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오는 8월 25일부터 진행되는 제11회 EBS국제다큐영화제(이하 EIDF)가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의 후원으로 '이스라엘 영화 컬렉션',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컨퍼런스'를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EIDF측에 행사 취소를 요청하며, 취소 되지 않을 시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의 요청에 따라 보이콧 행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점령과 식민화 종식을 요구하며 팔레스타인인들에 연대하는 한국의 평화운동 단체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영화계에서도 EIDF 보이콧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고, EIDF 상영작인 '아무도 모른다'팀(감독 원해수, 작가 진냥)에서 보이콧 동참의 의견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영화인들이 성명서 '이스라엘, 그리하여 EBS국제다큐영화제를 보이콧하겠습니다'를 발표했다. 공동제안자 손희정(영화연구자)을 필두로 총 129명의 영화인이 연명했다. 곧 2차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지난 7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침공한 이후로 우리는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의 절규를 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은 1900명이 넘는 사람을 살해했고, 약 1만 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이스라엘은 테러의 종식을 공습의 이유로 주장했지만, 그 포탄은 어린이 450여명을 포함한 민간인에게 떨어졌습니다.
“테러리스트를 낳지 못하게 팔레스타인 엄마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는 이스라엘 국회의원의 발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는 그야말로 무차별 학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절대적 숫자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 폭격의 고통과 피해의 정도는 사상자 수로만 단순히 설명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가자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을 박탈하고 삶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무차별 대량 학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2007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한 이후로 이미 세 차례에 걸쳐서 자행되어 온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은 1967년 이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미국과 서구 열강의 지지 속에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사는 가자지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총 길이 850km 높이 8m 장벽으로 서안지구 곳곳을 가로막음으로서 팔레스타인 전역을 하늘만 뚫린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젊은이들은 파괴당한 팔레스타인 경제 덕분에 높은 실업률 속에서 거리를 배회하거나, 운이 좋으면 적국 이스라엘에 값싼 노동력으로 고용되기도 합니다. 노인들은 죽기 전에 쫓겨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길 기다리며 30년 넘도록 집 열쇠를 옷 속 깊이 지니고 다닙니다. 이렇게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팔레스타인은 목숨을 걸고 오랜 투쟁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저항할 권리조차 점점 봉쇄당하고, 이제 1900여명의 죽음 앞에서 절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식민화, 인종차별, 그리고 주기적인 대량학살에 대항하여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BDS)를 요청해 왔고, 전 세계적으로 이에 동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제재는 이스라엘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보이콧Boycott, 투자 철수Divestment, 그리고 경제 제재Sanctions를 포함합니다. 이것이 BDS 운동으로, 최근 SNS를 통해 화제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 브랜드 보이콧 운동 역시 BDS 운동의 일환입니다. 이스라엘 브랜드에 대한 보이콧은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적극적 경제 제재일 뿐 아니라 화려한 브랜드로 치장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국가 이미지를 벗겨내고 전범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드러내는 일종의 문화적 보이콧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다큐, 희망을 말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8월 말에 개최되는 제 1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컬렉션’ 섹션과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컨퍼런스’, 그리고 텔아비브 국제 다큐 영화제 DocAviv 예술감독 초청 강연 등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은 이번 영화제의 주요 후원자 중 하나이며,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컨퍼런스’의 공동주최자로 참여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EIDF는 전범 국가 이스라엘을 문화와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탈정치화시키고, 문화 선진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행사를 적극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것입니다.
EIDF에서는 이 행사가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과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기획되었으며, 상영작은 물론 관계 행사들도 팔레스타인 침공을 정당화하는 시온주의와는 무관한 내용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동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자신이 학살자라는 사실은 애써 숨긴 채, 문화와 예술이 발달한 선진국, 당당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국제사회에서 자유롭게 문화를 나누고, 선진적인 다큐멘터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문화는 커녕, 하루하루 생존도 담보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한다면, EIDF의 기획이야말로 전범 국가의 문화정책에 동조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공개적으로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을 받고, 이로 인해 더더욱 팔레스타인 점령의 현실에 대해 언급할 수 없는 이스라엘 특별전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EIDF의 이스라엘 특별전은 정치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 문화/예술 행사가 아닙니다. 이는 EIDF가 지금까지 해 온 역할과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를 생각했을 때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우리 영화인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식민화, 인종차별, 그리고 대량 학살에 대한 반대의 뜻을 밝히기 위한 이스라엘 제재의 일환으로 EIDF에 대한 문화적 보이콧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EIDF에 컨퍼런스 및 강연을 포함한 특별전 취소와 이스라엘 대사관과의 협력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CNB=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