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과징금은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부과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징금 규모가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금융권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CNB가 금리 카르텔에 얽힌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공정위 사실상 조사 마무리, 법적수순 돌입
수천억대 과징금 부과설에 금융권 ‘초긴장’
은행들 행정소송 나서면 치열한 법정공방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2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시중은행들의 금리 담합 의혹과 관련, “증거를 많이 확보했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처리하려고 한다”며 “자칫 잘못하면 파장이 작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과징금 처분이 임박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파장이 커지자 공정위는 몇시간 뒤 해명자료를 내고 “노 위원장이 언급한 ‘증거’는 그동안의 조사를 토대로 담합 혐의 여부와 관련해 추가로 검토할 필요가 있는 자료를 의미한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21일 CNB에 “확정적인 증거를 포함해 검토·확인해야할 자료들이 많이 있다는 의미인데, 이미 증거 확보가 끝났다는 쪽으로 해석돼 해명한 것이며, 노 위원장이 (국회에서) 언급한 취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위원장의 발언에 공정위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금리 담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몰고 올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금리 담합 조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두 차례에 걸쳐 3.25%에서 2.75%로 내렸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4월~7월 사이 0.31% 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은행권의 CD금리는 요지부동이었다. 2012년 4월 9일 금융사들이 고시한 CD금리는 연3.54%였는데, 이 금리가 7월 11일까지 유지됐다.
CD는 은행에 돈을 맡겼다는 예금증서다. 일반 예금과 달리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기 때문에 ‘양도성예금증서’라 부른다. CD금리는 고객이 돈을 빌리거나 맡길 때 기준이 된다. CD금리가 올라가면 대출금리가 올라가고, CD가 내려가면 금리도 낮춰진다.
공정위는 당시 은행들이 금리를 내리지 않았던 것은 서로 담합했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공정위는 2012년 7월 증권사 10곳과 은행 9곳을 현장조사해 금리 결정과 관련된 자료를 확보했다. 공정위는 당시 담당자들간 이메일과 메신저 교환 내용까지 살폈다.
또 지난 8월 26~27일 이틀간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에 여섯 명씩의 조사관을 파견해 추가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는 은행의 전반적인 금리체계 조정을 맡은 자금 및 재무기획부와 리스크관리부, 개인금융부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조사관들은 관련 직원들과의 개별 면담은 물론 관련 서류와 이메일, 메신저까지 점검했다.
노 위원장은 이번 공정위 국감 때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해달라는 유의동 새누리당 의원의 요구에 “조사하다보니 더 필요한 것이 있어서 최근 추가로 조사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노 위원장의 발언과 관련, CNB에 “추가로 금융사 범위를 확대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2012년 조사 때 CD금리 담합 혐의를 받고 있는 은행들이 담합과정에서 연체이자율, 가산금리 등도 짬짜미 한 것이 아닌지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조사대상 금융사는 2012년부터 조사해온 은행들로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2년 넘게 진행돼 온 조사에서 이미 상당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8월 추가 조사가 CD금리 외에 코픽스, 가산금리, 연체이자율까지 확대됐다는 점에서 이미 CD담합에 대해서는 조사가 마무리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여기에 일부 금융회사가 과징금 감면을 받고자 담합을 자진신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한 은행이 공정위에 자수했다는 소문이 지난해부터 나돌면서 금융사들이 긴장하고 있다”며 “이미 증거확보가 다 된 상태에서 법률적 검토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전했다. 공정위가 조사를 마쳤지만 서둘러 과징금을 매길 경우 되레 행정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추가 증거확보에 나섰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금리 카르텔(담합)은 대부분 법정에서 가려지기 때문에 (공정위가 확보한 자료의) 증거력이 충분한 지가 최대 관건”이라며 “워낙 담합이 정교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여러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뒤 상황으로 볼 때 공정위 조사가 마무리수순을 밟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통상 담합조사가 1~2년 정도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도 그렇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권 보신주의를 질책하자 공정위가 지난 8월 추가조사에 나선 것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이번 국감에서 “상당증거가 확보됐다”는 위원장의 발언이 공정위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미있게 들리는 이유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기간에 대해 “아직 언제까지라고 말하기 이르다”면서도 “자료는 충분히 확보됐다”고 밝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정위가 2년 동안 끌어온 금리 담합에 대한 조사를 이번 참에 어떻게든 마무리 지으려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과징금·줄소송…‘한국판 리보 스캔들’ 될까
CD금리 담합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과징금 규모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수도 있다. 담합 사건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 기준으로 최대 10%까지 부과할 수 있다. CD금리에 연동된 대출에서 발생한 이자수익이 수조원 대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과징금이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로 2012년 6월말 CD 금리에 연동한 가계대출은 278조원 규모였다. 당시 평균 대출이자가 연 6%인 점을 감안하면 금융권 연 이자 매출은 16조7천억원에 이른다. 최대 10% 과징금이 매겨질 경우 1조6700억원을 토해내야 한다.
공정위가 통상 관련 매출액의 2~3%를 과징금으로 부과해온 점을 고려하더라도 과징금 규모는 최소 3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짬짜미 기간에 따라 매출액 기준이 달라지므로 이보다 낮아지거나 높아질 수도 있다.
은행들을 상대로 한 소비자들의 소송도 잇따를 전망이다. 당시 CD금리에 연동된 대출금 수백조원의 0.1%만 부당하게 이자로 냈더라도 피해액은 수천억원대에 이른다.
이미 소비자단체들은 CD금리 조작 의혹과 관련해 대규모 집단 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금융소비자연맹(금소연)은 CD금리 담합이 사실로 밝혀지면 금융사에 부당 이익금 반환을 요구하고, 금융사가 이를 거부하면 피해자를 결집해 대규모 집단 소송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다른 소비자단체와 대형로펌들도 공정위 조사 상황을 지켜보고 있어 자칫 ‘한국판 리보 스캔들’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영국계 바클레이스은행의 ‘리보금리’ 조작과 관련된 은행들은 지금까지 60억달러(약 6조3700억원)의 벌금을 물었다.
금소연 측은 “담합은 소비자를 우롱한 처사인 만큼 담합으로 밝혀지면 집단소송을 전개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 담합사건이 법원으로 간 뒤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점으로 볼 때, 이번 공정위 조사 또한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은행들의 CD금리가 비슷하더라도 실제 대출금리는 개인별 신용, 담보물 가치 등에 따라 차등적용 되는데 굳이 금리를 담합할 이유가 없다”며 “만일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이 부분을 법정에서 적극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