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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칼럼]조선시대 내시는 대머리가 없었다?

Dr.홍의 무명초 이야기<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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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민수기자 |  2015.06.05 10:47:08

우리가 알고 있는 내시(內侍)는 사실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지만 환관(宦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조선시대에 환관은 내시부에 속하여 임금의 시중을 들거나 숙직 따위의 일을 맡아보던 남자로 모두 거세한 남자들이었다.

이들에 대해 가느다란 목소리로 “예~~ 전하~~”만 외치는 나약한 존재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내시중에는 상당한 부(富)를 축적함은 물론 최고의 권력가로 군림하기도 했으며 아내와 양아들을 두어 가정을 꾸리는 일도 많았다.

조선시대때 가장 큰 권세를 누렸던 내시로는 폭군 연산군 때의 내시 김자원이 유명하다. 김자원은 왕명출납을 악용한 간신의 대명사다. 그가 승정원을 출입할 땐 모든 승지가 머리를 숙여야 했고, 행차시에는 양반이라도 말에서 내려야 할 정도였다. 심지어 고관대작들도 김자원을 통하지 않고는 왕을 볼 수 없었다.

조선시대 내시중에는 대머리가 없다는 속설이 있다. 왜 그럴까?

탈모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테스토스테론에 5-환원효소가 결합해 생성되는 물질인 DHT 때문에 발생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부신에서도 일부 생산이 되지만 대부분은 남성의 고환에서 생산된다. 내시들은 고환을 제거했기 때문에 테스토스테론의 생산이 매우 적다. 따라서, DHT가 고갈되었기 때문에 모낭세포파괴인자가 생성되지 않아 대머리가 나올 확률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탈모의 메커니즘에 비추어 볼 때 이론적으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때 내시중에 대머리는 정말 하나도 없었을까?

탈모는 DHT 호르몬의 영향이 절대적이지만 이외에도 스트레스나 기름진 식습관, 운동부족, 혈액순환장애 등에 의해서도 유발될 수 있다. 막대한 권력을 가진 내시의 경우 영양의 과잉섭취와 권력투쟁에 대한 스트레스, 운동부족 등으로 인해 탈모가 진행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물론 확인할 방법은 없다. 역사책에는 내시의 탈모까지 세세하게 적어 놓지 않기 때문이다.

글쓴이 홍성재 의학박사/웅선클리닉 원장
의학 컬럼리스트로 건강 상식을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살가움과 정겨움이 넘치는 글을 써오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항산화제 치료의 권위자이기도 한 그는 성장인자와 항산화제 탈모치료에 도입하여 주목할 만한 치료효과를 거두고 있다. 저서로 ‘탈모 14번이면 치료된다’ ‘진시황도 웃게 할 100세 건강비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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