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천기자 | 2015.01.06 11:22:03
이 상품은 카드사들의 일시적인 자금 부담이 커지지만 고객 입장에서 대출발생 시점이 다소 늦춰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기존 복합할부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자동차 할부 시장에서 절대적인 ‘갑’ 지위에 있는 현대차가 이 방식을 수용할 지 미지수다. (CNB=도기천 기자)
BC카드 vs 현대차, 가맹수수료 협상 결렬
반격나선 삼성·신한카드, 新복합할부 출시
신용공여 30일 연장…車업계 “꼼수” 일축
현대차와의 협상결렬로 비씨(BC)카드의 복합할부금융 신규 판매가 중단된 가운데 신용카드사들이 새로운 구조의 ‘신(新) 복합할부 상품’을 이르면 이달 중에 출시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6일 CNB에 “기존 1~2일이던 복합할부 신용공여 기간을 30일로 연장하는 방안을 오래 전부터 추진해 왔으며,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새 상품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현대차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터무니없이 낮은 가맹점 수수료율을 요구하고 있는데 대한 대응책으로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합할부금융은 자동차를 사는 고객이 캐피탈사의 할부를 이용하는 과정에 카드사가 개입된 구조다. 소비자가 자동차 대리점에서 신용카드로 대금을 결제하면, 결제액을 캐피탈사가 대신 갚아주고 고객은 캐피탈사에 자동차 대금을 매달 할부로 갚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 회사는 카드사에 1.9%의 가맹점 수수료를 낸다.
현대차 측은 복합할부는 자금공여 기간이 1~2일에 불과하고, 대손 비용도 들지 않는 데도 일반 신용카드와 똑같은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상 할부금융시장에 카드사가 중간에 끼어들어 높은 가맹점 수수료만 챙긴다는 것.
이는 결국 차값에 반영돼 소비자 부담을 키운다는 논리다. 자동차업계는 2010년부터 4년간 카드복합할부 수수료로 1872억원을 부담했다.
현대차의 압박에 KB카드는 지난해 11월 카드수수료율을 여신전문금융업법의 적격비용을 감안한 최저 수준(1.5%)으로 합의했다. 현대차는 애초 KB카드에 복합할부 가맹점 수수료율을 0.7%까지 내려달라고 요구했다가 이후 1.0∼1.1%로 인하 폭을 낮춰 제시했고, 결국 1.5%에 타결했다.
비씨카드는 지난 3일 현대차와 의견을 좁히지 못해 신규 복합할부를 취급하지 않되 가맹점 계약은 유지키로 했다.
현대차는 비씨카드에 카드복합할부 수수료율을 현행 1.9%에서 체크카드 수수료율인 1.3%로 낮춰달라고 요구한 반면 비씨카드는 KB국민카드 수수료율과 같은 1.5%에 맞춰야 한다며 맞서왔다.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해 복합할부결재는 중단됐고,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기능으로만 현대차를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비씨카드 관계자는 “복합할부결재 비중이 크지 않아 회원카드사들이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현대차와의) 재협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만간 현대차와 가맹점계약 종료(재계약)를 앞두고 있는 삼성, 신한 등 업계 1~2위 카드사들은 아예 새로운 상품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현대차와 국민카드, 비씨카드 간 협상을 지켜본 결과 앞으로 복합할부 수수료율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판단, 선제적 조치에 나선 것. 신한카드와 삼성카드, 롯데카드는 2~4월에 가맹점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다.
새 상품은 할부금융사의 대출시점을 통상적인 카드대금 결제일인 1개월 후로 변경한 것으로 일반 카드거래 방식과 비슷하다.
새 상품은 카드사가 고객의 자동차 구입대금을 결제 이틀 뒤 먼저 현대차에 지급하고 30일 뒤에 할부금융사가 고객과의 계약에 따라 카드사의 대출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이때부터 고객은 매월 할부금융사에 자동차 할부금을 갚아나가면 된다.
