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연남동과 서대문구 연희동은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중국인, 대만인들이 오래전 ‘서울 속 중국 마을’을 이룬 곳이다.
광복 직후 명동 차이나타운에 세워진 한성화교학교가 1969년 연희동으로 이전하며 자연스레 화교들이 이 일대로 몰렸다. 마포구와 서대문구로 나눠진 두 동네는 하나의 이면 도로로 연결돼 사실상 구분이 힘들다.
이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약 1킬로에 걸쳐 형성된 100여개의 크고 작은 중식집, 선술집들이 이곳 타운의 중심부다.
이곳 학생 중 일부는 가업인 중식집을 이어받는다. 이 일대에는 매화, 이화원, 왕가네, 대만야시장 등 크고 작은 중국집 30여 곳이 자리 잡고 있다.
영등포구 신길동과 대림동, 금천구 독산동, 관악구 봉천동 등에도 차이나타운이 있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젊음이 넘치는 홍익대 거리가 연남동 기사식당 골목으로 이어지다 이곳과 만난다. 그러다보니 한국과 중국의 젊은이들이 뒤섞인 소담스런 음식점들이 많다. 전통 부촌인 연희동에 자리 잡은 고급중식점 몇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서민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식당들이다.
‘대만야시장’ 간판을 달고 있는 중식집에선 1만원에 탕수육과 칭따오 맥주를 맛볼 수 있다. 세트메뉴를 시키면 생맥주 한잔을 덤으로 준다. 주한 타이완 대사관 주방장을 지낸 이연복 쉐프의 ‘연남동 탕수육’으로 유명한 ‘목란’도 이곳에 있다. 연남동은 기사식당과 어우러져 스낵·식사형 중식집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이 일대는 홍대-연남·연희동-신촌을 잇는 삼각벨트가 조성되면서 최근 몇 년 새 중국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블로그를 통해 소개된 맛집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자그마한 마을시장도 볼거리다. 번화한 상권에서 밀려난 작은 공방들이 이곳의 주인. ‘나만의 공간’에서 재주를 가꿔온 장인들과 토박이 주민들이 함께하는 ‘따뜻한 남쪽 시장’과 ‘동진시장’이 매주 열린다. 손으로 만든 각종 공예품이 순례자의 눈길을 멈추게 한다.
이 일대가 유명세를 타면서 유커들이 직접 부동산을 사들여 투자에 나서는 경우도 늘고 있다. 연남동 화교타운의 평균 땅값은 3.3㎡당 3000만원 선으로 최근 3~4년 새 두 배가량 올랐다. 인근 동교동과 서교동, 합정동 등 이른바 홍대 상권 역시 비슷한 상승 폭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메르스 폭풍이 몰아치면서 지난달 초부터 분위기가 360도 달라졌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메르스 사태 전까지만 해도 이곳을 찾는 중국여행객 관광버스가 하루 평균 100여대에 이르렀다. 40인승 기준이면 매일 4000여명이 방문한단 얘기다.
여기다 연세대, 홍익대, 이화여대 등 인근 대학에 다니고 있는 중국 유학생들도 많다. 화교들과 개인여행객까지 합치면 하루에 다녀가는 중국·대만인들이 5천여명은 족히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종일 이 일대를 다녀봐도 여행객을 태운 버스 한 대 찾아보기 힘들다. 직장인 정모(44) 씨는 “아침 출근길에 도로변에 늘어선(불법주차된) 관광버스들을 피하느라 곡예운전을 해야 했지만, 최근 한 달 새 버스들을 보지 못했다”며 “몇 년간 이 거리를 다녔지만 지금처럼 조용한 적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주민 송주영(34·여)씨는 “중국사람들 특유의 큰 목소리를 들은 지 오래됐다”며 “예전엔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조용해 그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유커들을 상대로 전통음식을 팔아온 한 삼계탕집 주인은 아예 ‘일반손님(내국인) 환영 특별세일’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는 “(외국관광객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 다시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기념품판매점, 시내면세점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연남동 화교거리 부근에 위치한 인삼·화장품 판매점들은 개점휴업 상태다.
이 업소들은 대부분 대형버스주차장을 구비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버스에서 쏟아져 내린 유커들이 이곳을 기점으로 연남동 일대에서 쇼핑과 식사를 즐긴다. 지금은 주차장이 을씨년스럽게 텅 비어 있다.
시내면세점들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400만명을 넘어섰다. 이중 중국인 방문객이 600만명에 이른다. 관광수입은 20조원에 이르며 해마다 두자릿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유통업계에서 면세점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하고 있다. 최근 공고된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입찰에는 롯데·신세계·HDC신라면세점·현대백화점·한화갤러리아·SK네트웍스·이랜드 등 7개 유통 대기업이 참여해 특허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유커들의 면세점 발길이 뜸해지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지난달 30일 베이징을 방문해 하루 종일 중국 여행사와 관계 기관을 접촉하며 “중국 여행객의 한국 방문을 늘려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관광업계에 따르면 한국여행 성수기인 7∼8월 국내 패키지관광 상품을 예약한 외국인은 20만2541명으로, 작년 동기 대비 82% 줄었다. 이 중 중국인이 81만628명에서 13만2132명으로 83.7%나 급감했다. 이달 들어 메르스 확산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한번 떠난 유커들은 꿈쩍 않고 있다.
여행업계는 메르스가 극복되면 중국관광객들이 예전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우리정부의 ‘신뢰 회복’을 전제조건으로 꼽는다.
관광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때 한국 정부의 대응체계를 보고 많은 외국인들이 실망했는데,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로 유커의 신뢰를 잃었다”며 “섣부른 메르스 종식선언 보다는 한국 정부가 (메르스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