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천기자 | 2015.02.06 09:57:06
불황·저유가·中저가공세 ‘3중고’ 직면
예측불허 유가…올라도 내려도 ‘한숨’
현대·삼성重·대우조선, 슬림화 ‘속도’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빅3’는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 영업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며 ‘생존을 위한 경쟁력 강화’를 공통적인 새해 메시지로 던졌다.
조선업계는 지난해 최악의 불황 속에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힘겨운 수주 경쟁을 벌이는 등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조선업은 수주량과 건조량, 수주잔량 등 3대 지표에서 모두 중국에 추월당한 지 오래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3분기까지 3조원이 넘는 사상 최악의 실적 부진 속에 20년만의 노조 파업까지 겪었다. 지난해 수주액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7.5% 줄어든 198억34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당초 목표했던 295억6500만 달러의 67.1%에 그친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830억원으로 8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전년보다 무려 80%나 감소한 것이며, 2006년 99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이후 최저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난해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 마저 주주 반대로 무산됐다.
국제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한해 전세계 선박 발주량은 3969만9천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 1749척)로 전년보다 34.7%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한국 조선사들의 수주실적도 36% 급감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이어지며 불확실성이 커진데다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타며 발주물량을 취소한 사례가 늘어난 탓이다. 시장점유율도 29.7%로 2012년 32.1%, 2013년 30.5%에서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올해 조선경기는 지난해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올해 국내 조선업계 수주량을 지난해보다 12% 감소한 950만 CGT(수정환산톤수), 수주액은 14% 감소한 250억 달러로 전망했다.
반면 경쟁국들은 조용히 국내조선업계의 목을 죄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시장점유율이 38.6%로 2013년(41.5%)보다 줄긴 했으나 여전히 세계 1위를 고수했다.
일본 조선업계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783만6천CGT를 수주했는데 이는 세계 평균치보다 적은 25.9% 감소한 수치다. 시장점유율도 2012년 17.1%, 2013년 17.4%에서 지난해 19.7%로 크게 높아졌다. 한국이 일본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고전하고 있는 모양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현대중공업은 조선 3사 임원 30%를 줄이고 영업조직 통합 등으로 부서 수를 대폭 축소했다. 삼성중공업도 조선해양영업실을 해체하는 등 군살을 덜어내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올해 조선업계의 승패는 국제유가의 흐름에 달렸다.
유가하락은 해상유전 개발을 위한 해양플랜트 발주를 위축시켜 조선업계 실적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그간 지속적인 유가하락과 과도한 개발비용으로 이미 해양플랜트 부문의 발주는 주춤해 있거나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를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국제유가가 급락세를 타자 이 기회에 원유를 싼 값에 사두려는 수요가 생기며 대규모 유조선 발주 기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셰일가스 생산과 원유공급 과잉에 따른 유가하락으로 밀어내기 수출, 비산유국의 비축유 증대 움직임으로 원유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유조선 수요가 증가 추세다.
실제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에는 초대형 유조선(VLCC) 발주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선사(船社)들은 VLCC 건조에 2년가량 소요되는 만큼 이후의 원유 물동량 추이를 예측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선사들은 아울러 저장용 유조선에도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유조선을 통한 원유 저장은 구매자가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만큼 원유를 운송하기가 쉬워 육상 저장보다 유연성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유조선 발주량의 증가로 한국 조선업계가 수혜를 볼지는 미지수다. 가격경쟁력이 한국보다 뛰어난 중국 조선사들이 VLCC 건조에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VLCC 척당 가격은 1억 달러선에 이르러 가격경쟁력이 수주의 키포인트”라며 “유조선 발주가 늘더라도 LNG선이나 에코십 등 고사양 선박에 특화돼 있는 한국 조선사들이 수주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유가하락으로 저가에 기름을 확보해 두려는 움직임이 있어 유조선 운임도 오르고 있다”며 “운임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중고선 거래, 선박 임대가 활성화된 다음 발주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사즉생(死卽生) 각오로 새해를 맞이한 조선업계는 올해 수주 목표를 작년보다 31.5% 늘어난 553억 달러, 수출은 7.1% 증가한 425억 달러로 잡고 위기 극복에 나선 상태다. 조선해양업계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등이 참석한 신년간담회에서 이런 목표를 제시했다.
업계는 저가 수주와 인력부족에 따른 납기지연, 생산원가 상승 등을 난제로 판단, 사업구조 개편과 구조조정 등의 내부 혁신을 추진하면서 친환경 선박 등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나갈 계획이다. 정부에는 적극적인 규제완화를 주문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8년까지 해양플랜트 기자재 54%를 국산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중장기 계획을 세웠다. 현재 해양플랜트 분야에서만 연간 18억 달러의 기자재를 수입하고 있는데 국산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 작년 9월부터 해양플랜트 기자재 국산화를 위한 전담팀(TFT)을 구성, 최근 1단계로 74개 품목에 대한 국산화 개발을 완료해 발주처와 승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총 149억 달러 어치를 수주, 국내 조선사 가운데 유일하게 연간 수주 목표를 달성한 대우조선해양은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대우조선해양 사측은 “지난해의 순항은 영업력, 기술력에 안정적 노사 관계가 더해졌기 때문”이라며 올해 위기극복의 중심을 사내 화합에 뒀다.
현대중공업 권오갑 사장은 변화와 혁신을 통한 경쟁력 회복을, 삼성중공업 박대영 사장은 모든 공정에서 비효율 제거를, 대우조선해양의 고재호 사장은 ‘철단익강((鐵鍛益强'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이라는 성어를 빌어 내실을 다질 것을 각각 신년사에서 주문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최악의 위기를 맞은 조선업계가 올해를 기점으로 ‘터닝’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