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정의식기자 | 2015.04.07 16:55:21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상과제는 향후 50년간 대한민국의 먹거리를 책임질 혁신기업을 키워내는 것.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개척하는 17개 센터를 찾아 창조경제의 미래를 물어봤다. CNB가 찾은 첫 번째 방문지는 삼성전자와 파트너십을 맺은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다. (CNB=정의식 기자)
“창조경제는 선택 아닌 필수”
지역경제 대안은 ‘사물인터넷’
미래 책임질 혁신기업 길러야
지난해 4월 문을 연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는 동대구역에서 10여분 거리의 대구무역회관 빌딩 1층과 3층, 13층에 자리잡고 있다.
1층에는 벤처인들이 아이디어 구상과 정보 교류를 할 수 있는 ‘아이디어 카페’가 있고, 소프트웨어와 앱을 개발하거나 테스트할 수 있는 장비도 갖춰져 있다. 3층에는 ‘멘토링센터’ 등 지원시설과 센터 사업부 및 회의실, 교육실이 있으며, 13층은 C-Lab 스타트업 18개 기업이 입주해있는 업무 공간이다.
센터의 역할은 대구 지역 인재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 창업 및 기업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편 중소·중견기업을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 지역의 일자리와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지역 창조경제 생태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센터는 대기업과 연계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통해 ‘C-lab’이라는 이름으로 18개의 신생 벤처기업을 후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에서 운영중인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도입, 채산성 있는 기술을 선별해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으로 지난해 6월부터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의 초대 수장을 맡고 있는 김선일 센터장(59)은 지난 3일 CNB와 만나 “해외에서 우리 모델을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국내에선 너무 몰라준다”며 말문을 열었다.
일단 국내에는 ‘창조경제’라는 용어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통해 알려졌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또, 과거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 전략이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임기 후 별다른 후속사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창조경제’ 역시 정부가 교체되면 흐지부지되고 말거라 폄하하는 시각도 있다. 김 센터장은 전혀 아니라는 입장이다.
“녹색성장은 국가별로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의 영역이었지만, 창조경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불가결한 과제다. 정권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차이다. ‘혁신’은 대한민국 경제가 가야할 길이다.”
가장 중요한 건 혁신이고,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는 나라는 많다고 김 센터장은 덧붙였다.
“다른 나라들도 다들 정부와 학교, 지역이 힘을 합쳐 입체적으로 추진 중이다. 바젤, 로잔, 취리히 등 스위스 각 도시마다 설립된 ‘이노베이션파크(Innovation Park)’가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이 대한민국 모델을 ‘신의 한 수’라며 극찬하고 부러워한다. ‘기업 연계’ 때문이다”
스위스는 네슬레 등을 제외하면 글로벌 기업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이 투자를 해줘도 해외 시장 진출은 지지부진하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에는 각 분야의 글로벌 기업 15개가 센터와 연계해 글로벌 진출을 도와주는 구조라, 스타트업 기업을 해외로 이끌어 줄 인프라가 완비됐다는 것.
“왜 창조경제인가?” 최근 김 센터장은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답변은 이렇다.
“구글이 구글 캠퍼스를 4월중에 서울에 개소할 예정이다. 다들 치하하고 좋아하고 있는데,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니다. 구글이 구글 캠퍼스를 서울을 비롯한 전세계에 연 것은 구글조차도 미래 산업의 방향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글이 어떤 회사인가? 문어발 기업이다. 현재와 미래는 문어발 기업이 이기게 된다. 지금 산업은 럭비공과 같아 어디로 튈지 모른다. 옛날처럼 한 제품, 한 산업으로 오십년 백년 가는 경우는 이젠 없다.”
김 센터장은 본업에 충실했던 노키아가 하루 아침에 몰락한 사례를 예로 들며, 대기업들에게 본업에 충실할 것만 요구하고, 문어발 확장을 금기시하는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구글은 가장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다. 될 성 싶은 건 다 개발하고, 좋은 기술, 기업은 무조건 사들인다. 그것도 모자라 세계의 젊은이들이 가진 아이디어를 빼내고 싶어한다. 서울에 구글 캠퍼스가 열렸다는 건 서울에 빼내 갈 젊은이, 빼내 갈 아이디어가 있다는 뜻이다.”
구글처럼 앞서가는 기업도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기업들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기업에 기회를 준 것이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설명이다.
한편, 안그래도 바쁜 대기업들을 정부가 닦달해 스타트업 육성과 투자라는 짐을 지웠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서도 김 센터장은 “엉뚱한 오해”라는 입장이다.
“예산 구조를 살펴보면, 정부가 예산을 가장 많이 후원하고, 지자체가 그 다음이다. 기업의 예산지원은 공식적으로 없다. 연계 기업은 센터를 통해 만들어진 결실과 성과를 가져가는 입장이다. 기업과 센터는 일방적 공여 관계가 아닌 대등한 수혜자, 동반자 관계다.”
실제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1곳당 지원되는 평균 예산은 28억원 내외로 알려졌으며, 이중 미래부 예산이 약 18억원, 지자체 지원금이 약 10억원 정도다. 대구센터의 한 해 예산은 약 20억원 내외다.
