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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계에 ‘정피아’라니…세월호 교훈 벌써 잊었나

‘KB금융의 실험’ 성공하려면 특단의 조치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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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5.03.17 09:25:54

(CNB=도기천 정경부장) 오늘은 250명의 꽃들을 차가운 바닷물에 수장 시킨 지 336일째 되는 날이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는 어른들의 탐욕 앞에 그렇게 사라져 갔다. 이런 세상을 만든, 이런 세상에 눈감았던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공범이라 통탄했다.

정부부처 산하 유관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리꽂힌 ‘관피아’(관료+마피아) 관행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그날 이후 높아졌다. ‘관피아 줄기’는 정피아 모피아 금피아 교피아 철피아 해피아로 곁가지를 치며 치부를 드러냈다.

변화가 있었다. 국회는 수년간 표류했던 김영란법을 통과시켰고, 검찰은 철도·원전 등 국가기간망에 관여한 관피아들을 사법처리 하는 등 개혁의 바람이 불었다. 공기업을 흔들던 정치권의 외풍도 약해졌다. 

하지만 최근 다시 불거진 정피아(정치+마피아) 논란은 이런 기대를 원점으로 되돌릴 정도로 참담한 일이다. 구설수에 오른 주역은 ‘서금회’다.  

서금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 17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금융권 서강대 동문들이 결성한 모임이다. 이들이 우리은행·KB금융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지난 6일 우리은행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서금회 핵심 멤버인 정한기 호서대 교양학부 초빙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정 교수는 2012년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에 공천 신청 했으며, 그해 대선 때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다. 수년간 서금회 고참 멤버로 활동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은행의 다른 사외이사 후보들 역시 서금회 소속은 아니지만 ‘정피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홍일화 여성신문 우먼앤피플 상임고문은 1971년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시작해 한나라당 부대변인, 중앙위원회 상임고문, 17대 대통령선거대책위 부위원장 등 당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천혜숙 청주대 교수는 남편이 이승훈 청주시장(새누리당)인 점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KB사태’로 7명의 사외이사를 모두 교체한 KB금융지주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쟁사 CEO출신인 최영휘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사외이사로 파격 영입해 화제를 모았으나 한때 관치 논란으로 사임했던 김중회 전 KB금융 사장이 사외이사 후보에 올라 의혹이 일었다. 김 전 사장은 논란이 일자 후보 제안을 고사했다.

또 KB금융 사태의 핵심 관련자 중 한명으로 지목돼 지난해 말 물러났던 박지우 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은 최근 KB캐피탈 사장으로 내정됐다. 박 내정자는 서금회 창립멤버이자 회장 출신이다.

서금회나 정치권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배척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인력풀이 부족한 금융권 현실을 볼 때 공정하고 타당한 후보추천이 이뤄진다면 문제 삼을 게 없다.

하지만 구설에 오른 이들의 면면이나 이들이 속한 사조직의 성격으로 볼 때, 과연 이들이 중립·독립성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외이사의 기본 책무는 CEO나 경영진을 감독하고 비리나 부조리, 경영상의 문제점은 없는지 등을 감시하는 자리다. 각종 인사에 있어서도 사실상 최종결정권을 갖는다.

여권 출신 인사들이 자리를 꿰찰 경우, 외풍에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은행장과 사외이사가 같은 사조직 출신일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사익 추구를 막기 위해 최근 제정된 김영란법 취지에도 맞지 않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문제가 부각되자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금융사 개혁안을 마련한 바 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안’에 따르면 사외이사 자격요건을 ‘금융, 회계, 재무, 감사업무 등을 경험한 인사’로 구체화했다.

하지만 새 규준안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다시 주요 금융사가 정피아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낙하산 금지’ 명문화 절실

이런 차에 한줄기 가냘픈 빛이 보인다. 관피아와 무관한 비주류 금융인들의 약진이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검정고시 출신이다. 서울대 출신이 즐비한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마피아)와 저만치 떨어져 있다. 금감원 권력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종합검사’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메머드급 실험방안을 내놓고 있다. 

비슷한 때에 닻을 올린 KB 윤종규호(號)도 관피아로부터 자유롭다. 광주상고를 나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또한 비주류라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그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으로 이원화된 옥상옥(屋上屋) 구조를 깨는데 개혁의 방점을 두고 있다. 특히 사외이사 평가를 강화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사외이사 2명씩을 매년 연임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점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의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이대로라면 이들의 도전이 정피아의 장벽에 막혀 설 자리를 잃게 될지 모른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낙하산 금지를 명문화하고,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 사외이사 선임과정을 낱낱이 적어 공시토록 하는 등 혁신적 조치가 요구된다. 의사결정 과정에 주주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도 구체화해야 한다.

지금도 여의도 주변에서는 이번에는 누가 어디로 내려갈(낙하할) 차례라는 하마평이 돌고 있다. 증권가 정보지(찌라시)에 거론되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숨이 막히고 기가 차다. 대한민국은 벌써 4월 16일을 잊고 있는가.

(CNB=도기천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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