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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본군 관사’는 복원하고 ‘조선시대 주상복합’은 버릴 셈인가?

종로통 마지막 조상 ‘손때’ 제대로 보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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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5.01.20 10:11:28

(CNB=도기천 정경부장) 서울 종로구 공평동 개발지구에 500여년 전 조선시대 집터와 골목길, 생활도구들이 발견돼 역사·건축학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유적이 발견된 공평 1,2,4지구(연면적 12만4720㎡)는 포스코건설이 시공하는 지하 8층, 지상 26층 규모의 업무용빌딩이 들어설 자리다.

해당 지역이 보신각, 의금부 터, 수진궁 터, 순화궁 터, 사동궁 터 등 조선시대 중요한 시설이 위치해 있던 곳과 인접해 있어 애초부터 문화재 출토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 발굴이 이뤄져 마침내 500여년전 조선시대 상권중심지의 모습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CNB는 출토된 유구(遺構·건축물 흔적) 중 일부 건축물이 대청마루가 발달된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연구·보존가치가 높다는 사실을 지난 16일 단독보도해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종로 개발사업의 배경, 진행과정도 심층적으로 다뤘다. (관련기사: [단독] 포스코건설 ‘6700억 프로젝트’ 묻힌 ‘육의전’ 뒷골목)

이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종로 재개발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일제강점기 일본군 장교관사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발견돼 이축·복원 됐지만, 당시 종로의 수많은 유적과 전통문화들은 개발논리에 밀려 구렁이 담 넘듯 사라진 점이다.

지난 2005년 서울시 산하 SH공사는 상암동에 대규모 택지를 조성하면서 일본군 장교관사로 추정되는 목조건물 22개동을 발견했다. 문화재청은 ‘역사적인 보존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2006년 초순에 SH공사 측에 보존대책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SH와 문화재청은 일본군관사 2개동을 비롯, 마당, 방공호, 우물 등 당시 생활상을 그대로 살려 상암동 아파트 단지 앞 공원에 이축 복원했다. 현황조사 및 실측→문화재청 정밀조사→이축 복원할 부지선정→복원공사 등 3~4년에 걸쳐 복원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진행된 종로 재개발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2004년경부터 서울시는 종로구 청진동 일대 도시환경정비사업에 착수, 본격적인 개발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피맛골이 사라졌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다.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종로통을 지나다 말을 탄 고관들을 만나면 행차가 끝날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이 때문에 서민들은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대로변 뒤편 골목길로 다녔다. 피맛골 골목에는 선술집·국밥집·색주가 등 술집과 음식점이 수백년간 번창했다.

1910년대 지적도에 나타난 골목길이 현재와 정확히 일치하는 점으로 볼 때, 종로 일대 번화가는 조선시대부터 그대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종로 일대는 1980년대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대부분 역사 흔적들이 사라졌다. 한옥 집터와 기와, 도자기 등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수많은 유적들이 나왔지만 다시 땅속에 묻혔다.

뒤늦게 관련법이 개정돼 발굴조사가 진행됐지만 이마저도 보존을 위한 조사가 아니라 기록에 남기기 위한 작업이 주를 이뤘다. 그나마 제대로 복원된 것은 서울역사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옮겨진 시전행랑(조선시대 점포)과 종로2가 ‘육의전 박물관’ 정도다.
 
포스코건설·문화재청, 통 큰 결단 시급

이런 가운데 이번 공평동에서 발견된 유구는 어느 때보다 관심이 크다. 학계가 이번 발굴에 주목하는 것은 과거 종로 개발 때 많은 유적들이 사장되는 바람에 이곳이 사대문 안에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시대 집터 유적지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학계는 발견된 집터 중 일부가 일반 가옥과 전혀 다른 구조를 갖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 건축물은 작은 부엌이 딸린 방 한 칸이 숙박시설의 전부였고 나머지 공간은 대청마루였다. 안창모 교수(경기대 건축대학원)는 이곳이 육의전(시전행랑) 코앞이라는 점에서 주거(온돌)보다는 상거래 위주의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문화재청은 이 자리 위에 새로 지어질 빌딩 1층에 옛골목의 동선을 그대로 유지하는 통로를 만들어 역사적 의미를 살리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특이한 이 건축물에 대한 복원계획은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이 건축물은 조선시대 상인들이 드나들던 쉼터였거나, 육의전에 물품을 대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객주(중간상인)들이 물건 가격을 매기는 장소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온돌방과 부엌이 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숙식도 이곳에서 해결했을 것이다. ‘조선시대판 주상복합건물’인 셈이다. 안 교수는 “이런 가옥구조는 조선시대 건축물 중 현존하는 것으로는 유일하다”고 전했다. 

이미 짓기로 한 빌딩건립 계획을 물릴 순 없겠지만, 유구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진행돼 제대로 된 보존 계획이 수립되길 바란다. 

보존 가치가 결정되면 서울역사박물관 야외전시장과 육의전 박물관 등에 나눠져 있는 조선시대 중앙정부 상업 활동의 모습을 한데 모아 큰 그림을 그려보는 작업도 검토될 일이다. 포스코건설은 작은 시행사 뒤에 숨어있기만 할 것이 아니라, 통 큰 보존대책을 내놓길 바란다. 

일본군 관사는 주민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단지 한복판 공원에 버젓이 부활시켜 놓고,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상업시설들이 뒷방늙은이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종로발(發) 발굴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다. 과거를 잘 챙겨야 미래가 있다. 

(CNB=도기천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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