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천기자 | 2015.01.29 14:46:01
지난해 지방선거 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심민 군수(67)와 선거운동원 홍모 씨(50)에게 각각 구형된 형량의 차이가 너무 커 형평성 시비에 휩싸인 것. 더구나 피의자 신분인 심 군수가 서울고검의 부장검사와 식사를 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의혹을 더하고 있다. CNB가 사건 전말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심민 군수 vs 선거운동원 홍씨 ‘진실공방’
檢, 심 군수 ‘벌금형’ 홍씨 ‘징역2년’ 구형
홍씨 “심 군수가 주도한 일” 억울함 토로
법조계 “내부고발자 정상참작 원칙 어긋나”
검찰은 지난 19일 전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변성환)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심 군수에게 벌금 150만원을 구형했다. 또 심 군수가 참여한 식사자리를 마련한 홍씨에게는 제3자 기부행위를 적용해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들은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지난해 11월 불구속 입건됐다. 검찰에 따르면 심 군수는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2013년 7월부터 2014년 3월까지 6차례에 걸쳐 임실지역 음식점에서 선거구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심 군수는 식사 자리에서 “임실군 부군수와 군수대행을 하며 많은 행정 경험을 쌓았다. 지역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열심히 일 하겠다”는 취지로 사전 선거운동을 벌였다. 선거운동원인 홍씨는 심 군수를 위해 6차례 식사자리를 마련하고, 음식 값으로 모두 139만원을 지불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같은 사실은 6.4지방선거 직후인 지난해 6월 17일 홍씨가 검찰에 자수하면서 알려졌다. 홍씨는 검찰이 첩보를 입수해 내사한다는 소문을 듣고 스스로 검찰을 찾았다. 전주지검은 홍씨와 심 군수를 대상으로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심 군수는 검사 출신의 대형로펌 변호사를 선임, “사전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홍씨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채 조사를 받았다. 홍씨는 지역의 변호사를 선임하려 했으나 선임비가 부담이 돼 포기했다. 이후 심리와 선고가 몇 차례 연기됐고, 지난 19일 전주지법의 결심공판에서 심 군수는 홍씨에 비해 가벼운 구형을 받았다.
‘누가 먼저 유혹 했나’ 쟁점
홍씨는 “심 군수가 사전선거운동을 주도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홍씨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2013년 7월경 당시 출마예상자 신분이었던 심 군수는 ‘자신을 도와주면 은혜를 갚겠다’며 홍씨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후 홍씨는 심 군수의 말을 믿고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식사자리를 만드는 등 향응을 제공했다.
심 군수는 지난해 6월4일 지방선거에서 당선됐고, 당선 직후인 6월 10일 심 군수는 홍씨 등과 임실군내 모처에서 만나 ‘선거관리위원회 감시활동 기간이 종료되는 6개월후(12월3일 이후)에 취업을 알선해 주고 사업을 밀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홍씨는 ‘6개월은 너무 멀다. 당장 대가를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심 군수는 홍씨의 부인을 임실군 사회복지센터 임시직에 취업시켜 홍씨를 달래려 했다.
홍씨는 “고작 임시직 취직하려고 이 고생 했냐”며 크게 반발했고 며칠 뒤 검찰에 자수했다. 홍씨는 ‘자수하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수사당국의 말을 믿고 이런 사실을 전부 털어놨다.
하지만 검찰은 홍씨의 이런 주장을 대부분 반영하지 않았다. 심 군수가 홍씨에게 사전선거운동을 청탁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홍씨를 사실상 ‘자발적인 선거운동원’으로 봤다. 홍씨 스스로 심 군수를 위해 지역주민들에게 향응을 제공했으며, 심 군수는 이에 휘말려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검찰은 심 군수에게는 벌금형을, 홍씨에게는 징역 2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홍씨는 CNB에 “진실을 가리기 위해 거짓말탐지기 조사라도 해달라고 했지만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부장검사와 일식집 회동 ‘구설수’
이런 가운데 심 군수가 검찰 수사 중인 기간에 서울 고등검찰청 A부장검사와 전주 시내 일식집에서 점심을 함께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을 더하고 있다.
28일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심 군수는 지난해 7월 5일 전주시 중화산동 모 일식집에서 A부장검사와 만났다.
제보된 동영상에는 심 군수와 A부장검사, 심 군수 측근으로 보이는 B씨와 A부장검사 일행으로 보이는 50대 남자, 심 군수 수행비서 등이 등장한다.
동영상은 A부장검사 일행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미리 도착한 일식집에서 나와 심 군수 수행비서와 악수를 나누며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남자는 심 군수 비서를 만난 뒤 일식집에 들어가 2~3분 후 나왔고, 이때 손에 2개의 검은색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쇼핑백을 든 남자는 주차장으로 유유히 사라졌고, 이어 심 군수 측근인 B씨가 뒤따라 나왔다. 한참 뒤 심 군수와 해당 일식집에서 A부장검사가 나왔고, 뒤이어 심 군수가 자신의 차량에 몸을 실었다.
당시는 전주지검이 심 군수를 선거법 위반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때였다.
심 군수 측은 ‘오랜 지인과의 만남’이라며 확대해석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 심 군수 비서실장 이모 씨는 29일 CNB에 “오랜 지인인 A부장검사가 휴가차 전주에 내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심 군수가)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점심 한끼 한 것일 뿐, 선거법 수사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또 “쇼핑백은 임실 삼계면 산수상황버섯주이고 심 군수 지인(동창)을 통해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심 군수 측에 따르면, A부장검사와 심 군수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심 군수는 초등학교 동창인 윤모씨를 통해 A부장검사를 소개받았다. 2004년 심 군수가 모친상을 당하자 A부장검사는 서울에서 임실까지 달려와 조의를 표했다. 이후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고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내왔다.
하지만 동영상에 나타난 두 사람의 모습은 막역한 사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어색해 보인다. 서로 시차를 두고 움직이는 모습, 측근들이 주변을 감시하는 듯한 태도 등을 볼 때 두 사람 간 관계를 점치기 쉽지 않아 보였다.
홍씨 “심 군수에게 찍혔다”
의문은 또 있다. 심 군수는 선거법 위반 전과가 있다. 심 군수는 2006년에 공직선거법 상 기부행위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으나 항소심·상고심 모두 기각돼 원심이 확정됐다.
반면 홍씨는 이번에 처음 선거법으로 기소됐다. 재범인 심 군수는 가벼운 벌금형이고, 초범인 홍씨는 중형을 구형받은 것. 비슷한 사건의 선거법 판례로 볼 때, 홍씨가 자수했다는 점도 거의 참작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심 군수 지지자들의 탄원서명에 홍씨의 이름이 빠진 것도 주목된다. 임실군애향운동본부, 임실군 노인회와 체육회, 여성단체협의회 등 60여개 관변·사회단체 회원 3700여명은 지난 15일 전주지방법원에 심 군수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탄원 대상에 홍씨는 없었다.
홍씨는 “심 군수에게 제대로 찍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뒤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내부고발자인 자신이 심 군수와 심 군수 지지자들, 이를 의식한 사법당국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양측의 주장을 차치하고서라도 선거법 고발자에 대해 검찰이 너무 과도한 형량을 내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내부고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정상참작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사건을 전해들은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명동사채왕의 판사 청탁로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각기 다른 판단(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어느 때 보다 높다”며 “홍씨가 비록 피의자 신분이긴 하지만 내부고발자에게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게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은 다음달 5일로 예정돼 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