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동양화의 개념을 작가만의 감각과 관점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동양화를 그려내는 '먹꽃' 작품은 강렬한 먹의 흔적으로 시간의 흔적이 깊게 배어 있는 화석을 보는 느낌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기영 작가는 무수한 시간과 조형적 스펙트럼이 자연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지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모습을 포착해, 자연의 일부인 우리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시간의 흐름을 작업으로 담아내는 작가의 작품들은 먹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굉장히 얇은 표면으로 완성된다. 마티에르를 강조하기 위해 물감을 두껍게 칠해 만든 화면과 달리 오랜 세월 이미지가 중첩되고 닦여나간 느낌으로 독특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환영처럼 만드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얇은 게 좋더라구요. 무언가 억지로 표현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사람의 손 때가 덜 뭍은 것 같은 형태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려는 과정이 화면에 얇게 나타나더라구요"
20년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그 흔적을 화면에 담아내고 있는 작가의 작품에는 하얗게 건조되어 깔끔히 마무리된 표면으로 손을 대면 묻어날 것 같은 선명한 먹의 생명력이 살아 숨쉰다.
생성과 소멸의 공존,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의 결과로 완성된 이기영 작가의 작품들은 자연과 연계된 우리의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CNB=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