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모든 계약 해지의 책임을 보험설계사에게 떠넘겨 지급했던 수당을 되돌려 받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흥국생명·삼성화재·교보생명·KDB생명·신한생명 등 26개 보험사가 2013년 한 해 동안 보험이 해지되거나 취소됐다는 등의 사유로 설계사에게 수당으로 지급했다가 다시 환수한 금액이 무려 1200억원에 달하고 있다.

문제는 이 1200억원 중 보험사들이 설계사들에게 부당하게 환수한 금액이 적잖게 포함돼 있다는 것. 설계사의 잘못이 없는 부문인 고객 변심·민원 등으로 인해 해지된 계약 건까지 (설계사에게) 책임을 씌워 환수를 받고 있다는 것인데 납득하기 어렵다.

중도 계약 해지시 보험사는 고객에게 납입한 보험료(원금)를 전부 지급하지 않는 등 패널티를 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해당 설계사한테도 책임을 물어 기 납입했던 수당도 환수, 이중으로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설계사가 다시 뱉어낸 금액에 대해서도 중도 해지로 손해를 본 고객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모두 보험사가 꿀꺽하고 마는 것이다.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다.

이 같은 부당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연유는 보험사와 설계사가 맺은 약관 탓이다.

A보험사의 경우 ‘설계사는 보험계약의 조건 등의 변경, 무효, 해지 또는 보험계약의 취소 등에 의해 수수료 환수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이미 지급된 수수료를 회사에 반환해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는 등 이와 비슷한 약관을 보험사들이 적용하고 있다.

설계사가 지인들과 짜고서 수당금만 받아 챙기고 계약을 해지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선 당연히 환수 조항이 있어야 하겠지만 모든 계약 해지의 책임을 설계사에게 떠넘기는 것은 갑의 횡포나 다름이 없다.

공정위에 따르면 26개 보험사가 설계사에게 되돌려 받은 1200억원은 무효·취소·해지 등으로 인한 환수대상 수수료 총액이기 때문에, 이중에서 부당 환수금 즉 설계사의 잘못이 없음에도 거둬들인 돈이 얼마인지는 사실상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보험사가 거둬들인 막대한 환수금에 대해 민원제기 등 보험사측의 문제인지 보험설계사의 사기성 인지를 확인할 수도 없고, 약관에 따라 설계사들은 눈감고 코 베어가는 식으로 받은 수당금을 토해내고 있고 다시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설계사들이 보험사들에게 빼앗긴 부당 환수금을 돌려받으려면 소송을 걸어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다만 앞으로는 이러한 불공정 약관이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을 뿐이다.

공정위는 뒤늦게 이 같은 약관에 불공정 요소가 없는지 심사에 나선 상태다. 26개사나 되고 해당 보험사들이 약관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어 위법성을 따져보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지만, 서둘러 잘못된 부문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이른바 ‘묻지마’ 식으로 설계사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지급했던 수당을 무조건 환수하는 행태는 마땅히 시정돼야 함이 옳다.

보험사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설계사에게 전가해, 고스란히 부당 환수 금액을 챙기게 되는 상황이 더 이상 벌어져선 안 된다.

(CNB=이성호 기자)