그렇다면 연계 기업은 어떤 역할을 할까?
“대구센터의 경우 연계 기업인 삼성전자는 우리와 함께 지속가능한 스타트업 생태계 프로그램을 만드는 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처음 대구센터가 오픈하고 잠시 방향을 잡지 못한 때가 있었다. 이때 ‘기업 연계’ 아이디어가 나왔고, 삼성전자와 연계되면서 ‘크리에이티브 랩(C-lab)’ 사업이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대구센터는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벤처 기업을 모집했다. 무려 3719팀이 응모했고, 심사를 통해 18개 팀이 최종 선정됐다.
“삼성전자는 응모 당시 신문광고를 내줬고, 이후 내부 인력 50여 명을 지원해 심사를 도와줬다. 스타트업 기업들의 멘토가 되어줄 인력도 지속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이렇듯 센터와 기업은 체계적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하고 협의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외에 삼성전자는 각종 시제품을 제작·테스트할 수 있는 설비와 시설을 지원하는 한편, 각 업체에 2000만원의 창업 준비금도 지급했다. 이 자금은 삼성전자가 대구시와 각기 100억원씩 출자해 조성한 지원 펀드에서 나왔다.
한편, 각 지역 센터는 해당 지역을 연고로 한 특정 기업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지만, 그것이 타 센터, 타 기업과의 연계를 배제하지도 않는다.
“우리 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의 아이디어가 삼성전자가 아닌 다른 기업과 더 궁합이 맞을 수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17개 센터와 15개 기업이 연계되어 하나로 돌아가는 구조다. 대구센터에 입주한 기업 중에서도 자동차관련 아이디어를 가졌다면 현대차와 연계된 광주센터에 연계해준다. 이런 구조라 해외가 부러워한다.”
대구무역회관 빌딩 13층에 위치한 C-Lab은 구글, 애플 같은 해외 기업을 떠올리게 하는 미래형 사무공간이다. 대부분의 입주형 벤처후원 프로그램이 회사별로 폐쇄된 개별 공간을 제공하는 것과 달리, C-Lab 공간은 회사간 소통이 원활한 개방형 원룸 구조를 채택했다.
18개 팀은 칸막이로 나눠진 공간을 점유하며, 사방의 창문이 모두 유리라 탁 트인 느낌이다. 중앙에는 난상토론이 가능한 토론실과 편안히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 있고, 구석자리에는 전망좋은 라운지가 있다.
입주자들은 C-Lab의 근무환경을 “집에 가기 싫을 정도”로 평가한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이곳에서 인턴이나 직원 지원자의 면접을 보면 다들 서로 오겠다고 말한다는 것. 김 센터장은 “그런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C-Lab의 차별성은 현실적인 시각과 유연한 운영에서 드러난다.
“지금까지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은 입주 공간 내주고 지원금 내주는 거로 끝이었다. 그 이상 도와줄 능력도 의사도 없었다. 기업은 영수증 관리만 잘해서 보고서 잘 써내면 됐다. 그 사업이 실제로 시장에 갔는지 아무도 상관안했다. 우리는 최종 평가 기준이 딱 하나다. 글로벌 시장에 갔느냐 안갔느냐. 안갔으면 실패다.
때문에 창업 아이디어도 계속 변경되거나 포기할 수도 있다. 기존 지원제도에서는 사업 중간에 아이템을 바꿀 수 없었다. 결국 과제는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보고서만 꾸며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는 다르다. 아이템이 바뀌면 센터장에게 설명해서 납득시키면 된다.”
마지막으로 김 센터장은 ‘사물인터넷 특구’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래산업은 뭐니뭐니해도 사물인터넷이다. 흔히 사물인터넷이라 하면 휴대폰으로 불끄고, 보일러 끄고, 그런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생활의 모든 산업이 연결되고, 어떤 공산품 하나도 단독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 사물인터넷이다. 무인카도 대표적인 사물인터넷 아이템이다. 테슬라, 구글, 애플이 무인카를 만들려 하는데 대한민국에 특구를 정해 무인카를 테스트할 수 있게 하고, 여기서 핀테크, 우버 등 모든 신기술을 테스트하게 해야 한다. 싱가폴이 금융특구로 큰 것처럼, 사물인터넷 특구는 향후 50년간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수 있는 아이템이 될 것이다.”
카이스트(KAIST) 홍릉 연구원 출신. 대한민국 최초로 전산개발을 한 홍릉연구원 전산센터 시스템공학센터에서 재무부 실명제, 의료보험 전산화, 대학예비고사 채점 OMR 시스템, 올림픽 경기정보 시스템 등을 개발했다.
이후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삼성전자에서 컴퓨터 사업과 소프트웨어 사업에 합류해 전략기획 업무를 맡았다. 삼성전자의 애니콜 휴대폰 사업에 참여했으며, 브라운관 TV사업의 종말을 예측하고, 평판TV로의 빠른 전환을 역설했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HP, 컴팩, 히타치, 삼성전자 등 16개 전자업체의 합작사인 컨버지(Converge)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4월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 공개모집에 응모해 19명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2년 임기의 센터장으로 선정되었으며, 6월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