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의 횡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백화점 모녀 갑질 논란, 아파트 주민의 경비원 폭행 등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각종 사건들은 이제는 만연화된 듯싶다.
우리사회는 이를 보며 또 다시 분노하고 한편으로 서글픈 한숨을 짓는다. 특히 최근 ‘열정페이’로 포장한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갑을관계를 보면서 다시금 남양유업 사태를 떠올리게 된다.
2013년 ‘갑을 논란’의 불씨를 당긴 남양유업 사태는 전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곳곳에서 억눌려있던 ‘을’들의 호소가 쏟아졌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국회에는 속칭 남양유업 방지법인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같은 해 5월 제출됐다.
대리점 본사의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규정, 대리점 사업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2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현재까지 남양유업 방지법은 국회에 곤히 잠들어있다. 입법 과정의 첫 단계인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 문턱조차 넘지를 못하고 마냥 대기중이다.
당장 통과될 것 같던 남양유업법에 브레이크가 걸린 이유는 뭘까?
물론 정부나 여야 모두 대리점과 관련한 규율을 보완해 소외된 ‘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그 실행방법에 있다.
남양유업법은 기존 법을 보완하는 것이 아닌 제정법이다. 기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대리점 거래 부문은 적용이 안 돼 따로 만들자는 것이다.
정부나 여당 측은 공정거래법 및 관련 고시를 강화·운영한 다음 이후에 입법적인 보완방안을 찾자는 반면,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측은 가맹점도 특별법을 만들어 보호해 주면서 왜 대리점은 안 되냐며 법 제정을 부르짖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고시를 통해 얼마든지 대리점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율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남양유업법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유로만 남양유업법이 정체돼 있다고 보긴 힘들다. 이 법은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의욕만 앞선 나머지 법체계상 문제점이 도출된 것.
거두절미하고 계약 및 거래형태가 각각 다르고 비전속대리점이 많은 상황에서 법의 적용을 받는 대리점의 정의와 범주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첫 단추부터가 난맥이다. 따라서 전속대리점부터라도 범위를 좁혀 우선 통과시키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서울시가 292개 대리점주를 대상으로 최근 발표한 ‘유제품가공본사-대리점간 불공정거래현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품거부·판촉사원 인건비 부담이 각각 11.7%, 14%가 ‘변함없다’고 응답해 불공정거래 관행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재확인됐다.
더욱이 3개 유제품 본사와 대리점간 계약서에서 판촉행사시 비용분담이 불명확하고 폭넓은 계약 해지 사유, 과도한 물적·인적 담보 요구가 명시돼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법의 외곽에서 ‘을’들의 눈물은 이어지고 있다. 곤히 잠들어 있는 남양유업법을 서둘러 깨워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