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금융권 인사 때마다 낙하산·외풍 논란이 끊이지 않아 왔다는 점에서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인선을 비롯해 줄줄이 예고돼 있는 금융사 수장들의 선임이 세월호 참사 이후 첫 시험대에 올랐다. (CNB=도기천 기자)
모피아 물러난 금융권, 정권실세 낙하산 우려
KB·우리금융·은행연합회장 등 줄줄이 도마 위
직원들 “내부 승진 통해 CEO 돼야” 한목소리
현재 국회에 상정된 관피아 방지법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5월 세월호 관련 대국민담화 직후 ▲취업제한 대상 기관 확대 ▲취업제한 기간 연장(퇴직 후 2년→3년) ▲취업이 제한되는 업무 관련성 범위 확대(퇴직 전 최근 5년간 속했던 부서 업무→기관 업무) ▲취업이력공시제 도입(퇴직 후 10년간 이력 공개)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일부 야당 의원들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낸 상태다.
정부와 야당안이 큰 차이가 없는데다, 퇴직공무원에 대한 취업 제한을 강화하자는 근본취지에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라 법안 처리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간 극심한 내홍을 겪었던 KB금융지주의 차기 회장과 행장의 인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또 CEO를 새로 뽑고 있는 대우증권, 임기가 만료되는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의 후임 선출 등이 예고돼 있고, 12월에는 우리금융지주 이순우 회장 겸 행장, 생명보험협회 김규복 회장의 임기가 만료된다.
국회에서 관피아방지법이 예고된 데다, 최근 큰 파장을 일으킨 KB사태가 낙하산 인사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번에 새로 뽑힐 금융권 수장 후보군에는 옛재무부(현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출신들이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금융업계서 잔뼈가 굵은 인사들이 차기 CEO 물망에 오르고 있다.
최근 민병두 의원실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금융권 낙하산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24명에 이른다. 금융지주 41명, 시중은행 45명, 손해보험 8명, 생명보험 9명, 증권회사 21명 등이다.
임종룡 NH농협금융그룹 회장은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 실장, 기획재정부 제1차관, 국무총리실 실장을 역임한 재무관료 출신이다. 최규연 저축은행중앙회장은 전 조달청장, 김근수 여신금융협회장은 전 기재부 국고국장, 홍영만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진웅섭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장 출신이다.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은 전 재정경제부 1차관, 김규복 생명보험협회장은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 김주현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전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었다.
행장과 회장 간의 내홍에서 비롯돼 금융당국의 경징계→중징계→직무정지→이사회 해임결정으로 이어지면서 100일 넘게 경영공백을 초래한 KB사태의 주역들 또한 모두 ‘모피아’(재무부+마피아) 출신들이다. 최근 물러난 임영록 전 회장은 전 재정경제부 제2차관 출신(행시20회)이며, KB를 제재한 신제윤(24회) 금융위원장, 최수현(25회) 금융감독원장도 모피아 출신이다.
야당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모피아·금피아 관행을 손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데다, 경제개혁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이런 배경에서 강력한 제도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이달 안에 윤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KB금융지주 회장 후보군이 주목된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2일 오후 서울 명동 KB금융 본점에서 3차 회의를 열어 전체 후보군을 10여명으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로는 KB금융그룹 내부 출신으로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부사장, 김옥찬 전 국민은행 부행장, 김기홍 전 부행장, 윤웅원 현 KB금융지주 부사장, 남경우 전 KB부행장, 이달수 전 KB데이타시스템 사장 등이 거론된다.
외부 출신 후보로는 우리은행장 출신인 이종휘 미소금융재단 이사장,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등이 하마평에 오른다. 관료 출신 중에서는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오갑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국민은행 노조 등 KB내부에서는 KB출신 인사를 원하고 있다.
성낙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최근 언론에 “KB금융의 조직 안정과 통합을 위해서는 내부 출신 인사가 반드시 회장 후보가 돼야 하며, 외부 출신 인사가 선임될 경우 강력한 항의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힌 상태다.
회추위는 몇차례 회의를 갖고 후보군을 상대로 심층면접을 진행한 뒤, 이달 말 최종 회장후보자 1명을 선정한다. 이 과정에서 KB금융지주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 대표도 만나 차기 회장 선임과 관련된 주주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KB 회장은 다음달 21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정식으로 선임된다.
대우증권 사장 후보도 ‘대우맨’으로 압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김기범 전 사장이 지난 7월 중도 사퇴할 때만 해도 외부출신 인사가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최근 KB사태를 계기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이영창 전 부사장을 비롯한 현직 부사장들이 유력 후보군에 올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관료 출신들이 바통을 이어온 금융단체장에도 업계 출신들이 거론되고 있다. 생명보험협회장에는 이수창 전 삼성생명 사장과 고영선 교보생명 부회장 등이 회자되고 있으며, 은행연합회장 자리에는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이종휘 미소금융재단 이사장 등이 하마평에 오른다. 지난 1월 이후 공석인 주택금융공사 사장에도 시중은행 임원 출신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CEO가 회사 책임져야”
한편으로는 관피아방지법 등이 시행되면 직무연관성이 있는 재무관료 출신들이 금융권에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관행은 사라지겠지만, 이 자리를 정치인들이 채우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예금보험공사 감사에는 문제풍 전 새누리당 충남도당 서산·태안당원협의회 위원장이, 기술보증기금 감사에는 박대해 전 의원이 각각 선임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관료 출신들이 금융사로 내려와 노조와의 마찰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 사실이지만 정치인 낙하산의 부정적인 측면도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현재 분위기가 워낙 좋지 않아 금융사로의 자리 이동은 현실적으로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료들이 산하기관이나 금융사에 못 가면 결국 정권실세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는 내부 인사 승진을 통해 조직이 운영되는 선순환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각 금융사는 공채로 입사하면 내부 승진을 통해 전무나 부사장 자리까지는 갈 수 있으나 그 이후부터는 기재부나 금융위원회, 금감원 출신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장기적인 경영전략을 수립해 추진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 고위직이 내려오면 방패막이가 될 수는 있으나 회사가 커 나가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내부 승진을 통해 선출된 전문CEO가 회사를 책임지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금융 부문 낙하산 인사 이대로 둘 것인가’ 토론회에서 “금융기관 임원 자격 요건을 3년 이상 금융분야 종사자로 강화해 터무니없는 무자격자의 입성을 방지하고, 대표이사 및 감사의 연대 책임을 명시해 임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