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상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며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
ING생명으로부터 촉발된(?)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은 비슷한 약관 적용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전체 생명보험업계로 확대되고 있으며 소비자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CNB=이성호 기자)
약관상의 실수, 자살은 재해가 아니야 ‘주장’
자살보험금 2000억원에 달해
김기준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미지급 재해사망보험금 및 재해사망특약 보유 건수 현황’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미지급된 자살사망보험금은 2179억원에 달하고 있다.
ING생명이 653억원(471건), 삼성생명 563억원(713건), 교보생명 223억원(308건) 등이다.
무려 2000억원이 넘는 보험금을 생보사들이 고객에게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이 ING생명에 대한 종합감사를 실시하면서 처음 드러났다.
논란의 초점은 보험사들이 작성한 재해사망특약에 있다. 2010년 4월 이전 거의 모든 생보사들은 재해사망특약 약관에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 이후의 자살 시에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이후 업계에서는 특약이 잘못됐다는 것을 뒤늦게 파악, 2010년 4월 이후부터 판매한 상품에 대해서는 재해사망보험금이 아닌 책임준비금(적립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약관을 수정했다.
즉 2010년 4월 이전에 판매했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계약에 대해서는 약관에 따라 2년이 경과된 후 자살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생보사들은 약관상의 실수일 뿐이며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며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소비자단체, 지급 거부 보험사 불매운동 개시
결국 금융당국에서 칼을 뽑았다. 올해 8월 ING생명에 대해 재해사망 특약에 따른 보험금 미지급 등을 이유로 과징금 4억5300만원을 부과하고 기관주의를 내렸다.
또한 최근에는 이 같은 조치의 연장선으로 ING생명을 포함한 12개 생보사들에게 금감원 분쟁조정국에 접수된 재해 사망보험금 관련 민원(39건)에 대해 재해사망 특약에서 정한 지급 계획 여부를 보고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에이스생명과 현대라이프생명 두 회사만 보험금을 지급키로 했고, 나머지 10개사는 지급 계획이 없다며 각 사별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ING생명 관계자는 CNB와 통화에서 “약관이 실수로 작성됐고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는 대전제로 재해에 포함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어 “8월에 받은 제재와 관련해서는 90일 이내에 의견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오는 11월 말까지 행정소송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 즉, 약관을 작성한 보험사에게 불리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비슷한 사례에 대한 판례들이 엇갈리고 있다”며 “최근 민원건과 관련해 소송을 낸 것도 법적인 판단을 받아보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소비자연맹 생명보험금청구공동대책위원회는 재해사망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생보사를 대상으로 보험상품 불매운동에 나섰다.
금융당국이 사실상 지급명령을 내렸음에도 이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정부와 소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하는 것은 생보사들이 소비자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
금소연 관계자는 14일 CNB와 통화에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ING·삼성·교보·한화·동양·동부·알리안츠·농협·메트라이프·신한생명 등 10개사를 상대로 온라인 서명을 받는 등 불매운동에 나선다”며 “보험금을 지급할 때까지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불매운동과 더불어 금융당국은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생보사들을 상대로 연말까지 일제 점검에 들어가기로 강수를 뒀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생보사들의 지급 거부 방침에 담합이 있었는지 검토 작업에 착수해 추이가 예의 주시되고 있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