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정경부장) 메르스 역풍이 거세다. 감염을 우려해 여행도 모임도 다음으로 미루면서 내수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관광·서비스업종은 물론 요식·운수·숙박업 등 연관 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택배, 배달업만 호황’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들이 씁쓸하다.
이런 차에 중소기업을 더 울리는 일들이 있다. CNB는 공군의 전자식교환기 교체 사업을 특정대기업 계열사들이 독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 차례(5월20일, 6월12일)에 걸려 단독보도 한 바 있다. 또 지난 6일에는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U대회) 조직위원회가 행사에 사용하는 무전기 수천대를 중국OEM제품으로 교체한 사실도 폭로했다.
이 두 가지 사안은 하필이면 정부가 전국 각지의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사활을 걸고 있던 때에 발생했다.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창조경제 프로젝트는 대기업 주도로 전국 17개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짓고, 이곳이 지역 중소·벤처기업들의 거점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삼성은 대구, 현대차는 광주를 맡는 식이다.
지난해 9월 대구센터 개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2곳의 혁신센터가 문을 열었다. 삼성과 LG는 지난 4월~이달 초에 걸쳐 계열사들이 보유한 특허 9만2000여건을 혁신센터를 통해 중소·벤처기업에 전격 개방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공군은 군(軍) 현대화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자식 교환기 사업’의 입찰 과정에서 대기업 계열의 특정회사를 지나치게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회사에 입찰의 주요기준인 ‘산출내역서’ 작성을 맡기는 등 기술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난 4년간 이 사업은 해당 회사 및 관계사가 독차지했다.
공군은 “자체 기술력이 없어 대기업 계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CNB에 밝혔다. SK텔레콤, KT 등 통신대기업들은 자체 연구소를 통해 제품을 개발한 뒤, 부품 등 단순 분야만 하청을 주지만 공군은 원천기술을 갖고 있지 않아 부득이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입찰에 참여한 중소·벤처기업들은 결국 들러리가 됐다. 애초부터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음에도 공군은 국가계약법상 요건(경쟁입찰)을 맞추기 위해 이들을 ‘희망고문’ 한 것이다.
차라리 “우린 능력이 없으니 기술력 있는 기업과 수의계약 하겠다”고 했으면 공력을 낭비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하나같이 “공군이 특정기술을 고집하는 바람에 (낙찰된 기업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하고도 탈락했다”고 입을 모은다. 군이 조사에 착수했다니 지켜볼 일이다.
루저의 넋두리 아니다
다음달 열릴 광주U대회 준비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대회조직위로부터 위임받은 통신부문 공식 후원사인 S사가 행사진행에 필요한 무전기 3100여대를 중국OEM 제품으로 교체했다.
S사는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등 최근 수년간 정부 차원의 굵직한 행사 때마다 정보통신분야 후원업체로 참여해오고 있다. 그동안 국내 중소기업으로부터 무전기를 공급받아 왔는데 돌연 올해 대회에서는 중국산을 채택한 것.
CNB가 취재해 보니 중국산이 국내산보다 기술적으로 나은 점도 없으며, 임대가격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입찰방식은 공개경쟁입찰이 아니라 몇몇 업체를 지정해 제안서를 받아 선정하는 식이었다. 국산무전기를 밀어줄 수 있었단 얘기다.
공군이든 대회조직위든 할 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재래시장으로, 총리(대행)는 산업현장을 발로 뛰며 중소상인, 중소벤처를 독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기관인 공군과 대회조직위가 보인 행태는 실망스럽다. 뭔가 손발이 맞지 않아 보인다.
CNB가 본 것이 전부기를 바란다. 우리가 미처 취재하지 못한 여러 분야에서 이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끔찍하다.
이번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중소기업 대표의 음성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왜, 무엇 때문에 우리가 안되는지 말이라도 시원스레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가져줘야 희망이 있지 않겠나. 내 목소리를 경쟁에서 탈락한 패잔병의 넋두리로 취급하지 말아 달라”
(CNB=도기천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