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예정가격 산정의 기초가 되는 산출내역서는 발주기관인 공군이 제작해 홈페이지(국방전자조달)에 공개하는데, 이 중요한 서류작성을 사실상 이해당사자에게 맡긴 것. 해당업체는 지난달 공군으로부터 공사를 수주 받았다. (CNB=도기천 기자)
공군, 에릭슨엘지에 입찰준비 맡겨
에릭슨 관계사가 기술점수 1위 낙찰
육·해군 비해 사업비도 월등히 높아
군 통신수단의 핵심인 전자식교환기(electronic branch exchange)는 기존 수동식교환기(스텝 바이 스텝 방식)에 비해 빠른 전송서비스 기능과 안정성을 갖고 있어 육·해·공군은 수년전부터 단계적으로 이를 도입하고 있다. 매년 공개입찰을 진행하는데, 올해는 지난 5월 21일 사업자가 선정됐다.
입찰 설명서류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산출내역서(물량내역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발주기관은 공사세부내역(장비명, 단위, 수량)을 입찰 참여업체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는 예가 산정의 기준이 된다. 예가는 발주자가 예정(책정)한 공사가격을 이르는 용어다. 군이 진행하는 경쟁입찰은 대부분 예가가 제시된다. 통상 예가 보다 가장 낮게 써낸 업체가 낙찰 받는 방식이다. 국가재정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문제는 산출내역서를 응찰업체의 협력사가 제작했다는 점이다. 관련법에 따르면, 공정입찰을 위해 산출내역서는 반드시 발주기관 또는 응찰업체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의 기관이 발주처의 의뢰를 받아 작성해야 한다.
CNB가 방위사업청 국방부전자조달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결과, ‘15년 전자식 교환기 교체사업(공고번호 UMM0253)’의 산출내역서는 에릭슨엘지(주)의 영업사원 A씨가 작성했다. 해당파일의 마지막 저장 날짜는 4월27일이었다. 공군은 다음날 응찰예정업체들을 상대로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에릭슨엘지는 입찰에 참여한 현진ict, 지엔텔, 아리시스, 태산 중 지엔텔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회사다.
2004년 설립된 지엔텔은 에릭슨엘지의 전신인 LG노텔의 기업 분야 장비와 통신망 구축, 애플리케이션 기술 지원 서비스 및 LG전자 이동통신 단말기 기능 검증 등의 사업을 도맡으면서 성장했다.
지분은 우리사주조합(57.36%), 에릭슨엘지(19.91%), 오태영 대표이사(5.71%), ㈜지엔텔(0.97%), 개인주주(16.05%)가 각각 나눠 갖고 있다. 종업원지주제인 우리사주조합을 제외하면 에릭슨엘지가 최대주주인 셈이다.
에릭슨엘지(Ericsson-LG)는 2010년 7월 LG전자와 스웨덴 에릭슨이 공동 투자해 설립한 합작 회사다. 유무선 통신기술, 통신솔루션 및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고 있으며, LG가 25%, 에릭슨이 75% 지분을 갖고 있다.
전체적인 그림은 LG전자→에릭슨엘지→지엔텔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올해 공군의 전자식교환기 사업권은 지엔텔이 따냈다. 대주주인 에릭슨엘지가 산출내역서를 작성했고, 협력사인 지엔텔이 낙찰 받은 것이다.
공군은 크게 가격 점수와 기술 점수로 나눠 응찰업체들이 제출한 제안서를 평가했다. 산출내역서를 만든 기업은 그만큼 기술 분야에서 유리한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탈락한 응찰업체들은 이런 점에서 ‘완전한 불공정입찰’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공군은 타군에 비해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공군식 전자식교환기’의 특성상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CNB에 해명했다.
공군 관계자는 “일정 수준의 기술력에 부합하는 회사가 삼성전자와 에릭슨엘지 밖에 없어 부득이 두 회사에 산출내역서를 의뢰하게 된 것이며,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한 의도는 전혀 아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이들 업체가 작성해준 산출내역서를 참조해 공군이 최종본을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에릭슨엘지 문서 포맷을 사용하다 보니 (에릭슨엘지) 담당자의 이름이 삭제되지 않은 것이며, 이는 실무자의 단순 실수”라고 밝혔다.
공군이 최종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참조용으로 가져온 파일에 담긴 에릭슨엘지 측 작성자 이름이 실무자 실수로 지워지지 않았단 얘기다.
공군은 또 “에릭슨엘지에만 작업을 맡겼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삼성전자에도 똑같이 산출내역서를 의뢰한 만큼 불공정한 행위가 아니다”고 거듭 해명했다.
공군-에릭슨-지엔텔 무슨 사이?
문제는 다른 데서도 발견된다. 에릭슨엘지와 지엔텔은 지난 수년간 공군의 전자식교환기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해왔다. 공사금액도 예가에 육박하는 높은 수준이었다.
2012년 입찰 때는 에릭슨엘지가 예가의 99.69%(30억5024만원)로, 2013년 입찰 때는 지엔텔이 단독 응찰해 예가의 96%선(40억9200만원)에서 각각 낙찰 받았다. 지엔텔은 지난해 입찰 때도 단독으로 참여해 예가의 86.16%(53억9550만원)에 사업을 따냈다.
비슷한 시기 해군과 육군은 공군보다 훨씬 낮은 비용에 사업자를 선정했다. 2013년 해군의 전자식교환기 입찰은 예가의 56.83%, 육군은 53.14%, 국군통신사령부는 40%선에서 사업자가 낙점됐다. 지난해에는 국군통신사령부가 예가의 38.79%, 육군은 51.63%, 해군은 87.83%선에서 사업자를 선정했다. 육군과 해군에 비해 공군의 낙찰 가격이 유독 높은 셈이다.
공군은 CNB에 “예산을 줄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공군 특성상 전자식교환기 분야는 육군 등에 비해 높은 성능의 제품을 사용하므로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여러 의혹을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A업체는 국군재정관리단에 입찰무효를 주장하는 이의제기서를 제출했으며, B업체는 군 감찰기관에 이런 사실을 제보해 국방부 조사본부(합동수사본부)가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A사 관계자는 “산출내역서상 특정회사에 유리한 여러 스펙이 있어 이의를 제기 했지만 일부만 수정한 채 입찰을 진행했다”며 “기술평가점수를 내세워 1개 업체만 통과시키고 다 떨어뜨렸는데 처음부터 이 업체를 밀어주기 위한 요식행위라는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또다른 업체 관계자는 “전자식교환기는 공공기관·대기업 등에 이미 상용화 된 것으로, 대단한 기술력을 요구하는 게 아닌데도 공군이 특정기술을 고집하는 바람에 1위 통과업체보다 훨씬 낮은 금액을 제시하고도 탈락했다”며 “국가의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