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3세 한꺼번에 등장…단순 격려 넘은듯
경영승계·투자활성화 ‘두 마리 토끼’ 전략
박 대통령은 2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나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조현상 효성그룹 부사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황창규 KT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박용현 한국메세나협회 회장 등 재벌그룹 오너와 유수기업 대표 21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박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하기는 지난 2013년 8월28일 국내 민간 10대그룹 회장단과 오찬간담회를 한 이후 1년6개월 만이다.
박 대통령은 “기업인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메디치 가문이 돼주시고 문화예술 분야의 투자와 지원을 확대해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메디치가문은 학문과 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시대가 꽃피울 수 있도록 한 이탈리아의 유명 가문이다.
청와대는 이번 회동의 성격에 대해 메세나와 창조경제 활동을 잘하고 있는 기업을 격려하기 위한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메세나는 기업이 문화·예술 활동에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활동을 이른다. 정부는 ‘문화강국·문화융성’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메세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분위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조현상 효성그룹 부사장 등 재벌가 3세 기업인들이 한꺼번에 청와대에 초청된 적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연말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일명 땅콩회항 사건 이후 이들 3세 기업인들은 일체 대외활동을 자제해 왔다. 자칫 재벌 3세에 대한 곱지 않은 여론의 불똥을 맞을 수도 있어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거나 뒤로 미루는 등 몸을 사렸다.
이런 가운데 이들이 청와대에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을 두고 여러 관측이 나온다. 재계 일각에서는 3세 경영을 사실상 정부가 승인하는 성격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최근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는 기업소득환류세제 시행령을 확정하는 등 투자하지 않고 있는 기업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지난 1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최한 ‘주요기업 투자간담회’에서 15조6000억원 규모의 평택 반도체 신규라인 건설투자 계획을 밝혔다.
앞서 지난달 현대차그룹은 향후 4년간 공장 신·증설 등 생산능력 확대와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IT인프라 확충 등에 총80조7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롯데그룹도 지난 15일 올해 7조5000억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에 1만5800명을 신규 채용한다는 투자·고용 계획을 공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열린 이번 오찬은 청와대가 기업들의 투자계획에 ‘경영승계 승인’으로 화답하는 성격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또한 투자가 더욱 촉진될 수 있는 계기로 삼을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이날 오찬이 전날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활성화를 2015년 국정운영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직후 열렸다는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재계 인사들 외에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CEO들이 초청된 점도 눈길을 끈다.
청와대는 “메세나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어 초청 대상이 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젊은층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인 만큼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배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차세대 경영인들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한편으로는 투자 촉진에 대해 무언의 압력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날 분위기를 전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