사 가운데 절반 가량인 1400여개사의 주식거래가 중단됐다.
중국 증시의 폭락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중국이 급격하게 정책을 전환할 경우 한국의 금융·산업 또한 요동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중 교역량이 전년 동기보다 2.8% 늘어난 2354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중국에 대한 의존지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기업들의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88개 주요 기업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등급 하락 기업 수는 2010년 53개에서 2011년 50개로 줄고서 2012년 60개, 2013년 100개로 급증했으며 작년에도 100개에 달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88개 업체가 등급이 하락해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대내외 악재가 장기화될 경우, 신용등급이 내려가는 기업이 올해 안에 200개를 웃돌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외국인투자자들도 한국을 떠나고 있다. 그리스 사태와 중국 증시 급락 등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한국 주식을 팔아치움에 따라 이달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4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갔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1~7일)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은 평균 422조104억으로, 이 기간 전체 시총 평균치(1296조2461억원)의 32.56%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1년 8월(31.97%) 이후 최저치다. 외국인 비중은 최근 1년간 34~35% 수준을 꾸준히 유지해 오다 지난달부터 32%대로 떨어졌다.
외국인은 올해 상반기 동안 10조원에 가까운 한국 주식을 사들이며 순매수 기조를 이어왔으나, 지난달 미국 금리 인상 우려와 그리스 불안 등이 커지자 ‘팔자’로 방향을 틀었다.
특히 이달 들어서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가 깊어지고 중국 증시도 무서운 속도로 폭락하면서 이탈에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9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1%에서 2.8%로 내렸는데 전문가들은 추가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2분기에 더욱 악화된 수출과 메르스 여파로 급격히 얼어붙은 내수로 성장동력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4%대 성장을 예견했지만 지난 4월 3.1%로, 다시 이번에 2%후반으로 조정했다.
특히 메르스 여파는 2분기 보다 3분기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라는 점에서 내수주들의 향후 실적이 밝지 않다.
IBK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2분기는 직접적으로 메르스의 영향을 받을 시기가 아니었다. 메르스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건 3분기 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나대투증권은 최근 ‘경기민감업종 기업 등급하향 가능성 점검’ 보고서에서 “작년 이후 경기 경기민감 업종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은 대부분 1개 등급 조정에 그쳐 실적 저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업황에 따라서는 추가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30대 그룹 사장들은 9일 한자리에 모여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 등 경제난 극복을 위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연초 회복 기미를 보이던 내수마저 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다시 얼어붙으면서 성장률전망치가 2%대까지 내려간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며 “예정된 투자를 계획대로 집행하고 신사업 발굴에 집중하고, 신시장 개척과 신품목 발굴로 수출 경쟁력을 높여 성장엔진의 재점화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부사장, 김영태 SK 사장, LG 조갑호 전무, 롯데 황각규 사장, GS 정택근 사장, 조영철 현대중공업 전무, 금춘수 한화 사장, 전인성 KT 부사장, 최광주 두산 부회장 등 26개 그룹 CEO들이 참석했다.
주요그룹 사장단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이 대내외적인 악재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투자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주고 있다.
같은날 중국정부가 공황상태에 빠진 중국 증시에 수십조 원의 ‘긴급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점도 긍정적이다.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 등에 따르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 주재로 열린 상무회의에서 2500억여 위안(약45조6천억원)을 경제 부양에 긴급 투입하는 계획을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도 유로존을 탈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채권국가들과의 긴축안 협의가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재계에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인 BNP파리바의 마크 월튼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의 성장률 전망치 조정 직후 “한은이 2분기 성장률을 0.4%로 하향조정한 상황에서 연간 성장률을 2.8%로 예측한 것은 하반기에 큰 반등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라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3, 4분기에 엄청난 호재가 생기지 않는 한 큰 폭의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당국이 시장상황을 낙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그리스 사태, 중국증시 폭락 문제는 차츰 안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하반기에는 미국의 금리인상 등 대외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시기인 만큼 우리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환율 방어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기업규제 완화 법안의 조속한 국회통과, 추경예산의 신속한 집행 등 정부·국회가 우선 할 수 있는 수단을 빨리 시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