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가 최근 수년간 담배가격을 동결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의 담뱃세 인상을 빌미로 소비자가격을 올릴 것이라는 증권가의 전망이 쏟아졌지만, 장기적으로 담배판매량이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주가는 되레 큰 폭으로 떨어졌다.
담배업계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분위기다. 소매마진이 커질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소비자 부담이 커진 만큼 소비위축으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CNB가 복잡한 속내를 취재했다. (CNB=도기천 기자)
‘담뱃세 80% 인상’ 소비위축 이어질까 우려
이틀새 주가 8% 급락…‘장밋빛 전망’ 빗나가
담배생산 농가 한숨 깊어져… 대책 ‘시급’
정부는 내년 1월부터 현재 2500원인 담뱃값을 4500원으로 대폭 인상키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향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담뱃값이 지속적으로 오를 수 있도록 물가연동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담뱃값 인상’은 정확히 표현하면 ‘담뱃세 인상’이다. 기존 담배소비세·지방교육세·건강증진부담금·폐기물부담금뿐 아니라 종가세(가격기준 세금) 방식의 개별소비세(2500원 기준 594원)도 추가된다. 담뱃값이 비쌀수록 더 많은 소비세를 물리겠다는 것.
세금 인상은 겉으로는 담배회사들과 무관해 보이지만, 흡연율 감소 우려, 원료생산 농가와의 문제, 소매가 인상 등과 맞물리면서 셈법이 복잡하다.
우선 국내 담배시장의 6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KT&G 는 담뱃세 인상과는 별개로 소매가를 소폭 올리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KT&G가 소매가를 어느 정도 인상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과거 담배 소비세가 인상될 때마다 한 갑당 출고가를 45~80원 정도 인상한 전력이 있는데다, 지난 2011~2012년 경쟁사들이 담배 가격을 약 200원 가량 올리는 동안 KT&G가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매가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KT&G 관계자는 12일 CNB와 통화에서 “이번 정부안이 사실상 ‘세금 인상안’이라 국회통과를 거쳐야 하는데다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라 뭐라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도 “세금 인상과는 별개로 담배회사들은 소비자가격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담뱃세 인상과 함께 KT&G의 출고가가 동시에 인상되면 당장은 영업이익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2500원에 판매되는 담배의 출하가격은 725원이다.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세금 1528원, 여기에 소매마진이 250원 가량인데, 소매가가 인상되면 세금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수익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에서도 KT&G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담배세금이 다소 높게 인상되더라도 담배가격이 소득대비 낮아 판매량 감소가 제한적이고, 재고에 대한 평가이익이 부정적 효과를 상당부분 상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KT&G 주가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유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KT&G가 담배세 인상에 따라 담배 소매가격과 함께 출고가를 인상할 경우 영업이익이 확대돼 향후 구조적인 실적 성장 기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내년 인상을 앞둔 사재기 수요도 올해 매출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담뱃값 인상 발표 이후 물량을 확보하려는 판매점의 주문량이 평소보다 급증하고 있으며, 편의점에서는 평소보다 10배 이상 담배가 팔리고 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정부가 사재기 규제에 나선 상황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담뱃값 인상이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가격이 오르면 담배 소비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의 인상안이 ‘국민건강증대’ 차원에서 나온 것인 만큼 장기적으로 볼 때 담배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커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담뱃값을 10% 올리면 흡연율은 3.65% 떨어진다. 이번 법안은 담뱃값을 무려 80%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계산으로는 흡연율이 30%가량 줄게 된다.
지난주 보건복지부가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흡연자 209명 중 32%가 “담뱃값이 인상되면 담배를 끊겠다”고 답했다. 여기다 정부는 선진국들처럼 담뱃값에 흡연 폐해를 경고하는 그림을 넣고, 편의점 등 소매점의 담배 광고를 전면 금지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KT&G 주가는 인상안 발표 직후인 11~12일 현재까지 8%가량 급락했다.
담배생산 농가들도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담뱃값 인상으로 업계 수익이 악화될 경우 KT&G가 비싼 국산 잎담배 대신 외산 잎담배 수입을 늘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KTG) 관계자는 “담뱃값 인상으로 소비가 줄어들 경우, 담뱃잎 수매량도 줄게 돼 담배 재배 농가에 큰 타격이 예상되지만, 이번 인상안에 농가지원책은 빠졌다”며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담배업계 종사자의 생계유지를 위한 보호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는 만큼 정부는 농가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KT&G 관계자는 “농가 보호차원에서 국내 생산량을 전량 수매하고 있으며, 부족한 부분은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며 “담배 소비가 줄더라고 수매량을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찬반 ‘팽팽’, 서민과세 논란
한편에서는 정부가 애초부터 ‘금연 캠페인’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담뱃값 인상은 세수 부족을 메우려는 것일 뿐, 흡연율 감소와는 무관하다는 것.
실제로 CNB가 2014년 OECD 통계연보(Factbook) 등을 분석한 결과 담뱃값과 흡연율 간의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찾기 힘들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유은혜 원내대변인은 11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명목상의 이유는 국민의 건강 증진이지만, 결국 세수 부족을 메우고자 하는 목적에 힘없는 서민들만 유탄을 맞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22일째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 중인 정청래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제 담배 폭탄이냐? 흡연자 1년 평균 담뱃세 57만원에서 130만원으로 담뱃세 폭탄투하. 담뱃값 인상한다고 흡연율 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회원 수 10만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흡연자 커뮤니티 단체인 ‘아이러브스모킹’은 12일 “정부가 인상안을 그대로 추진할 경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담뱃값 인상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KT&G 등 담배업계는 담뱃세 인상 자체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일관하면서도 소비자가격을 올리는 데는 공동보조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금인상안으로 흡연율이 낮아져 수익이 악화되는 부분을 소매가 인상으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사회 전반에 금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담배업계가 대놓고 세금인상안에 반대하기는 힘든 분위기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며 “소매가격 인상은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