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명회에는 지난 2012년 10월부터 충주 호암동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구석기 유적 ▲삼국 시대 고분 ▲고려~조선 시대 분묘 ▲고려 시대 토성 ▲조선 시대 기왓가마 등이 확인되어 충주 지역의 대규모 복합유적으로 평가된다.
중기 구석기(약 7만 5천 년 전) 유적에서는 찍개, 몸돌, 격지 등이 출토되었으며, 50여 기의 삼국 시대 고분은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중엽에 축조된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 석실묘)으로 추가장(追加葬)이 확인되고 있다. 이는 진흥왕 시기 이후 신라가 북쪽으로 진출하면서 충주 지역이 신라에 복속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조선 시대 분묘는 총 1300여 기가 발굴되었으며, 청동거울(銅鏡)과 인장(印章, 도장), 그릇, 숟가락, 젓가락, 도자기 등이 발견됐다. 특히, 인장 3점에 장식된 사자 등 동물 문양은 해학적이고 특이하며, 글자는 鳳(봉) 등으로 해석되는 것 외에는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총 28점이 출토된 거울은 최대 지름이 23cm인 쌍룡운문대경(雙龍雲文大鏡, 두 마리 용과 구름문양)과 팔사자문경(八獅子文鏡, 여덟사자문양) 등이 있으며,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거울을 통해 고려 시대의 뛰어난 미적·공예적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고려 시대 토성은 4m 폭으로 석렬(石列)을 1단으로 배치하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린 것으로, 성벽에 일정한 간격(50~70m)으로 치성(雉城)을 갖추고 있음이 확인됐다. 또 성벽조사 과정에서 ‘龍山寺(용산사)’, ‘官(관)’자를 새긴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근거로 토성의 축조 시기인 13세기를 전후하여 주변에 용산사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어 흥미롭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기왓가마 6기 중 한 가마에서는 수키와, 암키와, 벽돌 등 551점이 차곡차곡 쟁여진 상태 그대로 노출됐다. 이는 기와를 굽다가 천정이 무너지면서 폐기된 채 유지된 것으로, 가마 내 기와의 재임방법을 파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로 평가된다.
한편,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와 (재)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앞으로 국민과 공유할 수 있는 '호암지구 발굴유물 특별전'과 학술심포지엄 등을 공동으로 개최할 예정이며, 토지주택공사는 충주 호암동 유적의 중요 구간을 정비한 후, 유적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CNB=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