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다른 완성차업체들도 앞다퉈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커진데다, 복합할부 시스템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불씨는 여전하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복합할부라는 금융구조가 가계부채 1000조원을 넘긴 우리사회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편치 않다. CNB가 ‘차(車)-카드-캐피탈’로 얽힌 복합할부금융의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복합할부수수료 1.5%로 타결…갈등 ‘불씨’ 여전
금융시장 교란 vs 독과점 견제…찬반논란 ‘팽팽’
카드·캐피탈사 vs 車업계, 사활 건 2차전 예고
이래저래 ‘빚 권하는 사회’…피멍드는 소비자들
현대차와 KB국민카드는 17일 가맹점수수료를 1.5%로 타결했다. 현대차가 지난달 23일 KB 측에 가맹수수료율을 대폭 내리지 않으면 가맹계약 갱신을 거부하겠다고 밝힌 지 25일 만이다.
KB카드는 가맹점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전날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가 수수료 협상에 직접 나서면서 계약을 다시 체결하기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그동안 KB 측에 현행 1.85%인 카드복합할부 가맹점 수수료율을 내려달라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가맹점 수수료율을 0.7%로 낮추지 않으면 가맹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통보했다가 최근에는 1.0∼1.1% 정도로 내려 달라고 주문했다. 지난해에는 금감원에 복합할부가 변칙상품이라며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복합할부란 고객과 캐피탈사의 양자 계약에 카드사가 끼어든 구조다.
소비자가 자동차 대리점에서 신용카드로 차를 구매하면 카드사는 자동차사에 대금을 지급한다. 동시에 소비자는 캐피탈사와 할부금융계약을 맺고 차량 금액만큼 대출 받아 카드사에 갚는다. 이로써 카드사와 소비자 간의 금융관계는 청산되고, 소비자는 캐피탈사에 매월 할부원금과 이자를 갚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 회사는 카드사에 1.9%(KB카드는 1.85%)의 가맹점 수수료를 낸다.
현대차 측은 복합할부는 자금공여 기간이 하루에 불과하고, 대손 비용도 들지 않는 데도 일반 신용카드와 똑같은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상 할부금융시장에 카드사가 중간에 끼어들어 높은 가맹점 수수료만 챙긴다는 것. 이는 결국 차값에 반영돼 소비자 부담을 키운다는 논리다.
자동차산업협회도 지난 16일 공식 성명을 내고 “카드 복합할부가 확대되면 자동차업계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판촉 재원과 기회를 상실하게 돼 결국 자동차 가격의 상승요인이 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자동차업계의 비용증가가 소비자혜택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자동차업계는 2010년부터 4년간 카드복합할부 수수료로 1872억원을 부담했다.
카드사 “복합할부 소비자에 도움”
반면 카드사들은 복합할부로 인해 오히려 소비자 혜택이 커졌다는 입장이다. 1.9%의 가맹점 수수료를 받지만 이를 낮은 할부금리, 캐시백 등으로 되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현대캐피탈의 신차 할부금리는 5.9%선인데 복합할부를 이용할 경우 이보다 1%p 가량 저렴하다. 카드 결제금액에 따라 일정비율(0.2%~1%)의 캐시백도 받는다.
LF소나타 2.0 프리미엄 모델(차값 2,860만원)을 36개월 복합할부로 구입할 경우, 일반할부(연5.9%)보다 이자비용이 46만원 가량 더 싸다. 여기에 캐시백을 0.5%로 잡으면 14만원 가량이 추가로 내려간다.
복합할부가 일반할부보다 금리가 낮은 이유는 카드사들이 자동차사로부터 받은 가맹수수료의 상당부분을 캐피탈사로 넘겨주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캐피탈사와의 제휴를 통해 자동차 판매사로부터 받은 1.9%의 수수료율 가운데 1.37%를 캐피탈사에 지급하고 있다. 캐피탈사가 카드사를 대신해 고객모객, 홍보 등 영업행위를 전담하고 있는데 따른 수수료 성격이다.
대신 캐피탈사는 낮은 대출금리로 카드사에 화답하고 있다. 카드사는 낮은 할부금리로 고객을 유인할 수 있고, 캐피탈사는 금리를 낮추더라도 수수료 수익이 쏠쏠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자동차산업협회 측은 “카드사들이 자동차 판매사로부터 받은 수수료의 대부분을 캐피탈사에 넘겨주고, 캐피탈사가 이를 자사의 영업에 활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동차 회사가 캐피탈사의 영업비용을 대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앞뒤 상황을 종합해보면 카드사들은 별로 남는 게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캐피탈사에는 수수료, 고객에게는 캐시백으로 돌려주기 때문에 카드사가 챙기는 이익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카드사들이 자동차 할부 시장에 뛰어든 데는 현대차-현대캐피탈-현대카드의 시장 독과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신차 할부금융매출액은 12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현대차 매출액이 9조 1523억원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 매출액 가운데 현대캐피탈 비중은 74%에 이른다. 현대캐피탈은 현대기아차와만 거래하고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다른 완성차업체와는 상종하지 않는다. 현대캐피탈은 신차 할부금융시장의 56%를 점유하고 있다. 나머지 40%가량을 중소 캐피탈사 5~6곳이 분할하고 있다.
