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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뷰] '비정상회담'만 대세? '중년회담' 펼치는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

찜질방 배경으로 유쾌·감동 넘나들며 '소통' 이야기 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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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기자 |  2014.11.13 13:51:17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는 찜질방을 배경으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털어놓는 작품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최근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이 출연해 어떤 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펼치는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이 인기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모였기에 펼쳐지는 이야기 또한 다양하다.

그런데 현재 연극계에서는 중년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른바 '중년회담'과도 같은 현장이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정동 세실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다.

'여보 나도 할말있어'는 찜질방을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 연극이다. '비정상회담' 출연진들이 정장을 입고 회의 공간 같은 곳에서 격식을 갖춰서 이야기 한다면, '여보 나도 할말있어'는 대중들에게 친근한 장소인 찜질방에 배우들이 편한 옷을 입고 민낯으로 등장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집에서 홀로 강아지를 돌보는 60대 가장 '영호',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자리가 위태로운 40대 샐러리맨 '종수', 자식농사 잘 짓고 노후 걱정 없이 사는 '말복', 늦은 나이에 손자를 봐야 하는 갱년기 여성 '영자', 세월이 가도 사랑받고 사는 예쁜 '춘자', 사춘기 자녀와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오목' 등이 등장한다.

▲이 시대 고달픈 샐러리맨과 아버지의 모습의 이야기를 담은 '종수' 역할을 맡은 배우 이종민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자식 교육', '배우자와의 다툼', '시어머니와의 갈등', '중년에 느끼는 씁쓸함', '언제 생각해도 애틋한 부모님의 존재' 다양한 주제를 지닌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중년들이 이야기를 펼치지만 세대에 관계없이 각 이야기마다 공감대를 주며 신기할 정도로 가슴에 와닿는 경우가 많다. 바로 소통불화를 겪고 있는 현 시대 가족들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호는 퇴직 후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눈총을 받고, 종수는 아들 공부할 때 주려고 아내가 사온 유기농 사과 한 개를 먹었다가 혼나기 일쑤다. 영호는 젊은 생활을 다 바쳐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지만 정작 나이가 들고 나선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리고 종수는 마치 영호의 젊은 모습과도 같이 그 전철을 똑같이 밟고 있다.

가족들과 먹고 살기 위해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이 두 '아버지'들은 이미 자식, 아내와 멀어졌거나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가족과 소통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정작 입을 열지 못하고, 찜질방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모습은 씁쓸함을 준다. 영호와 종수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가슴 속에 뭍어뒀던 진지한 이야기가 관객들에게도 전해지며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뭉클함을 준다.

▲시어머니와의 갈등, 남편과의 소통 불화, 자식들에게 가진 서운함 등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또한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에 담겨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이 시대 가족이 지니고 있는 '소통의 부재' 문제
극 중 인물들 경험담 속에 녹아 들어가

말복과 영자, 춘자 그리고 오목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말복은 자식들이 대기업에 취직하고, 교수 직위를 얻는 등 남 부러울 것 없이 보이지만 정작 자식들이 찾아오진 않고 통장에 '입금효도'를 하는 행태다. "난 내가 살아있을 때 자식들과 함께 밥을 벅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내가 죽은 후 제사상에서야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다. 그 때도 회사일이 바빠서 못 온다고 하는 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말복의 모습은 애잔함을 준다.

말복과 대화를 하는 영자의 모습은 관객들의 눈물을 가장 자아내는 장면 중 하나다. 영호와 종수가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그렸다면 영자는 '어머니'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영자는 "모든 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애지중지 자식을 키웠지만 어머니에게는 그 좋아하는 사탕 하나도 챙겨드리질 못했다"며 "엄마"라고 울부짖는다. 원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지만 늘 곁에 있다고 생각해 정작 잘 챙기지 못하는 '어머니'의 존재는 눈시울을 자극한다.

▲자식 때문에 속을 썩는 말복이 자식과 갈등을 겪는 모습이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이밖에 시어머니, 자식과 갈등을 겪는 오목, 남편과 매우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춘자 또한 관객들에게 공감을 준다.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총체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소통'의 문제다. 가장 가까이 있고 가장 사랑해야 할 존재인 가족에게는 오히려 입을 열기가 힘들고 멀리하게 되는 게 현 세태이다.

극본을 쓰기 위해 직접 찜질방을 방문해 3개월 동안 만난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김영순 연출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가슴 속에 묵힌 답답한 이야기가 많았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어머니와 싸우고 힘들어 하거나, 자식이 말을 안 들어서 속을 썩는 어머니도 있었고, 집에서 설 자리를 잃어 외로워하는 아버지도 있었다"며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극을 썼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누구나 어떤 장면에서 자신의 이야기라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해 서로 멀어지고 외로움을 느끼는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하고픈 게 이 공연의 의도다. 김 연출은 "바쁘게 살아가면서 정작 가까워야 할 가족과 같이 보낼 시간도 부족하고 멀어지는 시대다. 이 공연이 가족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고 공감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런 연출 의도가 극에 녹아 들어가서인지 화려한 무대 장치도, 춤과 노래도 없이 배우들의 이야기 만으로 극이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100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유쾌한 이야기가 나올 땐 관객들이 박장대소하다가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지한 이야기가 드러날 땐 극장이 눈물 바다가 되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앞서 언급했던 '비정상회담'의 경우 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거치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지만 '여보 나도 할말 있어'는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진 않는다. 다만 찜질방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터놓고 들어주고 함께 울고 웃은 이들이 각자가 집착하고 있던 어떤 것들을 놓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 방향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보다 명쾌한 해답이 어디 있을까. 소통이 되지 않아 고달프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오늘 하루도 함께 하려고,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는 다음달 31일까지 정동 세실극장에서 열린다. 김영순이 극작과 연출을 맡았고, 배우 장영주, 김정하, 송민형, 전성애, 김선화, 유형관, 김성기, 진수현, 이수미, 박현정, 이훈, 이종민, 권혜영 등이 출연한다. 극단 '나는 세상'이 제작을 맡았고, '아츠컴퍼니'가 기획했다. 공연 관련 문의는 02-766-9003으로 하면 된다.

▲연극 '여보 나도 할말있어'는 소통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면서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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