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 ‘좋은데이’ 급성장에 업계 ‘긴장’
롯데, 유자과즙 섞인 ‘14도 소주’ 출시
초저도 소주 열풍, 업계 지각변동 예고
소주업계의 초저도 소주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수십년간 이어온 ‘소주=25도’ 공식이 1990년대 후반 깨진 이후 업체별 경쟁적 도수 내리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업계 2위인 롯데주류는 알코올 도수를 14도로 크게 낮춘 ‘순하리 처음처럼’(가칭)을 이달 중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이는 16도 대의 초저도 소주를 앞세워 경남·부산을 접수하고 수도권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무학 ‘좋은데이’(16.9도)보다도 2.9도 낮은 도수다.
사실 순하리 처음처럼은 소주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운 술이다. 이 술에는 유자과즙이 들어가 관련규정상으로는 리큐르(혼성주)다. 하지만 ‘진한 처음처럼’(20도), ‘부드러운 처음처럼’(17.5도), ‘순한 처음처럼’(16.8도)에 이은 처음처럼 시리즈 4번째 작품이고 병도 360㎖ 용량의 소주병을 사용할 예정이어서 소주 소비자들을 겨냥한 ‘소주 아닌 소주’ 같은 술이다.
롯데주류 관계자도 CNB와의 통화에서 “순하리 처음처럼은 소주 베이스의 칵테일주”라고 설명했다.
앞서 소주업계의 절대 강자인 하이트진로도 주력 제품 ‘참이슬’의 도수를 지난해 초 2년 만에 18.5도로 낮춘데 이어 9개월 만에 다시 0.7도 더 내린 17.8도 참이슬을 출시한 바 있다.
업계가 경쟁적으로 도수 내리기에 속도를 내던 상황에서 롯데주류가 파격적인 초저도주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는 무학 좋은데이의 급성장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가 많다. 2006년 출시된 좋은데이는 차츰 영향력을 확대해 지역연고인 경남을 넘어 부산까지 점령한 후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수도권에도 진출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좋은데이 돌풍’이 소주업계의 순한 소주 경쟁에 불을 지폈다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롯데주류의 14도 소주 출시는 무학의 부상으로 기존 판도가 흔들리고 있는 시장 상황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봐야 한다”며 “3위에 쫓기는 롯데의 공격적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국내 최초 17도 미만 초저도 소주인 좋은데이의 17도 미만 초저도 소주시장 점유율이 95%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소주의 주 소비층으로 부상한 여성·젊은 층의 ‘더 싱거운 소주 선호’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좋은데이가 수도권 연착륙에 성공할 경우 처음처럼과의 격차가 좁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2강 8약 판도, 1강 2중 7약으로 변화
업계 판도 변화를 구체적으로 나타낸 자료도 있다. 마케팅인사이트가 지난해 10월 소주 소비자 1만3273명을 대상으로 소주시장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참이슬 51.8%, 처음처럼 18.3%, 좋은데이 11.6% 순으로 나타났다.
같은 업체의 4년 전 조사에서는 참이슬이 48.9%, 처음처럼이 21.4%로 두 전국구 브랜드가 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무학을 포함한 나머지 업체들은 모두 10% 미만 점유율에 그쳤다.
2강(참이슬, 처음처럼) 8약(좋은데이, 참소주, 잎새주, C1, 오투린, 하이트, 한라산 올레, 시원) 업계 구도가 4년 만에 1강(참이슬) 2중(처음처럼, 좋은데이) 7약 구도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무학이 ‘순한 소주’를 등에 업고 약진하자, 이에 자극받은 타 지역소주 업체들도 너도나도 저도 소주를 출시하며 수도권 공략에 나서기 시작했다. 제주도 지역소주인 ‘한라산 올래’는 지난달 18.5도였던 알코올 도수를 17.5도로 더욱 낮췄다. ‘한라산 올래’가 제주를 찾은 전국의 관광객들을 소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한편 업계 1위인 하이트도 롯데주류의 14도 소주 출시를 주목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14도짜리는 2위 수성을 위한 제품이 아니겠느냐”며 “도수를 더 낮춘 제품은 시장상황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14도 소주가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경우, 하이트진로도 비슷한 도수의 소주를 출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초저도 소주 경쟁은 업계 판도를 떠나 제조업체의 이익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순해진 소주는 덜 취하기 때문에 판매량 증대에 기여한다. 특히 도수가 낮아지면 소주의 주원료인 주정 비용이 줄어 생산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소주의 도수는 어디까지 내려가게 될까. 이에 대한 답은 소비자들이 갖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처음 소주 도수가 20도 아래로 떨어질 때도 모험을 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며 “이제 14도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더 내려갈지 여부는 소비자의 반응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주업계에 저도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당시 하이트진로가 알코올 도수를 2도 낮춘 23도 참이슬을 출시하며 ‘소주=25도’라는 등식을 25년 만에 처음으로 깨고 저도화 스타트를 끊었다.
이후 참이슬이 인기를 얻자 주류업체들은 경쟁적 도수 낮추기에 나섰다. 16도 대까지 낮아진 초저도화 소주 열풍은 2006년 무학이 16.9도의 좋은데이를 출시하며 포문을 열었다.
(CNB=허주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