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합병 실패 전철 밟을라 ‘긴장’
시장가격 매수청구가 웃돌아 일단 ‘안심’
삼성그룹 구조개편 ‘핵’… 재계 시선집중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주총회에서의 특별결의사항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갖는 주주가 회사에 대해 자기가 보유한 주식을 정당한 가격으로 매수해 줄 것을 청구하는 권리를 이른다.
이 제도는 회사의 분할, 합병, 영업 양도 등에 있어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이 금전상의 불이익이 없도록 회사가 공정한 가격으로 이들의 보유주식을 매수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통상 두 회사의 합병이 알려진 시점을 전후해 양사의 주가가 상승하면 주주들은 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소량만 매수 청구하는 경우가 주를 이루지만, 반대로 합병 전망이 밝지 않아 주가가 매수청구가격을 밑돌 경우 대량 매도(매수청구)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청구권을 행사하는 주식수가 일정 기준 이상일 경우, 합병 당사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게 돼 계획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것.
삼성그룹은 지난해 11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주주들의 매수청구권 행사로 없던 일이 된 전례가 있다.
당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행사한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계약상 예정된 한도를 초과함에 따라 합병계약을 해제했다.
삼성엔지니어링 주주 중 합병에 반대해 주식매수를 청구한 금액은 총 7063억원, 삼성중공업에 대한 청구금액은 9235억원이었다. 총 1조6298억원의 주식매수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결국 양사는 손을 들었다.
당시 주주들이 대거 청구권을 행사한 것은 주식 시세가 하락세였기 때문. 삼성중공업은 주주들로부터 주당 2만7003원, 삼성엔지니어링은 6만5439원에 주식을 매입키로 했는데, 두 회사 주가는 합병 발표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삼성중공업의 주력사업인 조선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해양플랜트 업황이 모두 좋지 않아서다.
주가가 행사가격을 밑돌면서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직접 회사주식을 사들이고, 삼성중공업이 자사주 2886억원 어치를 매입하는 등 두 회사는 일제히 주가부양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주가가 삼성중공업은 행사 가격보다 4.6% 낮은 2만5750원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은 7.1% 낮은 6만800원으로 합병기준가가 결정되자 대다수 주주들은 청구권을 행사했다.
특히 삼성중공업 지분 5.91%,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6.59%를 가진 국민연금은 지분 전량을 매수해줄 것을 요구, 합병에 큰 걸림돌이 됐다.
국민연금 측은 “재무적 투자자로서 유·불리를 따져 결정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때 대놓고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졌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양사의 합병 계획안에 따르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액이 1조5천억원을 넘으면 합병 계약이 해제될 수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매수청구권 행사가는 각각 15만6493원, 5만7234원이다.
이번에도 양사의 주가 추이가 주주들의 청구권 행사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양사의 주가(1일 종가 기준)는 각각 18만8천원, 6만4천원으로 합병 계획 발표 이후 크게 올랐다. 주가가 행사가보다 높아 권리를 행사하는 주주들이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시한인 7월 16일까지 한 달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이번 합병은 삼성그룹이 큰 그림으로 진행하는 그룹 구조개편 작업의 핵심이다.
재계에서는 계열사들이 분리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삼남매에게 승계될 경우, 장남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금융 등 주력 부문을, 장녀 이부진 사장이 유통·레저·서비스 부문을, 차녀 이서현 사장이 패션·미디어 부문을 맡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부진 사장은 현재 제일모직 경영전략담당 CEO와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을 겸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사장이 합병 회사를 맡고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청구권 행사가격 이상으로 주가가 관리되지 않으면 기존 주주 입장에서 합병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지만 현재 주가가 많이 오른 상태기 때문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확률상 낮을 것으로 본다”며 “설령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라도 행사가격 보다는 시장가로 팔고 나가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큰 변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