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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소음은 멎었지만…항공대 비행장 이전 ‘빛과 그림자’

비행훈련장 제주로…항공대 ‘60년만의 외출’ 단독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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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4.11.07 10:11:13

▲항공대는 지난달 23일부터 수색비행장에서의 비행연습을 전면 중단했다. 훈련용연습기들은 제주 정석비행장으로 옮겼다. 지난 5일 텅빈 수색비행장의 모습. (사진=정의식 기자)

한국항공대학교(총장 이강웅)가 지난 60여년간 비행훈련을 실시해온 수색비행장을 제주도로 이전하면서 지역주민과 재학생들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비행기 소음에 시달려온 인근 주민들은 비행장 이전을 쌍수를 들어 반기고 있지만, 학교 측으로부터 뒤늦게 이 사실을 통보받은 훈련생들은 침통한 분위기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지 부산에서 설립된 항공대는 우리나라 항공역사의 한 축이었고, 그 중심에 항공대와 함께해온 수색비행장이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이전은 항공역사의 일대 전환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CNB가 지난 5~6일 항공대 학생들과 학교관계자, 인근주민들을 만나 솔직한 속내를 나눴다. (CNB=도기천 기자)

60년 된 수색비행장 역사 저편으로
항공대 “비행교육 수준 높이려 결단”
학생들 “일방적 통보, 마른하늘 날벼락”
인근주민 “소음 사라졌지만…시원 섭섭”

항공대는 지난달 23일 수색비행장의 가동 항공기(훈련용연습기) 8대를 제주 정석비행장으로 이동시켰다. 수색비행장에서의 비행연습을 접은 것이다.

정석비행장은 항공대를 소유하고 있는 한진그룹(대한항공)이 90년대에 국제규모 공항으로 건립, 2002년부터 대한항공 여객기 등 대형항공기가 이·착륙하고 있다.

한진은 학교재단인 정석인하학원을 소유하고 있는데, 정석인하학원은 항공대를 비롯, 정석항공과학고, 인하대, 인하공업전문대, 인하대 부속 중·고등학교 등을 두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이사장이다.

▲비행장 이전을 접한 재학생들의 심경을 담은 항공대 학보.

항공대는 1953년 교통부 소속의 국립대학으로 출발해 1979년 한진에 인수돼 사립대로 전환됐다. 수색비행장은 항공대가 실습용비행기 운항을 위해 1955년 건립했으며, 항공대가 사립대학으로 변경되면서 군(軍)으로 이관됐다가 다시 항공대가 관리권을 넘겨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수색비행장 이전은 은밀히 따지자면 ‘이전’이 아니다. 수색비행장을 폐쇄하고 다른 곳으로 비행장을 옮긴다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진행해온 훈련비행을 제주에서 실시한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수색비행장이 항공대 재학생들의 실습용 비행기 운항 목적으로 사용돼 왔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전의 의미로 읽히고 있다. 

항공대 측은 ‘이전’이라는 표현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 비행교육 장소만 옮긴 것일 뿐, 향후 제주~수색 간 장거리 항법 교육시 이·착륙, 긴급 피항, 항공기 정비 등의 목적으로 수색비행장이 여전히 사용되기 때문에 ‘이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1년에 몇 번이나 이곳에서 비행기를 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장거리 비행은 4학년 학부 과정의 극히 일부라 제주에서 이곳까지 날아올 일은 손에 꼽을 정도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항공대 측이 ‘이전’이란 말에 민감한 것은 60여년간 항공대의 자부심이자 상징으로 여겨져 온 비행장이 ‘없어졌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대한 경계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항공대 관계자는 CNB 기자에게 “폐쇄나 이전이 아니라 비행교육장소만 옮긴 것이며, 여전히 비행장은 살아있다”고 강조했다.
 

▲수색비행장은 1955년 건립돼 60여년을 항공대와 함께 해왔다. 수색비행장의 현재(왼쪽)와 1960년대 모습. (사진=정의식기자, 항공대 화보집)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냈나

항공대가 훈련장소를 옮긴 데는 여러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항공대 비행교육원은 교지(학보)를 통해 “비행교육의 질 향상, 비행안전성 제고, 소음 문제 등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밝혔다.