현대카드로 현대차를 구매할 때에도 포인트, 캐시백 등 각종 혜택이 다른 카드사보다 월등히 높아 현대카드가 신차 구매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런 현대차 계열사들의 시장독과점 상황에서 살 길을 찾아 나선 카드사들과 중소캐피탈사들이 함께 머리를 짜낸 게 복합할부시스템이다. 2010년 처음 등장한 복합할부금융은 카드 사용률이 높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결제 방식이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CNB에 “비정상적인 시장구조를 바로잡고 소비자와 카드사, 중소캐피탈사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이 복합할부”라고 강조했다.
결론 못낸 금감원, 손들었나
그러자 지난해 현대차는 복합할부금융에 대해 조사해줄 것을 금융당국에 요청했다. 복합할부의 등장으로 신차 할부 시장을 일부 내주게 된데다, 한 해 수백억원의 가맹점 수수료를 물고 있는데 따른 조치였다. 실제 현대캐피탈의 현대차 할부금융 점유율은 2011년 86.6%에서 작년 74.7%로 줄어들었다.
현대차는 복합할부금융을 변칙 상품으로 규정, 금융시장을 교란해 소비자 피해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금융당국은 현대차의 민원에 따라 카드사가 중간에 끼어들어 부당이득을 보는 지를 면밀히 살폈다. 금감원은 지난 6월 카드사, 캐피탈사, 자동차 제조사와 시민단체, 학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복합할부금융 상품 존폐에 대한 비공개 간담회까지 열었지만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위반 여부, 소비자 피해 등과 관련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현대차가 KB카드에 수수료율을 대폭 내리지 않으면 가맹계약을 해지하겠다며 배수진을 치자, 금융당국은 되레 현대차를 제지하고 나섰다. 복합할부에 대한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대차가 KB를 압박하는 건 부당하다는 판단에서다.
현행 여전법에 따르면 자동차판매사 대리점은 대형가맹점으로 분류돼 카드사들은 1.85%~1.9%의 수수료율을 책정하고 있다. 수수료율을 자율화하면 협상력 있는 대형 가맹점에게만 유리해져 상대적으로 영세 중소가맹점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은 수수료 기준을 정해 통제하고 있다.
또 관련법에서는 대형 가맹점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율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년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 벌금을 받는다.
금융당국은 현대차가 가맹계약 해지를 내세워 KB를 계속 몰아붙이자 현대차를 검찰에 고발하거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여전법과 공정거래법 관련조항에 대해 충분한 법률자문을 거친 결과, 국민카드 전체 결제액에서 현대차의 결제비중은 1.3%에 불과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맞섰다.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극적으로 수수료율 인하가 타결된 터라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일단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수수료율 원칙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천명함에 따라 현대차가 한발 양보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금융당국이 마지노선으로 정한 수수료율(1.5%)을 현대차가 사실상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업계가 복합할부금융 자체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완성차업계는 여전히 복합할부를 변형적인 파생상품으로 규정, 금융시장을 교란하다고 보고 있어 언제든 사태가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18일 CNB에 “(수수료율 인하가) 당초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고객 불편 방지와 그동안 금융당국이 강조해 온 ‘가맹점 수수료율 체계 유지’라는 입장을 반영해 결단을 내렸다”면서도 “복합할부가 변칙금융상품인만큼 폐지돼야 한다는 기존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복합할부를 보는 시각이 제각각이다. 자동차회사가 내는 높은 가맹수수료를 카드사와 캐피탈사가 나눠 갖는 구조라 결국은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입장과 시장독과점을 막는 순기능이 있어 소비자가 손해 볼 게 없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대형 가맹점에는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현행 여전법 취지의 허점을 카드사들이 이용한 측면이 있다”며 “원가기준(적격비용) 뿐 아니라 거래구조도 면밀히 분석해 가맹수수료를 정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명재 박사(전 한세대 경영학부교수)는 “(현대차그룹이)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로 시장을 독점해온데 대해 당국이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못한데서 복합할부라는 희한한 결제방식이 탄생한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은 독과점을 막고 공정거래가 되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