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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발등에 불 떨어진 재계…대관·홍보 리뉴얼 ‘시동’

[심층취재] 현대차·대한항공·롯데 개발 숙의…新메뉴얼 개발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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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5.03.04 18:11:20

▲김영란법이 제정되면서 기업의 오랜 접대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서울중앙지검 출입구 전경. (사진=CNB포토뱅크)

언론과 공무원을 상대로 한 일체의 접대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3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재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와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기업, 각종 허가 문제로 공무원과 접촉이 잦은 건설업계, 총수가 재판중인 기업 등은 홍보· 대관업무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관치금융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외풍이 심한 금융권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기업들은 기존 대관 관행을 다시 점검하는 한편 법시행에 대비한 메뉴얼 개발에 착수했다. (CNB=도기천 기자)

법 시행 앞두고 재계 대관라인 초비상
대기업들 혼란 속 대응전략 마련 분주
‘분식점 호황설’ 등 볼멘 목소리 넘쳐
 
김영란법의 핵심은 대가성과 관련 없이 언론종사자와 공직자의 금품수수를 엄벌하는데 있다. 여기서 금품은 밥값, 술값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공직자와 공직자 부인은 직무 연관성과 무관하게 1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과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100만원 이하인 경우도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음주와 골프 접대는 물론이고 3만원(공무원 행동강령 기준) 이상의 식사 제공, 명절 선물도 불법이 될 수 있다. 그런 만큼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접대 문화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은 지자체와 대규모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지난해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10조 5천억원에 사들여 메머드급 신사옥 건립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가 최근 서울시에 제출한 사전협상 제안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용적률 799%가 적용된 지상 115층(높이 571m) 건물에 현대차그룹 본사 사옥을 포함한 업무시설, 전시컨벤션 시설, 호텔, 판매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문제는 이 중 상당 부분을 기부채납 형태로 서울시에 내놔야 하는데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서울시공무원을 상대로 한 대관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현재 한전 부지는 상업시설 개발이 불가능한 3종 주거지역으로 묶여 세울 수 있는 건물 높이가 5~6층으로 제한돼 있다. 서울시는 이를 상업용지로 바꿔주는 조건으로 부지 구매자로부터 부지의 40%를 기부채납 받아 공공용도로 쓸 계획이라 현대차가 독자적으로 개발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진그룹(대한항공)의 숙원사업인 경복궁 옆 특급호텔 조성 프로젝트도 사업 성격상 공무원들과의 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다. 이 사업은 서울 종로구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 3만7000㎡에 7성급 특급호텔을 짓는 것으로 대한항공은 2008년 부지 매입에만 2900억원을 쏟아 부었다. 조양호 회장이 직접 박근혜 대통령에게 협조를 요청했을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학교 반경 200m 이내 호텔 건립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학교보건법에 막혀 진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복궁과 인사동의 코 앞이라 공사 중에 문화재가 출토될 가능성이 커 향후 문화재청과도 긴밀한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한진 측은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요에 맞춰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대관팀을 풀가동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란법과 기존 법안 비교

오너 법정行 기업들 ‘멘붕’

롯데그룹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내에 추진하고 있는 대형복합쇼핑몰도 현대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허가권자인 서울시와의 논의가 한창이다.

시와 롯데는 그동안 신축건물 지하면적 사용 문제 등을 놓고 1년 이상 협의한 끝에 최근 본격적인 설계 논의에 착수했다. 시는 롯데의 지하면적 ‘통개발’을 수용하는 대신 허가면적의 일정부분을 ‘공공기여 용도’로 사용토록 했다. 구체적인 활용방안은 관할 지자체인 마포구청이 주민의견을 수렴해 롯데와 사전 협의토록 했다.

하지만 인근 재래상권의 반발에 부딪혀 마포구의 중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롯데는 마포구와 시를 상대로 적극적인 대관·홍보를 펼쳐야 하는데 김영란법으로 난항이 예상된다.

이밖에 포스코건설이 서울 종로구 공평동 개발지구에 추진 중인 대규모 오피스타운 건립사업은 공사현장에서 조선시대 문화재가 대거 출토돼 문화재청과 협의 중이며, 삼성생명이 2011년 2328억원을 들여 매입한 한국감정원 부지도 향후 개발과정에서 서울시와의 조율이 불가피하다.

해당 기업들은 김영란법으로 공무원들과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될라 고심하고 있다.

총수일가가 재판 중인 기업들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SK그룹과 효성이다.

SK 최태원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은 계열사 자금 450억원을 빼돌려 선물·옵션에 투자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3년6월을 확정 받아 복역 중이다.

SK는 대관팀을 총동원해 정․관계를 상대로 최 회장 등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월 법정구속된 최 회장의 만기출소 시점은 2017년 초이지만 ‘형기의 3분의 1’을 채워야 한다는 가석방 요건을 충족했고, 재벌 총수로서는 역대 최장기로 복역했다는 점에서 특사나 가석방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김영란법으로 대관 활동이 위축될 처지에 놓였다.

수천억원대 배임 혐의로 기소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도 마찬가지 사정이다. 조 회장은 고령(80세)인데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 중이다. 우호적인 여론 형성을 위해서는 언론 등과의 접촉이 필수적인데 김영란법이 복병이 됐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건설업계 ‘직격탄’

영업특성상 대관업무가 필수적인 금융사들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각종 입법이나 규제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과 의견 조율을 해야 하는 일이 잦은데 이런 업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현재도 직원들의 금품 및 향응 수수는 물론 직무상 정보에 대한 누설 등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김영란법으로 분위기가 더 경직될 것으로 보인다. 여신금융협회, 은행연합회 등 금융사들의 이익 단체도 국회 계류 중인 각종 금융관련 법안의 입법 홍보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건축 인·허가, 민원처리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형건설사의 대관·민원팀도 입지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건설업 특성상 각종 민원 문제로 지자체 공무원과의 접촉은 필수적이다.   

대기업 건설사에서 대관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환경·토목·건축 부서 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식사 자리 한번 갖는 것까지 법으로 막는 것은 일을 하지 말란 얘기 아니냐”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김영란법의 취지에는 공감하며 홍보·대관 시스템을 다시 정비하고 있다”면서도 “기업 입장에서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할 수 없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전경련은 윤리경영임원협의회를 열고 김영란법이 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대처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전경련은 “법안 시행까지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있는 만큼 기업들이 이 기간을 잘 활용해 윤리경영 시스템 전반을 재정비하고 사전적 예방을 위한 임직원 교육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영란법은 1년6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이처럼 재계의 고충, 위헌논란 등으로 본격 시행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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