교육원은 “수색비행장은 계기착륙장치(ILS, Instrument Landing System)가 없어 이상적인 착륙각인 3도가 형성되지 않아 완전한 비행연습을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특히 기상, 시계로 폐쇄 등 수도권의 열악한 비행조건으로 비행시간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아서 오래전부터 이전을 고려해 왔다”고 밝혔다.

기획홍보실 관계자 또한 CNB에 “비행교육의 효율성을 위해 내린 결정이며, 80년대부터 교육장소 변경을 장기과제로 두고 추진해 왔다”고 전했다.  

실제로 새 훈련장인 정석비행장은 수색비행장에 비해 규모나 기능이 월등하다. 길이 2300m, 폭 45m의 활주로와 보조활주로, 조종사 훈련시설, 관제탑, 자동착륙유도장치 등의 첨단장비를 갖춘 국제 수준의 공항이다. 계기착륙장치를 갖춰 A300급 중형 항공기는 물론 B747급 점보기 이·착륙도 가능하다.

▲60년대 수색비행장. 격납고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사진=항공대 화보집)

반면 수색비행장은 시설이 열악하고 활주로가 노후된 상태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 측 설명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있다. 학교가 지역 국회의원의 외압 등 민원에 떠밀려 60년 역사의 비행장을 급하게 옮긴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항공대는 그동안 1일 약 150회의 훈련비행을 해왔는데, 이로 인해 인근 경기 고양시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아왔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상암DMC지구에 초고층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단순 소음문제를 넘어 항공기 충돌 우려 등 주민들이 불안이 커졌다. 상암 지구에 조성된 월드컵파크 1~12단지(약 6000세대)는 대부분 20층을 넘는 높이인데도 항공대 연습기들은 고도를 낮춰 운행하기 때문이다.

이에 상암동 일대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정청래(서울 마포을) 의원이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국방부와 항공대, 국토교통부, 정청래의원실, 주민대표 등이 함께 테스크포스(TF)를 꾸려 해결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초 항공대는 수색에서의 훈련비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하필이면 발표 시기가 국토안전행위원회 국정감사 며칠 전이라 안행위 야당 간사인 정 의원의 압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항공대 관계자는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 관계자는 “수색비행장의 항공기 소음이 법적 소음기준치에 미치지는 않지만 인근 주민들이 지난 수십년간 소음을 불편해 하고 있는 점을 십분 고려했다”면서도 “무엇보다 교육적 측면이 (이전 결정 과정의) 우선이었다”고 강조했다.

▲갑작스런 비행훈련장 이전 소식에 학생들은 교내 곳곳에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내걸었다. (사진=정의식 기자)

제주로 간 훈련생들, 일방통보에 ‘분통’ 

학교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외압’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데는, 학교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항공운항과 학부생들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비행장이 정석으로 이동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학교 측은 ‘결정된 사항이 아니다’며 부인했다고 한다.

운항과 학생들은 CNB에 “정석비행장으로 훈련장소를 옮긴다는 얘기를 처음들은 것은 9월중순경인데, 그때는 이미 이전 결정이 난 뒤였다”며 “(앞서) 비행교육원을 중심으로 TF가 꾸려졌다는 얘기를 듣고 학생대표가 참관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학교측으로부터) 묵살 당했다”고 토로했다. 학교 측이 비행장 이전을 이미 결정한 뒤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 측에 수업과정 조정에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항공대는 운항과 3,4학년생들을 대상으로 군(軍)입대 희망학생은 연간 120시간, 민간업체 취업 희망학생은 60시간씩 비행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훈련장소가 갑자기 정석으로 바뀌면서 4학년생 대부분이 제주도로 이동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3학년생들은 아예 비행훈련이 중단됐다. 숙식과 운항횟수 등 제주 현지 사정상 4학년생들이 졸업해야 비행훈련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된 것.

