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지난달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동서식품을 상대로 소송인단 11명이 참여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오는 26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 경종을 울리겠다’는 경실련과 이에 맞선 동서식품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누구 손을 들어줄까? (CNB=이성호 기자)
손해배상소송 26일 첫 재판 ‘시선집중’
피해자 11명 소송 참여…예상 밖 저조
경실련 “사회적 경종 울리려 소송제기”
지난해 10월 동서식품은 ‘아몬드 후레이크’ 등 시리얼 제품을 생산하면서 대장균군이 검출된 시리얼을 다시 정상제품에 섞어서 사용하다 발각됐다. 대장균군이 검출되면 즉시 보건당국에 부적합 신고를 하고 폐기해야 하지만 이를 어기고 새 시리얼 제품에 다시 넣어 사용한 것.
식품위생법에서는 ‘기준과 규격에 맞지 않는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은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제조·수입·가공·사용·조리·저장·소분·운반·보존 또는 진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검찰은 지난해 11월 동서식품 그리고 대표이사 등 임직원 5명을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 현재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경실련은 해당 사건이 알려진 직후 소비자 피해보상을 위해 별개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해왔다. 그동안 200여개의 피해사례를 접수, 이 중에서 실제 구매한 영수증 등 물적 증거가 있는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했고, 총 11명의 소송인단을 꾸려 지난달 10일 법원에 손해배상 소장을 제출했다.
손해배상 금액은 1인당 30만원으로 책정했다. 소장에는 ▲원고들이 모두 가족들과 함께 섭취를 하기 위해 시리얼을 구입했고 같이 먹었다는 점 ▲이 사건으로 인해 겪은 정신적 충격과 피해 감정 ▲동서식품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 강조됐다.
경실련 관계자는 CNB에 “손배 금액을 개인당 30만원으로 한 것은 관련 판례가 많지 않은 가운데 과거 어린이집 ‘잔반 죽’ 사건 등을 참조해 통상적으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6년 남은 잔반을 이용해 죽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인 어린이집 원장에 대해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피해 아동들에게 각 50만원, 부모에게는 1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참여인원 적어 ‘김빠진 소송’ 우려
동서식품 손배소 청구소송에 대한 첫 재판은 오는 26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경실련에서 수개월에 거쳐 소송을 준비해 왔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소송에 참여한 인원이 11명으로 많지 않았고 배상액이 총 330만원에 불과해 일부에서는 김이 빠진 것이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감지되고 있다.
또한 이번 사건에 대해 최종 법원에서 원고 측 손을 들어준다고 해도 동서식품 시리얼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모든 소비자가 구제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소송제는 A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 B·C 등 타 피해자들도 별도의 소송 없이 그 판결로 인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지만 이는 금융 관련 분야에 한정돼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서식품 시리얼 손배소의 경우 민사 절차를 통해 소송을 낸 사람들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경실련 측도 보상금의 액수보다는 부정식품사범에 대해 사회적 일침을 가하는데 목적을 두는 분위기다.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메리트의 최수진 변호사는 CNB에 “해당 제품을 구매했다는 증거자료가 확보된 분만 참여한 것”이라며 “이번 소송은 보상을 받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빈번히 발생되고 있는 불량식품 유통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차원”이라고 의미를 뒀다.
최 변호사는 “승소할 경우 피고(동서식품)측의 위법 행위가 입증이 되는 것이 때문에 증거가 확보된 타 피해자들이 릴레이 소송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체무해 vs 소비자선택권 침해 “팽팽”
한편, 동서식품은 최대한 방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손해배상액이 330만원에 불과해 당장 보상 합의를 볼 수도 있지만, 앞서 진행 중인 형사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두 손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재 이광복(62) 동서식품 대표이사 등 임직원 5명이 기소된 형사재판은 그동안 2차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이 재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식약처의 조사결과 발표를 내세워 경미한 수준의 처벌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해 동서식품 시리얼 제품들의 대장균군 적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시리얼 18개 전품목에 대해 총 139건을 수거 검사했다. 그 결과, 모든 완제품에서 대장균군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식약처 검사 결과를 근거로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사재판에서 순순히 보상해 줄 경우, 재판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 보상 선례를 남기게 될 경우, 비슷한 피해보상 소송을 줄을 이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CNB기자와 만나 “보상청구액이 미미하다고 해서 선뜻 보상을 해줄 수 있는 단순한 상황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반면 경실련은 “피해자(소송인)들이 구입한 시리얼 완제품에서 건강에 해를 끼칠만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하더라도 일반적인 소비자라면 대장균군이 검출된 시리얼이 재사용된 제품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건강 유해 여부를 떠나 ‘정직하지 못한 제품’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위법행위”라는 소비자 측 입장과 “제조과정에서 발생한 경미한 문제로 인체에 무해하다”는 회사 측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동안 식·음료 피해와 관련된 재판들은 대부분 인체유해성을 갖고 따졌다. 이번처럼 식약처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밝힌 제품에 대해 법원이 소비자피해 범위를 어디까지로 규정하느냐는 쉽지 않은 문제다. 의료적 판단이 아닌 소비자 선택권의 문제기 때문이다.
재판결과에 따라 식음료업계에서 유사한 재판이 잇따를 것으로 보여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 업계의 시선이 쏠려있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