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도기천 정경부장) 국정감사를 통해 속속 들어나고 있는 금융사들의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가 충격적이다.
퇴직연금 적립액의 절반 이상이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물량이었고, 임직원에게 ‘제로 금리’로 돈을 빌려준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보험사 직원이 경찰을 사칭해 압수수색에 동원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31개 은행과 보험사가 자기 회사 직원에게 대출해준 금액은 3008억, 1만 2563명에 달했다.
보험업계 1위 기업인 삼성생명의 경우, 임직원 2116명에게 582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해줬다. 금리는 연 1%에 불과했다. 교보생명은 전세자금 2000만원까지는 아예 무이자로 대출해 줬다.
알리안츠생명보험, 악사손해보험, 에이스아메리카화재해상보험, 한화생명, 알리안츠생명, 삼성화재 등도 0~1%금리로 자기회사 직원에게 돈을 빌려줬다.
제1금융권 은행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방은행들이 특히 심했다.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 제주은행, 전북은행 등은 거의 무이자로 직원들에게 특혜를 줬다.
은행법과 보험업법에서는 은행이나 보험회사가 자사 임직원에게 대출을 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매년 관련 현황을 금감원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 실상도 충격적이다. 삼성생명은 12조2796억원의 퇴직연금 적립금 중 계열사 물량이 49.5%(6조8068억원)에 달했다. 삼성생명의 적립금은 다른 보험사 적립금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크다는 점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현대라이프, 롯데손해보험, 삼성화재, 흥국생명, 동부화재 등도 계열사 직원들이 맡긴 퇴직연금이 전체 적립액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특혜대출 손실, 소비자가 메우는 셈
이런 금융사들의 특혜대출, 내부거래 관행은 금융소비자에게 ‘부메랑’이 되고 있다.
예금과 대출 사이에 발생하는 이자수익인 ‘예대 마진’이 영업이익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금융사가 직원들에게 특혜대출을 해줬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가 손실을 입었음을 의미한다.
금융사들이 임직원에게 특혜성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면, 서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금리에 돈을 빌리거나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 계열사를 통해 배짱 영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서비스의 질 또한 나아질리 없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의 적금금리가 3~4%대인데 비해 보험사들의 퇴직연금 금리는 1~2%에 불과하다. 연금도 적금처럼 매월 불입하는 구조이므로 적금금리보다 못할 이유가 없지만 이러한 특혜·내부거래 관행 탓에 금융사들이 높은 이자를 줄 수 없거나, 줄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다. 자사 직원에게 특혜 주느라 발생한 손실을 소비자가 떠안게 되는 셈이다.
은행에 돈을 맡기는 서민들은 0.1%라도 금리가 높은 곳으로, 돈을 빌리는 이들은 한 푼이라도 더 이자가 싼 곳을 찾고 있다. 얼마 전 문을 연 OK저축은행의 특판예금(연3.2%, 500억 한정)은 단 3일만에 소진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이 금융사들의 ‘나쁜 짓’을 어물쩍 넘기려 한다면 금융권 전체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금감원은 엄중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하며, 공정거래위원회는 금융사의 나쁜 관행이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을 인식하고 전면적인 실태파악에 나서야 한다. 세무당국 또한 일감몰아주기에 과세할 부분이 있다면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감시·감독 기관들이 각자의 소관 범위를 좁게 해석하거나, 내 소관이 아니라고 미루거나, 가벼운 처벌에 그친다면 서민들의 피해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CNB=도기천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