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대출금리를 내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대부계에 고객을 뺏기고 있는 저축은행들로서는 선뜻 금리를 내릴 수 없는 처지다.
당국의 저금리 정책에 역행한다는 비난 속에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업계 분위기도 얼어붙고 있다. CNB가 이들의 불편한 속내를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대부계저축銀, 정부 저금리정책 ‘남의 일’
일반저축銀, 대부계 공격에 금리 ‘딜레마’
업계 경영정상화 찬물…‘공공의적’ 덤터기
한국은행(한은)이 지난 8월 1년 가까이 동결해온 기준금리를 연2.5%에서 2.25%로 내리자 시장에서는 조만간 추가 금리인하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며 채권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생계형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가계대출이 올해 안에 10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한은은 금리인하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금리가 오를 경우, 가계 이자부담이 커져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폭이기는 하지만 시중은행(제1금융권)들의 대출금리도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금리정보 제공업체에 따르면, 10일 현재 주요은행의 1~3등급 기준 신용대출금리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이 4%대 초중반으로 전달에 비해 0.1~0.3%가량 줄었다. 주택담보대출 최저금리도 2.9~3.4%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저축은행들은 되레 금리를 올리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7월 저축은행의 대출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평균 11.4%로 전달에 비해 0.57%p, 8월에는 11.7%로 0.3%p 오르는 등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류성걸 의원(새누리당)이 지난 7일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저축은행 대출자의 60%가량이 신용등급 7∼10등급인 저신용자들이었다. 정부의 금리인하가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된 것이다.
이같은 저축은행들의 금리 역주행은 대부계 저축은행들이 주도하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는 대출금리 인상의 주범으로 최근 대부업에서 저축은행으로 넘어온 친애·OK·웰컴저축은행을 지목했다.
브랜드명 ‘러시앤캐시’로 널리 알려진 에이앤피파이낸셜대부(주)는 지난 7월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예주·예나래저축은행을 인수, OK저축은행을 출범시켰다.
예보는 관련법에 따라 부실저축은행들을 인수·관리해왔는데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이들 저축은행의 민간 매각을 추진했고, 러시앤캐시가 이를 인수한 것이다.
앞서 지난 5월에는 대부업체 웰컴크레디라인이 예보가 관리해오던 해솔·예신저축은행을 사들여 웰컴저축은행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대부계 저축은행을 보유한 대부업체는 금융당국의 방침에 따라 향후 5년내(저축은행 영업허가일로부터 5년) 대부잔액을 40% 이상 줄이고, 중장기적으로 대부업을 폐쇄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저축은행업을 영위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게 당국의 방침이다.
따라서 대부계 은행들은 대환대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환대출은 기존 대부업 채무를 저축은행 신규대출을 통해 청산하는 방식을 이른다.
현행법상 대부업 최고금리는 연34.9%, 저축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연29.9% 이내다. 대부분 대부업체들이 30%안팎의 고금리로 수익를 내고 있어, 저축은행으로의 대환대출에도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러시앤캐시가 올해 초 금감원에 공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10월~2013년 9월까지 당기순이익이 841억원, 영업이익이 1210억원에 달한다. 직전 회계연도인 2011년 10월~2012년 9월까지의 당기순이익도 934억원, 영업이익 1117억원에 이르렀다. 이자수익만 매년 5000억원을 넘어서고 있다.
러시앤캐시의 대출자산이 약 1조8000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매년 5000억원 가량의 이자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대부업 이자제한폭(연34.9%)에 육박하는 이자를 받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대부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웰컴저축은행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계 저축은행들은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대환대출 금리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OK저축은행 출범당시 러시앤캐시 측은 CNB에 “20%안팎의 중금리로 차별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통상적인 대출일 경우다. 대환대출 대상자의 신용이 대부분 8~10등급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보다 훨씬 높은 금리가 적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부업 신용대출금리가 통상 30%안팎으로 저축은행 금리제한폭과 큰 차이가 없다”며 “수천억원을 들여 저축은행을 인수해 놓고 대부업 때 보다 낮은 이자로 손실을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앞뒤 사정을 종합해 볼 때, 대환대출 이자율은 저축은행 금리 제한선(29.9%)에 거의 다다를 것으로 짐작된다.
저축은행으로 넘어오는 대부업 채권 규모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애저축은행이 지난 8월 13일 케이제이아이대부금융, 하이캐피탈대부, 네오라인크레디트대부로부터 양수받은 대부업 채권은 2500억원에 달했다. 순차적으로 OK저축은행에 채권을 넘기고 있는 러시앤캐시의 경우, 대부채권의 절반만 넘어와도 1조원에 이른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88개 저축은행 중 자산이 1조원 이상인 대형 저축은행은 동부, 신안, 푸른, 한국투자, 모아, SBI, SBI2, HK, 친애, 현대저축은행 등 총 10곳에 불과하다. 저축은행 자산의 대부분이 대출금이라는 점에서, 대부계 은행들로 넘어온 대부채권은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더구나 대부계 은행들은 예금금리도 높은 수준이다. 이달 들어 시중 저축은행들의 예금금리가 2%초·중반까지 내려갔지만, OK저축은행, 웰컴저축은행은 2%후반대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고금리로 예금을 유치해 이 자금으로 높은 이율의 신용대출을 해주는 식으로 예대마진 폭을 넓히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일반저축은행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대부계가 대환대출 등을 통해 고금리 영업에 나서는 상황에서 시중 저축은행들이 당국의 저금리 정책을 수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CNB에 “신용대출 금리를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다른 저축은행의 한 임원은 “후발주자로 업계에 뛰어든 대부업체들이 대부업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 상황에서 우리만 대출금리를 내릴 수는 없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대부계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낮아 정상적인 경로로는 금융권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고객을 대환대출로 전환, 저축은행에서 대출받게 해주는 순기능도 생각해야 한다”며 “시장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환대출 고객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대출금리를 내리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