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알아 갈수록 화가로서, 인간으로서의 무기력함과 당대 폭압적인 현실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경험했던 통곡의 세월이었다.
1991년 무심코 찾아간 강화읍 대산리, 민통선 내 한적한 작업실에서 작가는 심리적으로 낯설지 않은 지역적 동질감과 함께 남북의 분단, 대치현실을 바라보는 그동안의 막연한 생각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겠다는 작업의지와 그에 따른 성취동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외부 현상과 현실에 대한 문제를 예민하게 바라보던 직설적 시선이 차츰 내부로 향하면서 세상의 근원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는 닥치는대로 책을 읽고 글을 썼고, 강화 곳곳을 답사하기 시작했다.
강화의 역사적 부침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와 분명한 현실인식은 꽉 막힌 듯 했던 작가의 기존 사고와 작업에 하나의 돌파구 내지를 해법으로 작용하게 된다. 또 다른 삶의 가능성으로 작용한 것이다.
박진화 작가는 세상의 행간을 파헤치는 눈, 현상 너머의 것을 읽어내는 눈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게 됐고, 이 것을 '눈의 권리'라고 칭한 바 있다. 눈의 권리에서 비롯되고 발휘되어야 하는 일, 그것이 작업이요, 그림이요, 화가의 몫, 생리, 역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8월 29일부터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전관에서 막을 올린 '로컬리뷰2014:강화發, '분단의 몸-박진화'전은 박진화의 강화도 생활 20여년을 정리하는 전시로 그동안의 작업 성과와 성가를 압축했다.
드로잉을 포함해 80여점의 작품이 공개되는 전시에는 그가 지난 30여 년 간 작가로서 천착한 세상살이와 인간에 대한 고민과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강화도에 작업실을 마련한 후 박진화는 현실에 대한 내적 감정을 가감 없이 토로하던 초기 그림과는 달리 그것을 육화, 체화하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과 함께 곱씹으며 집단초상 개념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주목한다.
단일 초상으로 등장하던, 집단으로 등장하던,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그의 자화상으로 이해하면 된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이른바 수신(修身)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일부 분명한 형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때론 사라지듯 나타나고 나타나듯 사라지는 모양새로 화면 내에서 명멸함으로 드러낸다. 개인을 익명화시키고 소멸시킴으로써 개인을 강조하고 다시 드러내는 역설적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박진화 작가의 화면에는 많은 사람만큼이아 많은 색이 등장한다. 빨간색과 파란색 그리고 노란색을 주조로 빚어내는 화음이 이채롭다. 이들은 색의 삼원색이기도 하지만, 인간 감정의 삼원색이기도 하다.
사회현상이라든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감정도 이들 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의미, 지시성을 달라진다.
중재, 화해, 치유의 개념으로서의 노란색, 이념적인 오명을 벗고 국민의 색으로 거듭난 붉은색, 민주와 평화의 상징인 푸른색 등이 그것이다. 이분법적인 대립의 시대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푸른색, 첨예하게 마주하는 사회적 대립각 속에 절충, 혹은 조정이라고 하는 부분으로서의 노란색도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강화에서의 작업이 부름, 응답, 이행의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작업은 성찰, 즉 속 깊은 내면화 과정을 통해 대내외적 갈등과 대립, 분단의 현실을 그림으로서 승화시켜나가려는 박진화의 노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CNB=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