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이 된 줄도 모르고 일본군과 함께 도망을 다니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진 고생을 한 그는 1947년 23세 때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상봉했지만 한국전쟁으로 남자 형제를 모두 잃는 또 한번의 슬픔을 겪기도 했다.
경북여성회 관계자는 “김 할머니는 눈을 감기 전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많이 있고, 일본의 사과를 받을 때 까진 죽을 수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했다”며 한많은 생을 마감한 할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사진은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지난해 6월 김 할머니가 입원한 병원에서 생일잔치를 했을 때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