운항과 학부생 A씨는 “학교에서 비행훈련을 받는다는 전제 하에 항공대에 입학했다”며 “제주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줄 알았더라면 진로 자체를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현지의 교육사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학부생 B씨는 “제주도는 바람이 강하고 해무가 짙은 날이 많아서 비행기 가동률이 높지 않다”며 “학생들 사이에는 수색비행장보다 비행횟수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C씨는 “비행훈련은 연속성이 있어야 하는데 3학년생들은 아예 비행연습이 중단돼 불안감이 크다”며 “학교 측이 아무런 대비책을 세워두지 않는 바람에 조만간 있을 초급비행시험이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단풍에 짙게 물든 항공대의 지난 5일 모습. 비행기들이 떠난 뒤라 더 쓸쓸해 보였다. (사진=정의식 기자)

훈련장 이전은 비단 비행기를 조종하는 운항과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관제실습을 해야 하는 교통과 학생들은 비행 훈련이 없어져 실습 자체가 사라졌다. 교수들도 불편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조만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학교 측에 피해보상과 대책마련을 요구할 방침이다. 

훈련생 대부분이 군(軍) 입대를 희망하고 있는데, 이들이 졸업과 동시에 공군 조종사(초급장교)로 복무하게 된다는 점에서 훈련 차질은 군 전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 될 수도 있다.

학교 관계자는 “제주에서의 집중 연습이 교육효과 면에서 휠씬 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당장 혼란을 겪게 된 3,4학년생들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항공대의 가라앉은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항공대 인근 마을 곳곳엔 비행훈련 중단을 환영하는 주민들의 프랭카드가 내걸려 있다. 주민들은 지난 수십년간 비행기 소음을 겪어왔다. (사진=정의식 기자)

한국항공역사 새전기 될까

한편 항공대가 훈련비행을 중단하자 인근 지역 주민들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항공기 소음이 사라져 대부분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지역 정치인들도 생색내기(?)에 나섰다. 최성 고양시장은 지난달 중순 맨 먼저 보도자료를 내고 “숙원이 해결됐다”고 자축했다. 일찌감치 TF까지 꾸려 문제해결에 나섰던 정청래 의원은 주민보고회를 열었고, 며칠 뒤 주민들은 ‘정 의원께 감사 드린다’는 내용의 프랭카드를 항공대 주변에 내걸었다.

경기 고양의 김태원(덕양을) 의원 또한 “10여 차례 이상 교육훈련 감축과 지방 이전 등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히 협의한 결과, 이처럼 좋은 결실을 맺게 됐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신종갑 마포구의원(상암·성산)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비행기들로 인해 주민들이 정서불안, 스트레스에 시달려 왔는데 이 문제가 해결돼 큰 짐을 덜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60년 역사를 가진 항공대의 심장인 수색비행장의 기능이 중단된데 대한 아쉬움, 훈련생들에 대한 미안함 등을 CNB에 전한 이들도 꽤 있었다.

CNB가 지난달 비행장 이전의 배경을 단독보도(관련기사 : 항공대 비행장 이전, 국감서 문제되기 직전 전격 결정) 한 뒤, 지역이기주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50년대 항공대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 한국전쟁 직후라 조국 하늘을 지키고자 나선 학생들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때부터 항공대는 수많은 공군 파일럿과 민간 조종사를 배출했으며 조국수호의 최첨병 역할을 자임해왔다. (사진=항공대 화보집)

항공대 인근 동네에서 40여년간 거주해온 서모(61)씨는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지역의 주민들도 참고 지내는데 경비행기 소리 정도로 국회의원까지 나섰어야 했나”며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비행장이 최근 (주변개발로) 입주한 주민들 민원으로 옮긴 거라면 그야말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 격”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항공대 비행장 이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다. 이해관계도 넝쿨처럼 얽혀 있다. 항공대는 전란(戰亂)의 폐허 위에서 만들어졌고 5.16군사정변 때 폐교 위기까지 겪었다. 그때마다 구성원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저력을 갖고 있다.

결국 이번 일도 학생과 교수, 교직원 등 구성원들이 어떻게 지혜를 모으느냐에 따라 위기가 될 지, 항공역사에 새로운 기회가 될 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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