이렇게 되면 카드사로서는 일시적으로 자금부담이 늘지만 할부금융사에게 수수료 인하를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현행 복합할부 상품은 고객이 자동차를 구입하면 이틀 뒤 할부금융사(캐피탈 등)가 자동차 회사에 대금을 선지급하고 동시에 할부금융사와 고객이 대출계약을 맺는 형태다. 여전법 상 카드사들은 담보 대출을 해줄 수 없으므로, 캐피탈사가 자동차를 담보로 고객에게 대금을 빌려 주는 것.
그러다보니 할부금융사가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셈이라 카드사들은 자동차 판매사로부터 받은 1.9%의 수수료율 가운데 1.3% 가량을 할부금융사에 지급하고 있다. 여기에는 캐피탈사가 카드사를 대신해 고객모객, 홍보 등 영업행위를 전담하고 있는데 따른 비용도 포함된다.
새 상품이 도입되면 할부금융사 입장에서는 카드사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줄어들 수 있지만,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복합할부 상품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카드사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카드사 관계자는 “그동안 차(車)업계가 ‘복합할부 결재 과정에서 카드사가 대손 위험 없이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신용공여기간이 30일로 늘어나면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된다”며 “카드결재금액에 따른 캐쉬백(포인트적립), 할부이자율 등이 지금보다 고객에게 유리할 수 있도록 캐피탈사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복합할부 취급 규모가 가장 큰 삼성카드의 원기찬 사장은 5일 열린 ‘2015년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될 것이고, 어떤 상품을 선택할지는 소비자 판단에 달렸다”고 말했다. 신한카드의 위성호 사장도 “삼성카드가 새상품을 출시하면 비슷한 상품을 출시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카드사들이 캐피탈사와 연대해 차업계에 맞서고 있는 데는 현대차-현대캐피탈-현대카드의 시장 독과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2013년 기준 국내 신차 할부금융매출액은 12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현대차 매출액이 9조 1523억원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 매출액 가운데 현대캐피탈 비중은 74%에 이른다.
현대캐피탈은 현대기아차와만 거래하고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다른 완성차업체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현대캐피탈은 신차 할부금융시장의 56%를 점유하고 있다. 나머지 40%가량을 중소 캐피탈사 5~6곳이 분할하고 있다.
이런 현대차 계열사들의 시장독과점 상황에서 살 길을 찾아 나선 카드사들과 중소캐피탈사들이 함께 머리를 짜낸 게 복합할부시스템이다. 2010년 롯데카드가 처음 내놓은 복합할부금융은 카드 사용률이 높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결제 방식이다.
그러자 자동차업계는 복합할부를 변형적인 파생상품으로 규정, 금융시장을 교란한다고 주장해 왔다. 자동차회사와 캐피탈사 간의 결재과정에 카드사가 끼어들어 대손 위험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수수료만 떼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카드사들은 복합할부로 인해 오히려 소비자 혜택이 커졌다는 입장이다. 1.9%의 가맹점 수수료를 받지만 이를 낮은 할부금리, 캐시백 등으로 되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캐피탈의 신차 할부금리는 5.9%선인데 복합할부를 이용할 경우 이보다 1%p 가량 저렴하다. 카드 결제금액에 따라 일정비율(0.2%~1%)의 캐시백도 받는다.
카드사들이 일정부분 대손 위험을 떠안는 형태의 새로운 복합할부 상품을 준비하고 있지만 완성차업계는 여전히 복합할부를 변형적인 파생상품으로 규정하고 있어 현대차와 카드사 간 협상이 순조롭지 않을 전망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6일 CNB에 “카드업계가 준비 중인 새상품은 가맹점 수수료율을 낮춰주지 않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며 “복합할부가 변칙금융상품인만큼 폐지돼야 한다는 기존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관계자도 “카드사들의 이익증진을 위한 상품일 뿐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과다한 가맹점 수수료를 현실에 맞게 내려야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복합할부를 보는 시각이 제각각이다. 자동차회사가 내는 높은 가맹수수료를 카드사와 캐피탈사가 나눠 갖는 구조라 결국은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입장과 현대차그룹의 시장독과점을 막는 순기능이 있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경제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가맹점 규모만을 기준으로 수수료율을 책정한 현행 여전법을 원가기준(적격비용), 거래구조, 리스크 발생 여부 등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가맹수수료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며 “합리적인 기준이 제시돼야 자동차업계와 카드사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